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정체제-신3고 시대 맞아 '에너지 믹스' 중요성 더욱 커져
尹정부 에너지 정책 의결... “2030년 원전비중 30%↑"
文정부 '탈원전 정책' 사실상 전면 수정 의지... '합리적' 정책 내야
유럽의회, 원전 택소미아 포함 결정에 앞서 발 빠르게 정책 변경
대통령실 "탈원전 표방 국가들, 에너지 위기로 원전 건설 추진"
◆…신냉전체제 도래와 신 3고시대 도래로 글로벌 경기침체 공포가 고조되고 있다. 최근 고공 행진하던 국제유가가 급락한 6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휘발유·경유 가격이 게시되어 있다.［사진=연합뉴스］
여기다 고유가·고물가·고환율의 신(新) 3고 시대가 겹치면서 전 세계가 최악의 경제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공포감에 떨고 있다. 경제와 안보를 따로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위기가 도래한 셈이다.
‘에너지 믹스’는 한 국가의 존망을 결정할 만큼 중대한 정책이다. 특히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기간산업 중심인 우리나라 경제는 안정된 에너지 확보와 운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산업뿐만 아니라 민생경제에서도 에너지 정책이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정부의 ‘에너지 믹스’ 정책이 중요한 이유다. 지난 5년간 우리는 ‘에너지 믹스’ 정책을 두고 엄청난 소모전을 벌였다. 지난 2017년 5월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 시작된 ‘탈원전 정책’이 그 시발점이 됐다.
5년 만에 정권이 바뀌면서 또다시 ‘탈원전 정책’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번 정한 정책을 계속 고수하기에는 위험성(리스크)이 매우 큰 시대다. 기업도 그렇지만 국가도 아주 민첩하고 신중하게 정책을 검토하고 결정해야 한다.
◆ 尹정부, 文정부의 ‘탈원전’ 정책 전면 수정 나서 .... ‘2030 원전 30% 이상 확대’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새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이 심의의결됐다. 골자는 2030년까지 원전을 30% 이상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열린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원전 비중을 2030년에 30% 이상 가져가기로 결정한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심의‧의결했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지난정부에서 2017년 10월 발표된 원전 단계적 감축방안을 대체해 2030년까지 원전 30% 이상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라고 이날 국무회의 결과를 전했다.
최근 에너지 위기, 전력 수급 안정,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원전 발전 비중 확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탈원전 표방 국가들도 최근 에너지 위기로 다시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도 에너지 합리적 믹스는 필요하다"고 했다.
유럽의회가 원전과 천연가스를 친환경 산업으로 분류해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Taxonomy)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하기 하루 전 우리 정부가 원전 비중을 확대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EU 택소노미는 27개 회원국의 EU각료이사회를 거쳐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 경우 천연가스·원전 투자가 녹색(친환경)으로 분류되고, 공공자금 지원 대상에도 적용될 수 있다.
원전은 탄소를 배출하진 않지만 방사성 폐기물 발생 문제로, 천연가스는 온실가스 배출 문제로 택소노미에서 제외된 지 불과 2년만에 그 내용이 바뀐 셈이다.
환경단체들은 유럽의회의 이 같은 결정을 ‘배신’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이날 강하게 비판하며 향후 유럽사법재판소 소송 등 법적 대응을 할 것임을 시사했다.
유럽 내 찬성과 반대 논란이 예상되는 가운데, 원전이 제외돼 있는 현재의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키려는 윤석열 정부의 개정 작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앞서 문재인정부(환경부)는 지난해 12월 30일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지침서에서 원전을 제외하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조건부로 포함시킨 바 있다. 윤석열정부는 오는 8월까지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한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인 2017년 6월 19일 당시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원전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脫核) 시대’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준비 중인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원전의 설계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면서 탈원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강조 말했다. 18대 대선 때부터 에너지 공급에서 원자력 발전의 비율을 축소하는 탈원전 에너지 정책을 제시해온 문 전 대통령으로선 당연한 주장이었다.
19대 대선에서는 이를 더욱 구체화해 신규 원전 전면 중단 및 건설계획 백지화,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중단 및 월성 1호기 폐쇄, 그리고 탈원전 로드맵 수립을 공약으로 제시하는 등 점진적으로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축소해 2060년까지 ‘원전제로(0)’를 추진해 원전에 의존한 전력생산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하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탈원전 이후 한전의 전력구입비가 폭증하며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해지자 2019년부터 다시 원전발전 비중을 늘려 전력구입비를 낮추도록 했다.
2020년에는 원전발전 비중이 탈원전 이전과 비슷한 수준인 29.5%로 되돌아갔고, 전력구입비 역시 원전 비중이 늘어나면서 다시 낮아졌다. 이를 두고 사실상 ‘탈원전 실패’를 정부가 자인한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결국 임기를 3개월여 앞둔 지난 2022년 2월말, 문 대통령은 "향후 60년 동안은 원전이 주력 기저 전원(電源·Power Supply)으로 충분히 활용해야한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건설이 지연되고 있는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에 대해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단계적 정상가동을 할 수 있도록 점검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차라리 솔직하게 국민 앞에 탈원전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위기상황에서 기댈 곳은 원전밖에 없다는 것을 털어 놓으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 역시 “지난 5년간의 탈원전 정책을 뒤집고, 향후 60년간 원전이 주력이라며 입장을 바꿨다”며 “정권의 잘못된 판단으로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지적했다.
원전업계 또한 문 대통령의 태도 변화에 "살려달라는 호소 5년간 모르쇠로 지내더니 이제 와서 원전이 주력"이라며 비판했다. 원전 건설과 운영 일정을 늦춰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원전 경쟁력을 상실해 놓고 이제 와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박수현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 대통령 발언 내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고, 산업부도 “탈원전은 60년 이후부터 본격 진행하고 지금은 원전을 그대로 활용한다는 정부 정책 기조를 다시 확인한 발언”이라고 밝혔지만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 尹정부, 원전 비중 확대 속도 낼 듯...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 하향 조정 불가피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4일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전력수급상황실에서 '여름철 전력수급 비상대책기간 첫날 전력 유관기관별 상황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산자부에 따르면 ‘새정부 에너지 정책방향’은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현실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판단, 기저 전원으로서 원전의 활용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등을 통해 2021년 말 기준 ‘전력믹스’상 27.4%인 원전발전 비중을 오는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사실상 재생에너지 발전목표를 하향 조정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고준위방폐물 처분을 위한 특별법 제정, 국무총리 산하 전담조직 신설 등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방안도 실행키로 했고 태양광이나 풍력 등 친환경 재생에너지도 보급 목표도 재정립하기로 했다.
에너지정책 방향에 따라 운용되면 화석연료 수입의존도는 2021년 81.8%에서 오는 2030년 60%대로 감소하게 될 것으로 추정됐다.
원전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오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기로 했다. 또 독자적인 소형모듈원전(SMR) 노형 개발에 약 4천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수소산업 관련해선 청정수소 공급망 확충 계획도 제시했다. 아울러 태양광 탠덤 셀, 풍력 초대형 터빈 등 차세대 기술 조기 상용화를 추진해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기로도 했다.
정부는 에너지 신산업 창출과 수출 산업화로 에너지혁신벤처기업이 2020년 2천500개에서 2030년 5천개로 늘어 일자리도 약 10만개가 창출될 것으로 분석했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적정 비중은 4분기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 아울러 내년 3월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등 관련 법정 계획을 통해 이번 새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을 구체화하고 차질 없이 실행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 환경단체 반발 만만찮아... "원전 위험 가중시키는 에너지 정책 당장 철회해야"
환경운동연합은 이날 오후 정부의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 확정 관련 성명을 내고 “새로울 것도 고무할만한 것도 없이 원전 위험만 가중시키는 위험한 ‘새정부 에너지정책’은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합은 ‘오는 2030년까지 원전 비중 30%’라는 정부 목표에 대해 신규 원전 건설이 불가능한 점을 들며 “정부는 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을 ‘계속운전’이라는 미명으로 무리하게 가동시키겠다는 뜻”이라며 “낙후된 발전소의 수명연장으로 원전 위험을 가중시킬 뿐 아니라, 처분 대책이 없는 핵폐기물을 무책임하게 지속적으로 발생시키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전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줄어든 것은 석탄 화력발전소의 발전 비중이 아니라 오히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라며 “유럽연합도 전쟁으로 빚어진 에너지안보 위기 타개를 위해 REPowerEU를 통해 재생에너지 의존을 강화하겠다고 나서는 마당에 한국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만 역행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연합은 “40년 넘게 지속해왔으면서도 정부 지원이 없으면 산업 생태계가 망가진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 사양산업인 원전 산업 세일즈에 몰두할 때가 아니라 실효적 온실가스 감축 계획과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시스템 구축을 위한 정책을 수립해야한다”고 주장했다.
◆ '탈원전' 인식 조사... 文정부 '탈원전 정책 잘못했다' 54% 대 '잘했다' 37.8%
◆…［출처=전자신문, 리얼미터 제공］
전자신문 의뢰로 리얼미터가 지난 3월 28~29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에너지 정책 방향 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정부가 원전 건설 및 수명연장 금지 등 원자력발전을 축소하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것에 대해 '잘했다'는 응답이 37.8%, '잘못했다'는 응답은 54.0%를 기록했다. 잘못했다는 응답이 더 많은 셈이다.
반면 '윤석열 정부가 원전 발전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49.0%('매우 그렇다' 33.6%, '그렇다' 15.4%)였다. 이에 반해 원전 비중을 축소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39.4%( '매우 그렇지 않다' 28.7%, '그렇지 않다' 10.7%)로 조사됐다. 원전 확대를 지지하는 여론이 우세하지만 반대 여론도 적지 않은 셈이다.
특히 이념 성향에 따라 원전 관련 여론이 극명히 갈렸다. 본인을 보수라고 생각하는 국민의 71%는 원전 비중 확대에 찬성했다. 반면에 진보라고 생각하는 국민의 65.4%는 원전 확대에 반대했다. 원전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정책에 대한 국민 여론이 이념 성향에 따라 극명하게 나뉘고 정치 쟁점으로 고착화된 것으로 분석됐다(신뢰수준 95%, 표준 오차는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 '탈원전 정책' 전면 재조정 필요성 대두(?)... 5년 전과 상황 달라져
환경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탈원전 정책에 대한 전면 재조정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5년 전과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는 게 그 이유다.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다소 누그러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변이 확산이 진행되고 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까지 겹치면서 원전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더해 한전의 경우 지난해 약 6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영업 손실 발생도 정부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각국은 이미 에너지 전쟁에 돌입해 원전 가동을 확대 또는 신설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프랑스와 체코가 그 대표적 사례다.
발전에 장기간 소요되는 재생에너지보다는 원전 또는 기존 석탄 화석을 사용한 화력발전에도 눈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사회가 약속한 ‘탄소중립’도 중요하지만 우선 자국의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게 목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30년까지 설계수명(30~40년)이 끝나는 원전은 고리 2호기를 포함 모두 10기다.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설계 수명을 연장하지 않고 폐기하는 방향이다. 하지만 현재 이를 대체할 방안이 부족한 상황이다. 원전 수명을 연장해 가동할 수 있는 여력은 남아 있다.
문재인정부는 2030년까지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겠다는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내놓은 바 있다. NDC 달성을 위한 방법론으로 재생에너지 30%, 원자력 24%를 제시했다.
그러나 많은 에너지 전문가가 이 같은 문 정부 에너지 믹스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원전 대비 재생에너지의 낮은 발전효율 때문이다. 원전의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되고, 재생에너지의 효율을 감안하지 않아 실현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제는 정부와 민간 전문가(학계·경제계 등)가 국가 차원의 균형된 ‘에너지 믹스’ 설정에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요금 인하 또는 일부 재정지원과 같은 미봉책이 아닌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로서의 에너지 수급 관련 국가 차원의 싱크탱크 운영, 에너지 전문가와의 협의체 구성 등을 통한 근본 대책을 마련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