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가정 권위있는 국제조세 과세기준의 제정 기관인 OECD는 2009년 'OECD 이전가격 과세지침' 중 제5장 (이전가격분쟁 예방 및 해결을 위한 행정적 접근방법)의 일부 내용을 수정하여 각국의 과세당국 간 상호합의절차 (Mutual Agreement Procedures)의 한 형태로서 중재제도(Arbitration)가 사용될 수 있다는 내용을 명확히 하였다.
이것은 사실 2008년 이미 개정된 OECD 모델조세조약 제25조(Mutual Agreement Procedures)의 제5항의 내용을 이전가격 과세제도 측면에서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데 그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OECD 모델협약 제25조의 개정에 따라 상호합의의 연장선에서 양 당사국이 이전가격과세 관련 분쟁해결을 위해 상호합의를 시작한 후 2년 이내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중재절차를 통해 해결을 도모할 수 있다.
둘째, OECD 회원국들은 설령 조세조약에 중재관련 규정을 명백히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과세당국 간의 상호합의를 통해 구속력 있는 중재절차를 마련할 수 있다.
중재제도에 대한 OECD의 기본 입장
위와 같이 OECD 이전가격 과세지침상에 중재제도를 명시적으로 포함시킨 것은 국제조세분쟁에 있어 적극적으로 중재제도의 도입을 권유하는 최근의 OECD의 입장을 이전가격 분야에서도 구체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OECD는 세계 31개국으로 구성된 회원국 정부간의 국제적 포럼이라 할 수 있는 데, 각국 정부들이 모여 각 분야에서 국제적 기준을 만들어 가는 OECD가 각국 정부의 고유한 주권행위라고도 할 수 있는 조세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어찌보면 이러한 주권을 일부 포기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중재제도를 권장하는 것이 아이러닉하게 보일 수도 있다.
사실 10여년 전만해도 OECD는 국제조세문제의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중재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에 소극적이었다.
당시 OECD 주요국의 대부분의 과세당국은 조세조약상의 상호합의절차를 통해 국제적 분쟁을 해결해 가는 데 별 어려움이 없으므로 무역, 투자 등 상사문제의 해결에 주로 사용되는 중재절차를 굳이 국제조세분쟁의 해결 수단으로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OECD 주요국가들의 민간기업들이 내린 조세조약상 상호합의제도 운영에 대한 평가는 달랐다. 상호합의 제기 시점부터 2년이 지나도록 분쟁이 해결되지 않는 사례는 태반이었고 최악의 경우 수년이 지나도 상호합의가 이루어 지지 않은 채 결렬이 되는 수도 적지 않았는데 이는 민간기업 입장에서는 매우 불만스런 결과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서구의 민간기업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OECD의 민간 자문기구인 BIAC (Business and Industry Advisory Committee)을 통해 OECD 재정위원회에게 중재제도의 도입을 강력히 요청하였던 것이다.
그 뒤 수년간의 노력과 협의 끝에 OECD 재정위원회는 2007년 2월 'Improving the Resolution of Tax Treaty Disputes'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상호합의등을 통해 당사국간의 분쟁이 효과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에는 강제적인 중재제도를 도입할 수 있도록 OECD 모델조세조약을 개정한다는 입장을 천명하였고 이에 따라 실제로 2008년에는 OECD 모델조세조약 제25조를 개정하여 조약 당사국이 합의하는 경우에는 강제적인 (compulsory) 중재절차 규정을 도입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또한 작년에는 이러한 토대 위에서 국제적인 이전가격과세 분쟁 해결을 위해서도 중재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OECD 이전가격과세지침도 개정을 한 것이다. 요컨대, OECD는 2000년대에 들어 국제투자를 활발히 하는 민간기업들의 주장을 전향적으로 수용하여 그 공식적인 입장을 바꾸었으며 과거 중재절차에 소극적인 미국, 영국, 프랑스등 주요 OECD 국가들도 최근에는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꾸어 중재제도를 도입하는 데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입장 변화는 각국의 투자가들에게 큰 환영을 받고 있다.
OECD 모델조약 상 제시된 중재제도의 주요 내용
OECD 모델조세조약은 2008년 개정되면서 제25조 제5항에 강제 중재 규정을 들여왔다. 이러한 강제 중재 규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중재 절차 개시의 요건
강제 중재 절차를 개시하기 위해서는 상호합의절차 개시 후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2년이 경과해야 하고, 납세자가 강제 중재를 신청해야 한다.
상호합의 절차 개시 후 2년이 경과하더라도 납세자가 강제 중재를 신청하지 아니하고 상호합의를 기다린다면 강제 중재 절차는 자동적으로 개시될 수 없다. 다만, 납세자가 강제 중재를 신청하면, 상호합의를 진행하던 체약당사국의 권한 있는 당국은 원칙적으로 이를 거부할 수 없다. 또한 강제 중재 신청을 위하여 필요한 기간(2년)은 체약 당사국이 달리 정할 수 있다
■ 중재 절차의 대상
납세자는 상호합의절차에서 권한 있는 당국이 합의하지 못한 쟁점에 한하여 강제중재를 신청할 수 있다. 예컨대, 일부 쟁점에 대해서는 상호합의 절차에서 해결되고, 나머지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쟁점이 있을 경우, 이에 관해서만 강제 중재 절차에서 취급될 수 있다. 이러한 점이 중재판정기구의 결정이 사건의 모든 쟁점에 미치는 일반적인 상사중재와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체약 당사국은 강제중재의 대상을 모든 조세조약에 관한 분쟁으로 규정할 수 있고, 특정한 범위의 분쟁(예컨대, 이전가격과 같은 지극히 사실인정에 관한 분쟁)로 제한할 수도 있다.
■ 판정 방법
체약 당사국은 강제중재 절차에서 합의에 이르는 방식은 다양하게 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independent opinion approach'와 같이 중재인이 당사자가 제출한 사실관계와 주장을 검토하고,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에 근거한 서면의 형식으로 그 자신의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는 방식 이 있으며, 또 소위 'last best offer approach' 또는'final offer approach'로서 중재 판정기구(arbitral panel)가 양 체약 당사국의 권한 있는 당국으로 하여금 쟁점에 관한 해결안을 제출하도록 한 다음, 제출된 해결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도 있다.
OECD 모델조세조약의 주석서는 강제중재 절차에서 합의에 이르는 방식에 관하여 체약 당사국이 위와 같은 방식 외에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그 합의 방식도 조세조약 외에도, 의정서(protocol)나 외교 각서의 교환(exchange of diplomatic notes)에서 규정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 중재 판정의 효력
중재 판정은 납세자가 중재판정을 집행하려는 상호합의를 수용하는 경우에만 체약 당사국에게 구속력이 있다.
OECD 이전가격 과세지침에 도입된 중재절차의 의의
서두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2009년 개정된 OECD 이전가격 과세지침에서는, 국가간에 이전가격 과세 분쟁이 발생한 경우 중재절차를 통해 해결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했을 뿐 아니라, OECD 회원국들이 2008년 OECD 모델조세조약에 포함된 중재관련 규정을 그들의 조세조약에 아직 반영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관련 당사국들이 합의만 한다면 구속력 있는 중재절차를 통해 이전가격 과세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중재제도의 활용을 한층 더 유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OECD의 중재제도에 대한 과세기준 제정의 시사점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OECD 모델조세조약 또는 이전가격 과세지침에서 소개되는 중재제도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중재절차가 조세조약 상의 상호합의절차의 한 부분을 구성하거나 상호합의를 보완하는 것이지 국가간의 별도의 세무분쟁 해결 절차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이 기존의 국가간 상호합의절차에 의한 국제조세분쟁의 해결이라는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도 강제적 중재제도를 상호합의 제도에 접목시킴으로써 각국의 조세주권 유지라는 명분과 중재제도 도입에 따른 상호합의 제도의 효율성 제고 및 국제조세분쟁 해결절차의 확실성 제고라는 실리를 동시에 달성하였다고 평가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중재제도에 대한 OECD 재정위원회의 주도적인 노력은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등 OECD 주요 회원국들로 하여금 그들의 조세조약 개정 시 중재규정을 상호합의 조항에 포함시키도록 하는 데 촉매 역할을 하였고, 향후에는 이에 더 나아가 OECD 국가간에 복잡하고 까다로운 국제적 이전가격 과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중재제도가 활용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조치들은 국제적 투자가들에게는 매우 고무적인 변화로 받아들여 질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국제적인 과세기준의 변화 속에서 우리의 과세당국은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우리 과세당국은 OECD 모델조세조약 또는 이전가격 과세지침상의 중재규정 도입에 대해 현재까지 유보 또는 반대의사를 표명한 바는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OECD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거나 우리의 조세조약이나 법령에서 중재제도를 적극 도입한 바도 없이 비교적 수동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필자는 이 문제에 관하여 우리 과세당국의 보다 선제적인 대응을 촉구하고 싶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소규모 개방경제체제로서 국제 투자가들의 우리 투자환경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우리나라에서의 투자촉진과 경제발전에 긴요하다는 점이 여실히 확인되었다.
대부분의 국제투자가가 투자의사 결정시 조세측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factor)은 세금을 얼마나 감면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보다는 투자 의사결정 당시 얼마나 확실성 있게 미래에 발생할 세부담을 예측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국제 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이하 '국조법')'의 제6장 상호합의절차에 최근 도입된 OECD의 중재제도를 적극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조치는 국제적 조세분쟁과 관련하여 국제투자가들의 예측가능성을 한층 더 제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외국인 투자 유치에 있어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는데, 사실상 세수감소를 초래하지 않으면서도 외국인 투자촉진을 기대할 수 있다면 그런 제도는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 제고 측면에서 적극 검토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 과세당국이 아시아의 다른 인근 국가에 앞서 우리나라의 이전가격 세제에 중재제도를 도입하는 선제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투자환경 개선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다시 한번 국제사회에 천명하는 효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이경근 세무사] 미국 버클리대학 경영학 석사, 프랑스 시앙스포대학 경제학 박사, 국세청 부가가치세과장 등 역임, 국세공무원교육원 평가계장 역임, 국세청 본청 국제조세국 근무, 옛 재경원 세제실 국제조세과 주무서기관 근무, OECD 재정위원회 사무국 주무행정관·재정경제부 세제실 국세조세과장·유엔 산하 조세전문가회의 부의장 등 역임,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 한국조정위원 활동, 법무법인 율촌(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