러, 이지움·크레미나·마리우폴...우크라 동부 지역 총공세

'돈바스 관문' 이지움 등 점령...민간인 학살 우려 "제2 부차 될 수도"

인구 2만 크레미나 함락...루한스크 주지사, "오크들이 도시 장악했다"

우크라군 "러, 민간인 대피한 마리우폴 지하터널에 '벙커버스터' 폭탄 투하"

러, 돈바스 지역 대대전술단 대폭 늘려...러 용병 와그너그룹 대표도 등장

러시아군이 전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한 가운데, 우크라 내무부는 19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루한스크주의 크레미나와 베도네츠크, 루비즈네, 리시찬스크, 포파스나 등 돈바스 전역에서 다연장로켓포와 자주포, 야포를 앞세워 공격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날 “북동부 슬로보잔스키와 하르키우 인근 이지움 등에서 대규모 러시아 병력 이동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대규모 기갑 장비를 앞세워 크레미나시에 진입했다”며 “크레미나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다”고 했다.

하르키우와 돈바스를 잇는 요충지인 이지움도 대부분 러시아군에 넘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하르키우주 동남부 도시 이지움은 동부 돈바스와 남부 흑해로 향하는 관문으로, 지난 1일 러시아군에 넘어갔으며 주민 수천 명이 도시에 고립된 상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러시아군이 이지움을 점령하면서 민간인을 대량 사살해 '제2의 부차'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발레리 마르첸코 이지움 시장은 이날 "민간인 1000명가량이 공습, 포격, 폭격 등으로 사망했다"며 "부차와 이지움은 (상황이) 매우 유사하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러시아군이 운동가, 돈바스 참전 용사, 경찰, 지역 사업가 명단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그들을 찾아내면 미상의 장소로 끌고 갈 것"이라며, 러시아군에 의해 처형될 것이라고 했다.

마르첸코 시장은 "키이우와 체르니히우 지역에 있던 병력이 이지움으로 왔다"며 "부대를 집결시키고 있으며, 돈바스로 장비를 진격시키고 있다"고 했다. 올렉산드르 모투자니크 우크라이나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지움 주변은 러시아군 부대가 가장 많이 집결한 곳"이라고 밝혔다.

인구 1만9000명인 크레미나도 러시아군에 함락됐다. 미국 CNN에 따르면 이날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러시아군을 J.R.R 톨킨의 유명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의 등장인물 ‘오크(Orcs)’에 빗대며 크레미나시가 ‘오크(러시아군)’의 통제 하에 있으며, 이들이 도시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하이다이 주지사는 러시아가 모든 방어선에 포격과 공습을 하고 있으며 주요 기반시설이 거의 파괴돼 수도와 전기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차를 타고 달아나려는 민간인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며 "4명이 숨졌고 1명의 중상자가 여전히 현장에 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민간인 중 사망자 수를 계산할 수 없다"며 "공식 통계치는 약 200명이지만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로이터 통신은 크레미나는 우크라 동부에서 새로운 공세를 시작한 이후 러시아군이 점령한 것으로 확인된 첫 번째 도시라고 보도했다.

함락 직전인 남부 마리우폴에서는 러시아군이 민간인이 대피한 지하터널에 '벙커버스터'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벙커버스터는 지하 시설물 타격을 목적으로 관통력과 폭발력을 높인 무기다.

우크라이나군 데니스 프로코펜코 아조우 연대 사령관은 이날 "러시아 점령군과 친러 반군 등이 재래식 폭탄, 벙커 버스터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총공세를 벌이고 있다"며 "민간인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아조우스탈은 광범위한 지하 터널 망으로 연결돼 있는 대규모 제철소로, 약 2500명에 달하는 우크라이나군이 1만2000 병력의 러시아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며 버티고 있다.

한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수만 명의 병력을 계속 추가 투입하면서 전투 양상은 더 격렬해질 전망이다. 전날 미국 국방부는 지난 일주일 새 동부와 남부 전선에 러시아 대대전술단(BTG) 수가 65개에서 76개로 늘었다고 밝혔다.

BTG는 방공, 기갑, 전술 차량 및 포병, 헬리콥터, 공병 등이 복합해 이뤄진 부대로 미 국방부는 현재 돈바스 주둔 76개 BTG 외에도 22개 BTG가 우크라이나 북부에 있다고 밝혔다. 이들 중 10여 개는 현재 항구 도시이자 전략적 요충지인 마리우폴 점령을 시도 중이라고 미국 국방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AP통신은 “현재 러시아 병력은 총 5만~6만명 수준으로 추정된다”며 “남부 마리우폴이 함락되면 12개 대대전술단이 돈바스에 추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날 러시아 용병 기업 와그너 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도 돈바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용병 5000명으로 구성된 와그너 그룹은 중앙 아프리카, 중동, 돈바스 지역 등의 분쟁에 러시아를 대리해 개입했으며 그 과정에서 인권 침해 혐의를 많이 받았다.

서방 정보당국은 와그너 그룹 용병 약 1000명의 병력이 우크라이나 동부에 배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와그너 그룹 내부 소식통은 러시아 독립 언론매체 메두자에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의 유명 정치인이나 지휘관을 잡아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로이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