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마약원료물질 밀수출의 중간 경유지로 활용돼온 것으로 드러나 관계당국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4일 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인 K(47)씨 등 2명은 헤로인의 원료물질인 무수초산(Acetic Anhydride) 12t을 경기도 안성의 한 공장에서 엔진오일로 위장해 이란으로 수출하려다 2일 경찰에 적발됐다.
이에 앞서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5차례에 걸쳐 총 50t 분량의 무수초산을 과산화수소수로 포장해 파키스탄 등으로 밀수출한 혐의로 파키스탄 출신의 한국 국적 소지자 H(42)씨가 두바이에서 인터폴에 검거돼 국내로 송환될 예정이다.
조사결과 이들은 한국인 도매상을 중간에 내세워 염료 등 합법적인 제품을 만든다는 명분으로 일본에서 무수초산을 들여온 뒤 한국 내 공장에서 다른 제품으로 위장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밀수출하려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처럼 한국을 경유해 다른 국가로 대량의 무수초산을 밀수출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등에 따르면 2001년에도 이란인이 한국에 위장회사를 차려 무수초산 91t을 직물원단으로 위장해 한국∼이란을 거쳐 아프가니스탄으로 수출하려다 이란 정부에 적발된 적이 있다.
무수초산은 염료와 TNT 화약 등의 제조과정뿐 아니라 모르핀을 헤로인으로 정제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원료물질이다. 따라서 세계 최대의 아편(모르핀의 원료) 생산지인 아프가니스탄으로 수출되는 무수초산은 거의 100% 헤로인 정제 목적으로 사용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제마약조직이 한국을 무수초산의 아프간 수출 경유지로 활용하는 이유는 한국이 `마약청정국'이라는 지위를 갖고 있어 현지 정부의 의심을 덜 받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무수초산은 미국과 일본 등 몇몇 국가로 생산지가 한정돼 있지만 이들 국가는 마약이 널리 퍼져 있어 국제적인 감시의 눈길이 따갑기 때문에 곧바로 중동으로 수출하기가 어렵다고 경찰은 전했다.
그러나 밀수출 과정에서 국내 관계당국의 관리가 적절했는지 여부도 도마에 오른다.
무수초산은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상 관리대상 물질로 지정돼 있어 마약류로 전용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 엄격한 관리가 이뤄져야 하지만 이번 조사결과 일본에서 수입된 무수초산이 다른 제품으로 위장돼 5차례나 해외로 수출돼온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은 유엔 산하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B)를 중심으로 구성된 `국제마약원료물질 통제프로그램'에 가입해 무수초산 등 23개 마약원료물질을 통제ㆍ관리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을 예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찰은 "앞으로 국가정보원, 세관 등 국내 유관기관과 긴밀히 협조해 마약청정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온 역량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