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경우) 새로운 짝짓기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전광우 금융위원장의 발언이 20일 알려지면서 은행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연일 은행권을 질타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감독당국의 수장까지 가세해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를 꼬집으며 구조조정 가능성을 언급하자 은행들은 진의를 파악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은행들은 "체질 강화를 요구하는 원론적인 발언일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면서도 구조조정의 회오리가 불어 닥칠지 내심 걱정하는 분위기다.
A은행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은행권에 각종 지원을 해주는 `당근 정책'과 함께 앞으로 은행권의 부실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전적인 체질 강화를 주문한 것 같다"며 "짝짓기가 당장 현실화할 수 있다기보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위험관리를 강화하라는 뜻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B은행의 한 인사는 "은행권의 부실이 가속화할 경우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고 암시한 것으로 보이지만, 국내 은행들의 상황은 그런 수준까지는 아니다"고 항변했다.
최근 대부분 은행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전분기 대비 하락했지만 우량 은행 기준인 10%를 대부분 넘는 데다 정부가 굳이 채찍질을 하지 않아도 은행 스스로 경영합리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C은행 담당자는 "지금 은행들이 어려운 것은 전 세계적으로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이지 부실이나 건전성 악화, 구조적인 모순 등 과거 외환위기 때와는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D은행 관계자도 "짝짓기할 대상도, 여력도 없는 상황에서 은행간 인수합병(M&A)이 가능하겠느냐"며 "금융감독당국 수장이 현 시점에서 할 발언은 아닌 것 같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M&A에 대한 전 위원장의 발언이 '오락가락'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전광우 위원장은 지난 7월 은행장들과 간담회에서 "국내 은행 간 M&A와 관련해 공격적이거나 과도하게 경쟁적인 자세는 은행 경영 환경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며 "당분간 (M&A관련 논의를)자제하는 것이 국가경제와 금융시장 전체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외로 금융시장의 불안이 지속하고 있고 잠재적 리스크 요인이 상존하는 만큼 각 은행은 덩치 키우기보다 내실 다지기에 주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제 와서 M&A 화두를 꺼내는 것은 결국은 `메가뱅크'로 가겠다는 것"이라며 "앞뒤가 맞지 않고 원칙도 없다"고 비판했다.
금융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전 위원장이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획책하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방어막을 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