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행성 게임 비리 의혹 수사가 확대되면서 상품권 업체 선정 과정에서 여러 이익단체와 브로커들이 정·관계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았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3월 상품권 인증제 도입 후 경쟁에서 탈락한 업체 60여곳 중 일부 업체 관계자들은 최근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정치권 인사와 친분을 과시하는 브로커들이 줄을 대주겠다며 거액을 요구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잇따라 진술했다.
검찰은 이들의 진술이 대부분 '전언의 전언'이라 큰 무게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 업체들이 공통으로 지목하는 인물들은 정치권 등과 모종의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최대한 증거를 확보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브로커로 의심되는 새로운 인물들이 계속 거명되고 있어 이들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한 검찰의 보폭이 그만큼 넓어지고 있다.
검찰은 업체에서 브로커에게 돈이 흘러들어갔다면, 중간에서 일부 '배달 사고'가 있었더라도 나머지는 정·관계로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검은 돈의 흐름을 추적하다 보면 의혹의 몸통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이익단체 로비 있었나 = 서울동부지검은 지난해 11월 게임장 업주들의 이익단체인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한컴산) 전직 임원 A씨가 상품권 업체들로부터 각각 수억원씩 20억여원을 거둬 상품권 업체 지정 권한을 갖고 있는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는 첩보를 근거로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일부 사실 관계가 다른 데다 '제이유' 횡령 사건이 터져 수사는 중단됐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수사 기록을 넘겨받아 검토했지만, A씨에 대해 출국금지 외에 별도 조치를 취하지는 않고 있다.
한컴산 현직 회장인 김민석(구속)씨 역시 상품권 발행업체들로부터 거액을 모아 정관계 로비에 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를 바탕으로 19개 상품권 업체를 일제히 압수수색해 회계장부를 확보했다.
한컴산과 함께 게임기 업체들의 모임인 한국어뮤즈먼트산업협회(KAIA)도 정치권 연루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이 단체 정영수 회장은 우종식 원장에 앞서 게임산업개발원장을 지냈다. 올 4월에는 남궁진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협회 고문으로 영입했다.
이 협회는 남궁 전 장관을 영입하면서 업계에서 24억여원의 특별회비를 상품권 업체들로부터 거둔 것으로 알려져 이 돈의 용처와 관련해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한국전자게임사업자협의회 대표 겸 상품권 발행업체 싸이렉스 주주인 곽형식씨는 지난해 9월 국회 문광위 소속 김재홍 열린우리당 의원과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이 미국 라스베이거스 게임박람회에 참관할 때 경비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져 행사 후원 배경에 의혹이 쏠리고 있다.
곽 대표는 한국어뮤즈먼트산업협회 이사도 맡고 있다.
◇ 업체·브로커 로비 물증 확보가 관건 = 한컴산 임원인 김씨나 어뮤즈먼트산업협회 정 회장 등과는 달리 상품권 발행업체 안다미로 대표 김용환씨는 직접 게임업체를 운영하면서 정·관계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씨는 문화관광부가 올 1월 구성한 '사행성게임대책 태스크포스(TF)에 정영수 회장과 함께 참여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안다미로가 주최하는 '펌프 잇 업' 게임 세계대회 'WPF'에 남궁 전 장관을 조직위원장으로 영입하는 등 이전부터 정·관계 주변을 맴돌았다.
건설업이나 청소년단체에 관여하면서 정치권 인사들과 상품권 업체를 연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들도 있다.
건설업자로 알려진 브로커 이모씨는 최근 상품권 발행업체에서 탈락한 Y사 전 대표에게 8천만원을 받고 정치권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다른 이모씨는 전직 국정원 간부와 국회의원을 끼고 김용환씨 등 업체로부터 거액을 모금해 정치권에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 때문에 출국금지된 상태다.
검찰은 상품권 지정에서 탈락한 업체들을 중심으로 정치권 로비와 관련해 '공통 분모'를 찾고 있지만, 대부분의 로비가 현금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아 브로커로 알려진 인물들의 신병 처리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안다미로 대표 김용환씨는 이미 경찰과 검찰에서 한번 내사를 받으면서 회계장부 등 관련자료들이 깨끗하게 정리했을 가능성이 높아 검찰은 다른 쪽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