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전군표 前국세청장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유죄) 소식이 전해진 국세청은 의외로 무덤덤한 모습이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론이 나왔다는 반응이 대부분.
특히 부산고등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지난 8월 이후 이미 게임은 끝이 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 크게 동요할 필요가 없다는 것.
국세청 사람들은 이번 사건은 '과거'의 일이며 더 이상 들춰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반응들이 대부분이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현장검증까지 거치면서 내려진 고법 판결을 뒤집는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다만 이 같은 담담함의 기저에는 모종의 불안감과 실망감도 감지되고 있다. 그 동안 국세청 내부에서는 전 前국세청장 사건을 둘러싸고 '개인적 비리'에 불과하다며 외부에 의한 사건의 언급조차 경계해 왔던 것이 사실.
그러나 대법원의 판결은 사실상 전 前국세청장에 대한 '단죄'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국세청 조직내 인사청탁성 뇌물수수 관행이 적어도 지난해까지 존재했었음을 대법원이 확인한 셈이기 때문.
즉 존재여부가 불투명했던 국세청의 '환부'가 대법원 판결로 드러난 것.
게다가 상당히 많은 수의 국세청 사람들이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정 前부산국세청장의 진술이 아닌 전 前국세청장의 주장이라는 것에 무게를 싣고 있었다. 다시 말해 '무죄' 가능성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상당부분 존재했었던 것이다.
국세청 일각에서는 가뜩이나 신뢰도 평가가 진행되는 와중에 나온 전 前국세청장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파장이 확산되면, 국세청 조직 전체에 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 대법 판결 '후폭풍' 어디까지 미칠까= 대법원의 판결은 사건의 핵심인 전 前국세청장이 부하직원이었던 정상곤 前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승진을 위한 로비성 뇌물을 수수한 사실이 있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 동안 국세청은 이 부분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통해 전 前국세청장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고 나아가 국세청 조직의 명예에 흠집을 가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내려짐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한 재론의 여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인사청탁성 뇌물수수가 존재해온 정부 부처'라는 오명을 씻어내는데도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신뢰도 영향 주지 않을까"…국세청 '긴장'= 현재 국세청은 신뢰도 평가 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다. 신뢰도 평가 점수는 올 한해 국세청의 국세행정 성과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성적표'나 다름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 前국세청장의 유죄확정 소식은 '악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국세청 사람들의 전언. 대법원 판결 자체가 전 前국세청장 개인의 단죄 차원을 뛰어 넘어 국세청 전체 조직에 대한 '불투명성'을 인정한 것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전 前국세청장의 유죄확정 소식이 일파만파 퍼져나가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현 상황이 조용히 넘어가기만을 기대하는 모습도 감지되고 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뢰도 평가는 올 한해 국세청이 사활을 걸고 추진했던 일이다"라며 "자칫 전직 국세청장의 비리사건으로 인해 신뢰도 평가에 악영향이 미친다면 현직 종사자들 입장에서는 대단한 낭패가 아닐 수 없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전 前국세청장 사건은 전적으로 개인의 비리행위"라며 "그러나 여론의 특성상 이 문제는 단순히 전직 국세청장 한 명에게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자칫 국세청 조직 전체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키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