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과는 업무 영역 놓고 파열음
이명박 정부 출범에 맞춰 이뤄진 금융감독기구 개편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금융위원회의 행보에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주요 정책의 발표 일정을 잡았다가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미루는가 하면 외환은행 매각 문제에 대한 입장도 한 달여 만에 변화를 보이는 등 금융당국이 오히려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또 공적 민간기구인 금융감독원과는 업무 영역은 물론 금감원에 대한 금융위의 지도.감독 범위를 놓고 마찰을 빚고 있다.
2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는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을 단계적으로 푸는 금산분리 완화 방안과 보험.증권지주회사에 제조업 자회사를 허용하는 방안을 애초 6월 중에 내놓기로 했지만 이를 늦출 계획이다. 정부안을 확정하는데 2~3개월 걸릴 전망이다.
미국산 쇠고기 사태로 국민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 정책을 예정대로 발표할 경우 사회.경제적 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지난 16일 간부회의에서 "주변 여건을 고려해 속도조절이 필요하지만 정책의 기본 방향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금융위 안팎에서는 국민 여론과 이해관계자의 충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처음부터 너무 서두른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위는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을 애초 5월 26일 발표하려다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발표와 동시에 한다는 이유로 연기했다가 6월 2일 단독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외환은행 매각 문제에 대한 금융위의 대응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전 위원장은 4월 23일 "법적인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원만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지난 5일에는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고 아무리 국익과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한다 하더라도 국민적 정서를 감안해 충분히 공감을 얻겠다"며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주에 외환은행 대주주인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연루된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의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나온 전 위원장의 이런 발언들은 외환은행 매각의 실타래가 풀리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낳았다가 이를 다시 수그러들게 했다.
금융산업과 금융시장을 중시해야 할 금융당국이 미국산 쇠고기 사태에 휘말린 것으로 처음부터 신중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경희대 권영준 교수는 "금융정책은 실물 경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며 "그런데 금산분리 완화를 서두르다가 지금은 주춤하고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서도 갈팡질팡하는 것을 볼 때 철학과 원칙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정책담당자들이 언론 플레이를 너무 많이 하는 것도 문제다"며 "시장 참여자들이 무척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금융위는 지난달에는 금감원과 증권선물조사심의위원회, 회계감리위원회 등 심의 및 자문기구의 관할을 놓고 다툼을 벌인데 이어 이번에는 금감원에 대한 금융위의 감사권을 놓고 파열음을 내고 있다.
금융위가 지난 16일 금감원의 업무 전반과 직원들의 복무 위반 등을 직접 감사하고 제재도 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자 금감원 직원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금감원 노조는 성명을 통해 "금융위가 금감원을 예속화하려는 시도"라며 "금융정책기관인 금융위와 감독집행기관인 금감원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겠다는 감독기구 체제 개편의 취지와 정반대로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위는 금융감독기구 설치법에 감사권이 명시돼 있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고려대 장하성 교수는 "금융위는 정책기구로서 금감원을 감독할 수는 있지만 감사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감사는 감사원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