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국세청은 물론 국민들을 실망케한 전군표 前국세청장 사건은 검찰 수사단계에서부터 금품을 건넸다는 정상곤 前부산국세청장과 이를 본 적도, 받은 일도 없었다는 전 前국세청장의 진술이 엇갈리면서 진실게임 양상을 띠고 있었다.
'진실'에 근접해 있는 두 사람의 말이 달랐기 때문에 진실여부를 가리는 것은 온전히 재판부의 몫이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정 前부산국세청장을 진실게임의 승자로 만들었다.
전 前국세청장 측은 지난 8월 2심 재판부가 원심을 확정하자 즉각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11일 전 前국세청장 측이 제기한 상고심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리고 징역 3년6월, 추징금 7900여만원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지난 1년여 동안 끌어온 법정공방은 전 前국세청장의 유죄가 최종 확정되면서 마침표를 찍게됐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결은 단순히 전 前국세청장 개인의 비리행위에 대한 '단죄' 의미 이상을 내포하고 있다.
사건의 본질은 개인간 벌어진 뇌물비리 사건이지만, 모든 과정과 배경에는 '국세청'이라는 조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 따라서 이번 사건의 책임은 전 前국세청장 본인과 국세청 조직이 함께 끌어안고 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 '눈물의 호소'와 'CCTV현장검증'= 전 前국세청장은 그 동안 재판과정에서 줄기차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 왔다. 특히 2심 재판에서는 전 前국세청장 측 변호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사건 현장에 대한 현장검증까지 이뤄지기도 했다.
전 前국세청장 측은 정 前부산국세청장이 금품을 전달하기 위해 국세청을 방문했다고 주장한 지난 2006년 10월10일 국세청사 주변에 설치된 CCTV에 정 씨의 모습이 촬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현장검증을 요청했었다.
변호인 측은 현장검증 자체를 전 前국세청장의 무죄를 입증해 낼 수 있는 결정적 물증으로 부각시켰던 것. 그러나 지난 5월19일 이뤄진 국세청사에 대한 현장검증은 결과적으로 전 前국세청장의 무죄입증은 커녕 '악재'가 됐다.
2심 재판부는 "CCTV에 정 씨의 출입모습이 촬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 씨의 진술은 거짓이라고 주장했지만 현장검증 결과 CCTV에 촬영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전 前국세청장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과정에서 보여준 전 前국세청장의 '눈물의 호소' 또한 물거품이 됐다. 전 前국세청장은 재판장에서 "머리를 쪼개고 가슴을 열어 자신의 결백을 보여주고 싶다"고 주장하며 무죄를 호소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전 前국세청장의 호소는 대법원 마저 무죄를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무위로 돌아갔다.
□ 치욕의 역사로 기록된 '전군표'…그리고 국세청= 대법원의 유죄 확정 선고로 인해 국세청은 40여년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치욕적인 역사의 한 단면을 가지게 됐다. 대법원의 선고는 단순히 전 前국세청장 개인에 대한 단죄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 前국세청장과 정 前부산국세청장 사이에 벌어진 일들은 사적인 공간이 아닌 국세청이라는 '공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이뤄진 일. 구속 당시 이들은 모두 국세청의 핵심 지휘라인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이들 두 사람이 국민이 만들어준 국세청 '공직'의 한 자리를 놓고 사적으로 거액의 뇌물을 주고받았다는 것이 '진실'로 판명됨에 따라 국세청도 적지 않은 이미지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전직 국세청장의 나쁜행동은 국세청이라는 기관의 이미지는 물론 일선에서 고생하고 있는 전국 2만여 국세공무원 개개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것까지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대법원의 유죄 확정 선고로 인해 전직 수장의 부정행위 존재 여부를 끝까지 부정하고 감싸고 싶어했던 많은 수의 국세청 조직원들에게도 커다란 상처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 전직 국세청 수장들이 남긴 '부정의 부스러기'= 대법원이 전 前국세청장에 대한 유죄를 최종 확정함에 따라 지난 1년여간 숨가쁘게 달려온 이 사건은 마침표를 찍게 됐다.
현재 국세행정 신뢰도 평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국세청 입장에서는 '악재'로 작용할지언정 일단 '불확실성' 하나는 완전히 제거된 셈.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에는 다소 이른감이 없지 않다.
최근 전 前국세청장에 앞서 국세청장으로 재직했던 이주성 前국세청장이 건설업자가 개입된 대형 금품수수 사건에 연루돼 구속 기소, 재판을 받아야 할 형편에 놓여 있기 때문.
이 사건 또한 이 前국세청장 개인비리 형태를 띠고 있기는 하지만, 국세청 조직을 등에 업고 있는 시점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측면에서 전적으로 '과거의 일'로 치부하기에는 사건 자체가 내포한 파장의 깊이가 상당하다.
이에 따라 국세청 안팎에서는 이 前국세청장 사건과 관련한 재판의 추이가 어떻게 전개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기축년(己丑年) 새해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점, 새로운 출발을 위해 조직의 내외부를 단단히 추슬러야 할 국세청은 여전히 전직 수장들이 저지른 '부정한 과거'의 끝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는 형편에 놓여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