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은 선진통상국가 실현을 위한 세계최고 관세행정 구현이라는 슬로건 아래 수출입화물의 물류촉진, 성장동력 산업에 대한 세제지원 등 국민·기업 친화적 정책과 함께, 해외 불법농수산물 등 유해 먹거리 차단으로 국민건강 보호, 사회안전을 위한 마약·테러물품 반입방지 등의 규제적 행정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관세행정이 추구하는 목표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가재정수입 확보를 위한 국세의 징수와 수출입업체의 지원, 수출입 등 통관절차 간소화와 불법·부정무역 단속을 위한 엄정한 통관절차 준수 등 상호 이율배반적인 요소가 공존함을 알 수 있다.
신속과 친절만을 강조할 경우 공평과 정확이라는 원칙이 소홀해 질 수 있고, 마약·테러물품 반입방지 등 사회안전 측면만을 강조하다 보면 통관시간 지연 등으로 물류흐름을 저해하여 기업체에 부담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율배반의 상황, 즉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렸을 때 우리는 흔히 딜레마에 빠졌다 고 한다. 그리스어의 di(두 번)와 lemma(제안·명제)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딜레마' 라는 말은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을 의미한다.
그러나 행정학자 디목(M. E. Dimock)이 현대행정국가의 기능 유형을 보호, 규제, 원호, 봉사로 설명하고 있듯이, 오늘날 대부분의 행정기관들은 국민에 대한 봉사와 보호의 기능과 함께 최소한의 규제를 통하여 사회의 질서와 안전을 확보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 또한 수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한편, 행정이 추구하는 목적이 아무리 이상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하게 되면 국민들로부터 외면과 질타를 받게 마련이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 라는 말이 있지만, 사회 구성원들 간의 합의와 절차를 중요시하는 오늘날의 행정에서는 이처럼 목적지상주의적 발상은 설득력이 없는 구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님비(NIMBY) 현상처럼 지역이기주의가 만연하는 사회에서는 과정과 절차를 중요시하는 행정이 오히려 시간낭비와 비효율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몇 년 전 국가차원의 사업이던 원자력폐기물 처리장 건설과 관련하여 처리장을 자진해서 유치하고 그에 따른 지역발전투자지원을 이끌어낸 어느 지방자치단체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행정은 운영의 묘를 살릴 때 상생의 해답을 찾아 더욱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종합예술로 승화되는 것이다.
다른 행정기관들과 마찬가지로 관세업무를 수행하는 중에도 이처럼 딜레마 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고 때론 위험할 수도 있는 이른바 3D(Difficult, Dirty, Dangerous) 업무분야 가운데 하나가 마약단속업무가 아닌가 생각된다.
해외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제1의 관문인 인천공항의 세관검사대 앞에서 휴대품 검사에 불만을 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불쾌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여행자들을 가끔씩 본 일이 있을 것이다. 관세선을 통과하는 화물이나 여행자에 대한 검사권은 세관직원의 고유한 권한으로서 외국의 공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긴 비행에 지친 여행자들의 입장에 서서 보면 마약류 적발을 위한 인터뷰나 휴대품 검사 절차가 불편하고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여행자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그리고 수출입화물의 통관을 지연시키지 않고 마약류 등 불법 물품들을 적발하는 이율배반적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하는 딜레마는 세관직원이면 누구나 느끼는 바이다.
하루에도 4∼5만명이 드나드는 공항에서 마약밀수 우범자를 색출하기란 실로 사막에서 바늘 찾기 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일인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마약 밀수수법이 더욱더 지능화되고 있어 마약조사요원들도 이에 대응하여 해외여행자, 수입통관물품, 국제우편물, 특송화물 등을 통한 마약밀수의 구조와 특성을 일일이 꿰뚫고 있어야만 한다.
이와 함께 마약조사업무는 통제배달이나 위장거래 등 특수조사기법을 활용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미행, 감시, 추적 등 어려운 업무도 수행해야만 한다. 그래서 흔히들 관세청의 밀수단속업무를 예술에 비유하곤 하는데, 그 중에서도 마약밀수 단속업무는 종합예술에 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관세청이 국내 전체 마약 압수량의 60% 이상을 적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를 수도 있다. 국내에서 남용되는 메스암페타민(일명 필로폰) 등 대부분의 마약류가 해외로부터 밀수에 의해 공급되고 있고, 관세청은 전국 주요 공항만 등 관세국경에서 마약류가 국내로 밀반입되기 전에 차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관세청이 마약밀수단속의 핵심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쉽게 수긍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공항만, 국제우체국 등 관세국경의 최일선에서는 X-ray검색직원, 마약탐지요원, 휴대품 검사직원, 그리고 마약조사요원들이 불법 마약류의 국내 밀반입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작은 빈틈도 보이지 않고 매일매일 두 눈을 부릅뜨고 업무에 임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자신은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일하지만 밝은 양지와 같은 사회를 꿈꾸는 우리사회의 파수꾼이며 딜레마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진정한 예술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철수 관세청 조사감시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