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보복폭행' 중재판정 영향 관심
2년을 끌어 온 예금보험공사(예보)와 한화그룹 간 대한생명 매각 유.무효 분쟁에 대한 국제중재 판정이 초읽기에 돌입, 그 결과가 주목된다.
한화와 호주 맥쿼리생명 간 '이면계약'을 인정해 국제상사중재위원회가 계약 무효를 선언하거나 절충안을 제시할 경우 '헐값매각 의혹' 등 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업계는 김승연 한화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이 변수로 작용할지 여부에도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 이달 내 결론 전망
15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국제상사중재위원회는 대한생명 매매 계약의 유.무효를 둘러싸고 예금보험공사와 한화가 신청한 중재에 대한 최종 결론을 이달 안으로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중재판정부가 이미 결론을 내린 채 발표 시기만 조율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예보는 한화가 2002년 10월 대한생명 지분 51%를 인수할 때 맥쿼리생명과 이면계약을 체결한 것은 인수 자격 요건에 어긋난다며 2006년 7월 말 중재를 신청했다.
예보는 한화가 대한생명 인수에 필요한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대신 맥쿼리생명의 대한생명 인수 지분 3.5%를 1년 후 한화건설에서 인수키로 하는 이면계약을 체결하고 그 대가로 맥쿼리생명에 대한생명 운용자산 3분의 1에 대한 운영권을 보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화가 이면계약을 통해 외형상 대한생명 인수 자격을 요건을 갖춰 단독 입찰자가 되는 바람에 다른 투자자들의 응찰을 제한했고 결국 대한생명의 몸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예보는 대한생명 지분 16%를 주당 2천275원에 살 수 있는 한화의 콜옵션 행사 권리 역시 매매 계약의 일부로 분쟁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중재가 종결될 때까지 콜 옵션에 응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예보가 중재를 신청하자 한화도 콜옵션 의무를 이행하고 이미지 실추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며 맞중재를 신청한 상태다.
◇ 일부 보상 판결땐 헐값 매각 논란 불가피
양측은 작년 말 변론 절차를 마무리한 뒤 중재판정부의 최종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금융업계는 2006년 6월 대법원이 김연배 당시 한화증권 부회장의 개인적인 비리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한화의 이면계약을 통한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점을 감안해 무효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어느 한 쪽에만 유리한 판결을 내리기보다 한화와 맥쿼리생명의 이면계약에 따른 예보의 손실을 보상해 주도록 하는 절충안이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한화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중재위의 판정에 '모 아니면 도'식 결론은 없었다"며 "이미 우리나라 대법원이 대한생명 인수에 법적 문제점이 없다고 판결한 만큼 중재위도 이를 존중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시나리오에서는 보상 금액이 적정 주가 수준을 밑돌 경우 헐값 매각 논란이 일 수 있다.
하나대투증권이 대한생명의 주당순자산(BPS) 6천100원을 감안해 상장 시 적정 주가를 8천600원 정도로, 동양종금증권이 BPS의 1.5배 정도로 추산하는 등 증권사들은 대체로 적정 주가를 8천~1만원 부근으로 보고 있다. 이는 2002년 예보의 지분 매각 가격 2천275원에 비해 3.5~4.4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대한생명이 상장된 후 주가가 9천원 부근에서 형성될 경우 한화컨소시엄이 51%의 지분매각으로 얻게되는 차익은 약 2조4천억원에 달하게 되며 콜옵션 행사를 통해 2천275원에 16% 지분을 확보할 경우 차익이 약 3조2천억원으로 늘어날 수 있다.
하나대투증권 이정헌 연구원은 "대한생명이 상장될 경우 주가는 8천600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며 "한화가 대한생명 지분을 애초 합의 가격보다 높은 주당 5천100원 선에 인수하더라도 대한생명 상장을 통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경우 예보는 대한생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국민의 돈인 공적자금 회수에 차질을 빚었다는 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부 보상 판결이 내려질 경우 예보가 중재절차를 문제 삼아 중재절차 취소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예보 관계자는 "대법원의 판결은 형사적 영역에 관한 것으로 계약의 유.무효를 따지는 이번 사안과는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는 예측해서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은 "국민의 돈인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을 자격 없는 업체에 헐값에 파는 것을 막기 위해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며 "만약 다른 결정이 내려진다면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면계약 선례 우려
무엇보다 큰 후유증은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이다.
검찰은 한화가 맥쿼리생명과 '이면계약'을 맺은 것이 입찰방해라고 보고 기소했으나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입찰방해죄가 성립하려면 2명 이상의 경쟁이 있어야 하는데 대생 입찰엔 한화 컨소시엄만 참여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그러면서도 전윤철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15억원의 뇌물을 제공하려 한 김 부회장의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결국 돈 로비와 이면계약이라는 비합법적 수단이 동원된 인수 절차에 면죄부를 내어준 것이다.
만약 국제상사중재위의 판정도 이 같은 편법을 묵인하는 쪽으로 결론 날 경우 '이면계약을 통한 편법적 M&A도 성공하면 그만'이란 선례가 남게 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법리적 판단을 떠나 자격 요건이 없는 회사가 이면계약으로 다른 회사를 끌어들여 M&A에 성공한 것은 상식의 잣대로 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국제상사중재위 판정에서도 '별 문제 없다'는 식의 결론이 나오면 이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식의 결과 지상주의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 보복폭행 사건도 영향 미칠까
정치권 등 일각에서는 작년 김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이 반영될 경우 한화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시왕 당시 한화증권 고문이나 김 부회장의 로비 등 구체적인 정황들이 있기 때문에 중재판정부가 이에 근거해 명확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이종구 의원은 작년 6월 "보복폭행 사건 무마를 위해 경찰청장과 통화한 유 고문은 대생 매각 당시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매각심사소위원으로 한화의 대생 인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라며 보복폭행 사건을 중재판정부에도 보고토록 예보에 요구했다.
예보 관계자는 "최장봉 전 예보사장이 (보복 폭행이) 국제 중재에서 당연히 참고가 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만큼 중재판정부에도 보고가 됐을 것으로 본다"며 "그러나 중재판정부의 결론과 발표 시기 등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있어 계약이 무효가 될지 여부를 속단해서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중재판정부가 계약을 기망에 의한 것으로 보고 계약 무효 결정을 내릴 경우 예보는 한화 컨소시엄 측에 대금을 돌려주고 대한생명 지분 매각을 위한 재입찰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한화는 재입찰에 참여할 자격을 박탈 당할 가능성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