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시험 공고권을 함께 가진다면..."
공인회계사 2차시험 합격자 명단이 6일 공고된 가운데 발표를 앞두고 이미 일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명단이 공개돼, 합격자 명단의 보안에 심각한 취약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제41회 CPA시험의 합격자 명단이 공고된 시간은 6일 오후 4시30분경. 이것 또한 수험생들의 빗발치는 확인전화를 우려해 금감원측이 당초 6시에서 최대한 앞당긴 시간이다.
그러나 명단이 공고된 4시30분 이전부터 금감원의 CPA시험 홈페이지에는 "이왕에 다 알려진 합격자 명단인데 성적조회는 뭐 하러 막아 놓았느냐"며 명단의 사전 유출에 대한 수험생들의 항의가 줄을 이었다.
실제로 회계사시험과 세무사시험 등의 동영상 강좌를 제공하고 있는 한 사이트에는 금감원의 합격자 명단공고 시간인 4시30분 보다 몇 시간 앞선 12시경부터 익명의 회원이 게재한 합격자명단 때문에 게시판이 북새통을 이뤘다.
이 게시물은 합격자명단을 프린트한 것을 다시 사진으로 촬영한 것으로 다소 흐리기는 하나 합격여부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해당 홈페이지에는 이미 게시자에게 "합격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응시생들의 꼬리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누구에 의해 유출됐을까?
우선 합격자명단이 완성되는 과정부터 보자.
이번에 합격자가 발표된 제41회CPA시험의 2차시험은 지난 7월 4일과 5일 양일간 치러졌다.
8월 초 채점이 끝나면 시험당국인 금감원에서 채점지를 모아 개개인별로 문제지와 답안지의 짝을 맞추고 순위를 확인하게 된다.
채점을 끝낸 출제자들은 합격자를 가려내는 통계확인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최종 명단까지는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 금감원의 입장이다.
출제위원들이 유출했을 가능성은 희박한 셈이다.
채점일에 맞춰 생각해 볼 때 합격자는 1차적으로 최소한 8월 중순 이전에 확정되는 셈이고 출제위원들에 의해 유출됐다면 이미 8월부터 명단이 돌아다녔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합격자명단은 금감원의 심의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합격자를 확정하는 결의를 해야만 공개가 가능하다.
그러나 합격자명단은 최종심의일인 6일 3시 이전에 돌아다녔고 이는 명단이 최종심의를 거치기 전에 유출된 것을 의미한다.
CPA시험과 관련된 법안은 재정경제부 소관이고 합격자명단을 관보에 게재하는 등의 최종 공고도 재경부에서 담당을 한다.
재경부 관계자는 "합격자 명단을 관보에 게재하는 것은 재경부가 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통상 이틀 전에 금감원에서 명단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번 시험에서 재경부가 명단을 받은 날은 6일보다 앞선 4일이다.
합격자를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심의위원회가 열리기 이틀 전에 명단이 재경부로 넘어갔다는 것.
최종심의위원회가 열리기 이전에 명단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금감원과 재경부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확인을 해봤지만 우리쪽에서 유출된 것은 아니다"며 "금감원에서 진상조사를 하고 있으니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난색을 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조사는 아직 하고 있지 않다"며 "조사를 하라면 하긴 하겠지만 우리가 그러한 조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권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발생한 것일 텐데 어떻게 가려낼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유출을 막을 방법은 없는가
합격자 명단의 유출은 재경부에서도 금감원에서도 기본적으로 인맥에 의한 유출일 것이라는 판단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여느 시험이나 마찬가지지만 주위에서 친한 사람이 집요하게 알려달라고 하면 솔직히 거절하기 힘들 것"이라며 구조적인 문제보다는 개인적인 도덕성 문제에 힘을 실었다.
금감원 관계자도 "과거 사법시험 등에서 보듯이 합격자 발표일 하루정도 전에 명단이 일부 유출되는 일은 있어왔다"며 "최종심의 전에 유출된 것은 문제이지만 개인의 도덕적인 의식이 약해져서 생길 수 있는 부분을 제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또 합격자 유출의 근원적인 해결을 위해 시험관리와 관보게재등의 공고권을 하나의 기관이 가져갈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관보게재를 위해 심의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재경부에 명단을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유출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시험관리를 하는 금감원이 합격자를 가려냄과 동시에 관보게재까지 담당한다면 모든 책임을 금감원에서 지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재경부 관계자는 "관보게재는 기본적으로 재경부장관의 소관이고 따라서 법이 바뀌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며 "그렇다고 금감원이 하고 있는 시험관리를 재경부가 하기에는 인력부족 등의 문제가 있어서 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관계부처인 재경부와 시험관리를 맡고 있는 금감원이 해결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가운데 조금이라도 빨리 합격여부를 확인하고픈 수험생들의 마음은 금감원과 재경부의 공고가 아닌, 신뢰받을 수 없는 인터넷 사이트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또한 우수 합격자 영입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각종 대형 회계법인의 합격통보 문자를 관보보다 먼저 받아보고 있는 실정이어서 좀더 일괄되고 완벽한 행정을 요구하는 수험생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