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가 깨지면서 경제회복에 '환율비상'이 걸렸다.
추석연휴 직전인 지난 1일 원·달러환율은 장중 한때 달러당 1166원 60전까지 떨어졌다가 당국이 구두개입에 나서면서 1170원대로 반등했다.
말이 구두개입이지 실제 시장개입이 동시에 진행될 정도로 상황은 긴박했다. 추석이후에도 1170원을 놓고 공방이 거듭되는 양상이다.
원화가치 하락(달러가치 상승)으로 수출이 늘어나는 현상을 흔히 '환율효과'로 부른다. 지난해 원·달러 환율은 연평균 1100원대였다. 올해 들어 상반기 중 평균 1350원대로 상승해 수출호조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러나 1100원대는 고사하고 앞으로 1년 6개월 안에 달러당 900원대로 진입할 것이라는 해외투자은행들의 전망들도 꼬리를 물고있다.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이 이어지면서 세자릿수 환율진입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들이다.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가 왜 이렇게 오르는가.
근본원인은 글로벌 달러약세다.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하면서 '강한 달러'전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달러약세화는 이제 주요 선진국들과 중국 등이 국제적으로 양해한 상태다.
게다가 달러화가 새로운 캐리 트레이드 통화(carry trade currency)로 위상이 추락했다. 초저금리인 달러를 빌려 위험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일본 엔화가 캐리 트레이드의 대표적 통화였다.
달러가 졸지에 '새로운 엔'이 된 이유는 세 가지다.
미국의 금리가 거의 제로 수준이라는 점이 첫째다. 이른바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조치에 따른 통화팽창이 둘째고, 이 극히 느슨한 통화정책이 가까운 시일 안에 철회되리라는 아무런 신호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셋째다.
'싸구려 달러'를 빌려다 수익성이 높은 통화 자산들을 사들이다보니 달러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약세화의 주원인은 공급초과다. 국내 수출기업들의 수출호조에다 증시에 외국인투자자금이 몰리면서 달러유입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최근 며칠사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투자자들의 순매도에 따른 달러회수와 환율급락을 막으려는 당국의 시장개입이 얽히면서 환율은 하루사이 10원 넘게 출렁이는 등 널뛰기 양상도 벌어진다.
매도물량은 주로 수출업체들 쪽에서 쏟아지고, 환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손절매 하자는 심리가 작용하면서 보유달러를 대거 처분하는 조짐도 감지된다. 정부당국 또한 그동안 환율하락을 용인하는 자세를 취해왔다.
기준금리를 올리려는 한국은행과 이에 반대하는 기획재정부간의 미묘한 신경전 탓이다. 환율이 더 떨어지면 수출업체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돼 경기회복이 늦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이렇게 되면 한은이 섣불리 기준금리를 올려 긴축으로 나서기 어렵게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당분간 환율은 증시와 맞물리면서 매도-매수 공방 속에 변동성이 커지고 급등락을 지속하겠지만 달러약세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굳어가고 있다. 따라서 원·달러환율은 추석이후 4분기 경제회복과 성장의 최대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달러화는 원화에 대해 과연 얼마나 떨어질 것인가. 삼성경제연구소는 하반기 환율전망을 1180원 정도로 전망한 바 있다. 수출기업들은 평균적으로 1170원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버틸 수 있다고 무역협회는 전한다.
주요 수출기업들은 연초부터 하반기 환율을 1100원에서 1200원 수준으로 내다보고 준비를 해왔고 달러로 수입하는 원자재와 부품 구매비용도 절감돼 환율급락에 따른 타격은 크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원·달러 환율 급락과 함께 엔·달러 환율도 달러당 90엔대가 깨지는 등 엔화 강세가 지속되고 있어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주장들이다.
원·달러환율이 10% 하락하면 우리나라의 수출은 0.3% 감소하는 데 반해 엔·달러환율이 10% 하락하면 우리나라 수출은 2.3% 증가한다는 게 산업연구원의 분석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달러 약세화가 대세이고 엔·달러 환율마저 80엔대로 진입한 마당에 한국 원화만이 약세를 고집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달러당 900원대 전망은 전혀 터무니없지는 않다.
런던의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각국에서 판매되는 햄버거 빅맥 가격을 기준으로 그 나라 통화가치를 구매력 평가한 결과(2009년 7월16일 현재) 원·달러 적정환율은 952원으로 나타났다.
지금도 20%정도 원화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 엔화는 달러당 89.6엔으로 현실에 거의 근접해있고 중국 위안화는 무려 48%가 평가 절하된 상태다.
'환율효과'를 톡톡히 본 2분기와는 달리 당장 4분기부터 원·달러 환율하락에 따른 '역환율효과'를 감내해야 하는 쪽으로 상황은 반전됐다. 특히 지난 9월 무역수지흑자가 50억달러를 넘어선 마당에 환율 때문에 수출이 어렵다며 정부가 계속 시장에 개입할 수는 없다.
대외적으로 명분이 서지 않고, 잦은 개입에 따른 외국환평형기금의 막대한 이자도 큰 부담이다. 수출경쟁력을 환율을 통한 가격경쟁력에서 품질과 디자인 쪽으로 승부를 걸어야한다.
한국 원화 가치가 올라가면 한국경제력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한국시장과 기업에 대한 투자도 장기적으로 늘어난다.
환율효과는 우선은 달콤하지만 장기적으로 나라경제에 짐이다. 세자릿수 환율에 살아남을 수 있는 강인하고 단단한 체질과 제품경쟁력을 갖추는 것만이 우리경제가 영원히 사는 길이다.
원화 강세는 경제회복에 분명 큰 부담이지만 한국경제의 진정한 선진화를 위해 우리 모두가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또 하나의 벽이다.
[변상근 논설고문]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