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는 "셀프빌링 제도의 취지가 좋고 상대적으로 자료상의 악용가능성도 적기 때문에 일단 시행해 보고 문제점이 생기면 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인 반면, 국세청과 일선 세무서는 "자료상의 악용가능성이 여전하고, 매입자들이 발행하는 세금계산서를 모두 검증하기 힘들어질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셀프빌링 제도란 공급자가 세금계산서를 발급해주지 않더라도 매입자가 스스로 세금계산서를 만들어 영수증이나 송금확인서 등의 증빙서류와 함께 제출하면 세무서가 이를 통해 실제거래가 있었음을 확인해 부가세액공제를 해주는 제도이다.
그동안 도매상이나 공급자가 세금계산서의 발급을 꺼릴 경우 소매상들은 매출만 있고 매입은 없어지는 상황이 발생해 매입세액공제를 받지 못하거나, 일부는 자료상을 통해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받는 등의 문제점이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재경부가 야심차게(?) 마련한 방안이다.
그러나 매입자가 스스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수 있다는 점은 외향적으로 볼 때 남발의 우려가 충분하고 이를 모두 확인하고 처리해야할 일선세무서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매입자 발행 세금계산서 무엇이 문제인가
국세청과 일선 세무서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매입자들이 발행해온 세금계산서를 모두 확인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그동안 상대적 약자였던 매입자가 자료상과 결탁해 실제 거래가 이뤄지지 않은 세금계산서를 남발할 가능성이 많고, 이렇게 되면 일선 세무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양의 세금계산서에 대해 진위조사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는 매출세액이 매입세액보다 많을 때 내는 것으로 사업자들은 매입세액을 늘려 환급을 받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자연스레 부정환급의 시도가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 일선 세무서의 지적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소득공제와 같은 다른 공제보다 환급의 기간이 짧다는 것.
부가가치세 환급은 조기환급과 일반환급으로 나뉘는데 조기환급 대상은 수출업자, 부동산신축업자, 사업설비설치업자등으로 부가세 신고기간 종료 후 15일 이내에 환급받을 수 있으며 나머지 사업자도 일반환급 대상자로 신고기간 종료후 30일 이내에 환급 받을 수 있다.
자료상의 문제도 있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렇게 짧은 기간 내에 일선세무서들이 검증을 마쳐야 하는 부분이다.
물론 환급을 위해서는 거래가 있었음을 증빙하는 서류가 완벽해야 하지만 환급시기를 잘 활용하고 갈수록 수법이 교묘해지는 자료상을 활용한다면 그것 만으로도 일선 세무서의 혼란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하다.
한 조세전문가도 "셀프빌링 제도는 이미 국세청에서도 상당한 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부가가치세는 공제의 시기가 수시적이기 때문에 세금문제로 접근하기에 앞서 시스템상으로 자연스럽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셀프빌링 제도가 생긴 원인부터 보자면 매출자가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주지 않기 때문에 매입자 스스로가 발행해서 확인 받게 하는 것인데, 발행해 주지 않으면 바로 고발하게 하든지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주지 않는 당사자와는 거래를 끊게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마련되야 자연스러운 상황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론적인 접근이지만 매입자에게 세금계산서 발행의 권한을 추가해 우회적인 확인작업을 요구하지 말고, 근본적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매출자에게 직접적인 규제를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옳다는 지적이다.
셀프빌링은 이대로 진행되는 것인가
셀프빌링 제도에 대해 일선 세무서 관계자는 "자료의 양성화와 매입자 보호라는 좋은 취지로 출발한 것으로 보이나 부작용에 대한 부분은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며 "앞으로 시행령에서 뭔가 대책이 있지 않겠냐"며 "설마 이대로 시행되겠냐"는 우려를 표시했다.
국세청 관계자도 "요즘 자료상들은 영수증, 송금확인서 뿐만 아니라 금융거래 부분까지도 똑같이 만들어서 제출하는 형편인데 매입자가 악용하여 남발할 경우 사실확인작업이 어려울 수 있다"는 불안한 심정을 나타냈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실무자인 일선세무공무원들의 이런 우려에도 제도를 마련한 재정경제부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부가세환급을 받으려면 세금계산서가 실질거래에 의한 것인지를 세무서장이 확인하게 돼 있다"며 확인작업에 대한 믿음(?)과 일선 세무서의 노력을 요구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셀프빌링이 도입되면)세무서에서는 매입자의 세금계산서를 확인하는 절차가 번거로워지고 발품도 많이 팔아야 한다는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그런 것들을 검증하는 것이 세무공무원의 업무인데 그것도 안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나"라고 일선세무서의 엄살을 지적하기도 했다.
재경부는 또 "셀프빌링은 일단 그대로 시행해봐야 한다"며 "시행 후 문제점이 있으면 보완하는 식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밝혀 추후 시행령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지만, 셀프빌링 제도의 향방에 대한 실무자들의 관심과 불안감은 이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