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촉.오 세 나라가 패권을 놓고 다투던 중국 삼국시대. 조조와 유비가 한중(漢中) 땅을 놓고 지구전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조조의 휘하 장수인 하후돈이 들어와 "오늘 밤 군호(암호)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고 묻자 조조가 방금 먹은 닭갈비 생각이 나서 "계륵"이라고 무심결에 말했습니다.
군호가 '계륵'이라는 말을 전해들은 조조 휘하의 지략가 양수는 즉각 철군 준비를 시켰습니다. 계륵은 먹을 것은 없고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란 뜻으로 현재 처해 있는 전황(戰況)과 같다며 곧 철군명령이 내려질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
조조는 이 사실을 알고 매우 화를 내며 양수를 처형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조조가 진정 화를 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영리한 양수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이 꽤나 불쾌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세무사 업계는 내년 제26대 세무사회장을 비롯한 새로운 임원선출을 앞두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내년도 선거에 투신할 후보자들의 하마평(下馬評)이 나도는 등 '물밑' 선거전이 점차 본격화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조용근 현 세무사회장이 재선을 위해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낼 것으로 알려졌고 송춘달 전 서울세무사회장, 신광순 현 중부세무사회장을 비롯해 2, 3명의 후보자들이 업계반응을 저울질하며 '대권도전'의 꿈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선거전 양상이 차츰 가열되려하는 시점에서 재선을 노리는 조용근 현 회장이나 물갈이의 중심을 꿈꾸는 자천타천 후보자들 입장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계륵'과도 같은 존재가 하나 도사리고 있습니다.
바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 중인 '변호사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 폐지 법안'(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 대표발의)입니다.
이 법안은 수 십년 세무사 업계의 숙원이 그대로 담긴 법안으로 그동안 세무사 업역 확충 차원에서 추진됐던 다른 어떤 법안과 비교자체가 불가능한 막강위력을 지닌 'A급 태풍'이나 다름없습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붙어 있다는 측면(변호사)에서 성사를 장담할 수 없는 법안입니다. 실제로 이 법안은 17대 국회에서 상임위(재경위)를 통과하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율사(律師)출신 국회의원들이 주도하는 법사위의 벽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당시 법안을 대표발의했던 이상민 의원은 18대 국회의원 당선과 함께 다시 한번 기세를 몰아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고 현재 국회 재정위에 법안이 계류 중에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놓고 볼 때 이 법안에 대한 성사여부는 불투명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성공이든 실패든 이 법안은 내년 2월 치러지는 세무사회 선거판의 최대 변수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만약 이 법안이 이번 정기국회 회기 동안 성사가 된 경우, 이는 고스란히 현직 임원들의 '공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합니다. 실제로 현직 임원들이 이 법안 성사를 위해 그 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현직 수성을 노리는 조용근 세무사회장에게는 선거판의 패권을 장악할 호재로 작용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 반면 도전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치명적' 비수나 다름없습니다.
만약 이 법안이 우여곡절 끝에 이번 회기 동안 성사가 됐다고 가정한다면 '인물중심' 선거판에 익숙한 세무사업계의 관행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게임오버'나 다름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반대의 경우를 상정해 보면 결과는 달라집니다. 만약 이 법안이 또 다시 무산된다면 업계에서는 현직 임원들에 대한 성토가 뒤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 동안의 경험칙으로 볼 때 성사 자체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동정론'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법안 무산의 상징적 의미는 재선을 노리는 조용근 회장에게는 치명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 적어도 이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패러다임과 접근방식을 추구하는 새 인물이 필요하다는 '물갈이론'이 자연스럽게 공세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능성 여부만 놓고 저울질한다면 후자의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민감한 시기, 미증유의 '불확실성'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 수성을 원하는 자, 공성을 원하는 자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입니다.
국회에 법안을 계류만 해놓으면(폐기가 되지 않는 이상) 18대 국회 회기 내에는 언제라도 논의가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법안을 논의,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업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종합부동산세를 포함한 대규모 감세법안이라는 초특급 '논란거리'가 수두룩하다는 측면에서 우선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는 이 법안 논의는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서 내년 이후 논의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회 입장에서도 현 시점에서 이 법안은 '계륵'이나 다름없다는 판단을 내린 셈이지요.
이유야 어찌됐건 간에 본격적인 개전(세무사회 선거)을 앞둔 상황에서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증유의 불확실성은 어느 정도 제거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