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중순 임명된 기획재정부 주영섭 세제실장을 따라다니는 몇 가지 수식어가 있다. 'FM적인 업무스타일, '선비다운 부드러운 성품'.
목소리가 크거나 과감하게 업무를 밀어붙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130여명의 세제실 직원들 중에는 그를 따르는 부하직원들이 많다. 세제실 한 과장은 '모셨던 상사 중 가장 선한 사람'으로 주 실장을 꼽는다.
또 다른 과장은 "민주적인 리더십으로 세제실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좋아졌다"며 "다른 부분에서 굉장히 잘 해주시기 때문에 일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일을 열심히 안 하면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라고 밝혔다.
세제실 직원들은 주 실장에 대해 혼자서 열심히 공부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부하직원에게 부담을 덜 주는 스타일이라고 귀뜸한다. '권위적'이라는 말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먼 사람이다.
세제실 한 사무관은 "부하직원에게 지시를 하는 것보다 언제나 상의하는 타입으로 업무를 같이 하기 좋다"고 말했다. 이런 점 때문인지 2007년 국세심판원(現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시절 '가장 닮고 싶은 상사'로 꼽히기도 했다.
주 실장을 대표적인 '선비형' 관료로 부르는 이유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도 영향을 미쳤지만, 무엇보다 '겸손함'도 큰 영향이 있었다. 묵묵히 드러내놓지 않고 자기 일을 하는 우직함이 그를 잘 표현하고 있다.
□ 시골소년, '세금쟁이'가 되다
주 실장은 1957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 밑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누에로 실을 뽑아 옷을 만들었고, 누에 속의 번데기를 먼저 먹자고 동네아이들과 줄을 서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주 실장의 도시생활은 서울대를 진학하면서 시작됐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그가 느낀 가장 큰 스트레스는 '사투리'였다. 몇 년 동안 표준말을 쓰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더 어색해졌던 것.
그는 서울대 사범대학 일반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학과대로라면 '선생님'이 됐을 테지만, 학과보다는 대학이름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서울대를 들어가겠다는 목표로 성적에 맞춰 사범대학에 지원하게 됐다고 한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취업이 잘 되던 시절, 그가 행정고시를 보게 된 것은 현재 김엔장에서 일하고 있는 최선집 변호사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최 변호사가 대학 3학년때 행정고시에 합격하게 되면서 학과에 행정고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
그는 1980년 행정고시에 합격, 성적에 맞춰 국세청에 지원하면서 '세금'과의 인연을 맺었다.
국세청에 들어가서야 국세청이 세금을 하는 곳인줄 알았을 정도로 세금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우리나라 조세정책을 총괄하는 최고자리에 올라와 있는 셈이다.
국세청에 있던 그가 세제실에 오게 된 것은 현재 법무법인 세종 고문으로 일하던 이근영 씨의 역할이 컸다. 1989년 이 씨가 광주국세청장에서 재무부 세제국장으로 가면서 그에게 같이 가자고 권유해 세무국에 입성하게 됐다.
□ 정통 '세제통'의 길을 걷다
그는 조세정책을 입안하는 부서가 재무부 세무국 5개과에서 현재의 재정부 세제실 14개과, 1개팀으로 늘어날 때까지 세제실을 거의 떠나지 않았다. 1995년 국비유학, 국회 재정경제위원회(現기획재정위원회), 국세심판원에서 근무한 것을 제외하곤 말이다.
그는 2003년~2004년 조세정책과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고액상습체납자의 명단 공개 및 탈세제보자에 대한 포상금 지급제도를 만들었다. 또 납세자의 날 '고액 납세의 탑' 수여제도를 만든 것도 그의 역할이 컸다.
특히 올해 제44회 납세자의 날(3월 3일)에는 '고액 납세의 탑'에 포스코가 1조7000억원탑을 수상하면서 사상 최고액을 갱신했고, 주 실장 본인도 조세정책관으로서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러나 납세자의 날 바로 전날에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비보로 인해 수훈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2005년 7월부터 2007년 6월까지 약 2년간의 국세심판원 상임심판관으로 근무하는 동안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론스타 펀드의 스타타워 매각과 관련된 1000억원대 조세불복을 처리했다. 또 민주적인 업무스타일과 성품 등에 힘입어 당시 심판원 직원들로부터 '가장 닮고 싶은 상사'로 선정됐다.
2008년 이후에는 재산소비세정책관, 조세정책관으로 근무하며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조세정책의 기본 틀을 만들며, '조세개혁'이라고 불릴 정도로 상당한 변화가 있었던 2008년 세제개편안을 입안했다.
지난해에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세제개편을 하느라 1년을 보냈고, 올해는 친서민, 고용창출, 출산장려 등을 위한 세제개편을 비롯해 종합부동산세의 재산세 전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완화제도 등을 개편할 계획이다.
□ 체력관리는 '등산'-숨이 차오르는 느낌이 좋다
조세정책을 입안하는 일은 정신노동임과 동시에 육체노동이기도 하다. 국회가 있는 달에는 밤늦게까지 의원들과 협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지난해에는 경제위기로 인해 임시국회 때에도 많은 양의 세법을 개정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이 바빴다. 또 지난해 정기국회에는 올해 1월 1일 새벽에야 세법이 통과돼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체력이 필요했다.
그는 체력관리를 '등산'으로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동네 뒷산을 두 시간 정도 걷는 방식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등산으로 체력관리를 해온 덕분인지 평행봉 10번, 턱걸이 10번 정도는 별 무리 없이도 거뜬하게 해치울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주 실장은 대학 4학년생인 연년생 남매를 키우고 있다. 그는 연년생 남매에 대해 "아르바이트보다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빨리 취업했으면 좋겠다"며 여느 아버지와 같은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주영섭 재정부 세제실장 약력]
▲1957년 12월 9일생 ▲전북 고창 ▲고창고-서울대 사범대학 일반사회학과-미국 코네티컷대학원 경제학 석사 ▲행시 23회
▲재무부 세제국 소득세제과·법인세제과·조세정책과(4급), 재정경제원 국비유학(미국 코네티컷대), 재정경제원 한국국제조세교육센터 운영사무소 파견, 재정경제부 세제실 소득세제과장, 소비세제과장, 법인세제과장, 조세정책과장(부이사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파견, 국세심판원 상임심판관, 근로장려세제추진기획단, 기획재정부 재산소비세정책관, 조세정책관, (현) 세제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