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집은 사는 곳 이상의 재산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집을 가지고 있느냐, 혹은 몇 채를 가지고 있느냐가 '부(富)'의 척도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에 정부는 부를 축적할 목적의 부동산 투자(투기) 등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1세대1주택자가 집을 양도할 때는 양도소득세를 비과세하고 그 이상의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는 중과세를 적용하는 등의 법적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불과 수 년 전, 여러 채의 집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중과세를 피하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을 하는 위장이혼까지 감행하는 사례가 발생,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위장전술은 일단 과세당국에 걸리면 여지없이 세금을 두들겨 맞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납세자 A씨는 지난 2007년 부인과 합의 이혼을 합니다. 그러나 가족의 연을 차마 끊어내지 못한 채 이러 저러한 상황으로 부인과 엮이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A씨는 이혼 후 소유하고 있던 주택 1채를 매매합니다.
문제는 과세당국이 부부가 양도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위장이혼'을 했다고 판단하면서 부터 터졌습니다. 이혼한 것도 열 받는 일인데, 이를 위장이혼으로 오해받아 세금까지 내게된다면? 미치고 펄쩍 뛸 일이 아닐 수가 없을 것입니다.
□ 이혼 후 주택양도, 비과세 VS 위장이혼, 비과세 불가= 주택 1채와 건물 1채를 소유하고 있던 A씨는 평소 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악화된 관계는 급기야 2004년 A씨가 주택이 아닌 건물로 거처를 옮기면서, 사실상 별거로 이어졌습니다.
이후에도 좀처럼 관계회복은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두 사람은 2007년 5월 이혼에 합의했습니다. 재산분할도 주택은 A씨가 건물은 부인이 갖는 조건으로 정리했고 다만 A씨가 자신 명의로 대출받은 건물 대출금(부인명의)을 이혼 후에도 책임지고 갚아주기로 했습니다.
대출금을 책임지는 조건으로 A씨의 주소지를 부인명의 건물 1층 사업장으로 무상 이전하고 당분간 숙식은 인근 고시원에서 해결하기로 합니다. 아무리 이혼을 했다지만, 멀쩡한 자신의 주택을 두고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기는 다소 비상식적인(?) 결정이었죠.
이후 A씨는 자신 명의 주택을 2007년 11월 6억1000만원에 처분하고 2008년 2월 1세대1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 대상 주택에 해당한다는 내용을 관할 세무서에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가뜩이나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알쏭달쏭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이혼 후 A씨 명의 주택에 살던 부인이 집이 팔렸음에도 불구, 아들이 군입대하기 전까지 만이라도 주택에 살기를 희망, A씨는 보증금 1억원을 마련해 팔았던 주택을 임차, 부인이 거주할 수 있도록 배려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복잡한 부부의 거주방식이 과세당국의 눈에는 곱게 보이지가 않았다는 것이 화근. 과세당국은 A씨가 자신의 돈으로 전 부인의 전세보증금을 마련해 준 점, 이혼한 부인이 사는 집에 버젓이 A씨의 명패가 걸려 있는 점 등을 수상하게 여겼습니다.
아울러 A씨가 주소지로 삼고 있다는 부인 명의 건물에 의식주에 필요한 도구가 한 가지도 없다는 점을 발견, A씨 부부가 '위장이혼'을 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에 과세당국은 A씨가 신고한 주택 매매와 관련한 1주택 양도세 비과세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2억3000여만원의 양도소득세를 부과했습니다.
□ 심판원, "위장이혼 아니다-과세취소"= 과세당국의 세금 부과에 A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조세심판원에 불복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위장이혼이 아닌, 실제로 이혼했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세금 부담도 벗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심판원은 A씨의 불복과 관련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쟁점이 된 주택과 건물 등 현장조사를 진행하는 등 꼼꼼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A씨가 양도한 주택과 부인 명의 건물을 방문, A씨가 양도하고 전 부인과 자식들을 위해 전세보증금까지 내준 아파트 입주카드에 전 부인과 딸만 입주자로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아울러 A씨가 고시원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는 주변인들의 진술도 확보했습니다. A씨도 직접 심판원에 찾아가 부인과 이혼한 후 전세보증금을 마련해주게 된 배경 등을 상세히 설명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에 심판원은 결정문을 통해 "A씨가 주택을 양도하기 전에 이미 협의 이혼했고 전 부인 명의 건물은 8평에 불과해 1주택 비과세를 위해 용도변경만 하면 되는데도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위장이혼을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세금 부과결정을 취소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됐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씁쓸한 여운은 남습니다. 이혼한 부부의 관계치고는 적잖이 얽히고 설켜 있었다는 측면에서 과세당국이 위장이혼이라고 판단할 여지도 충분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지조사 등을 통해 심판원이 알아낸 사항을 과세당국은 왜 애초부터 알아내지 못했을까요. 과세권의 행사가 더욱 중한 일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과세권 행사에 앞서 납세자를 위해 더욱 세심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