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프랑스를 상징하는 술이다.
프랑스라는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와인은 국부(國富)를 창출하는 '효자'다. 그러나 프랑스는 국부를 창출하는 와인 산업을 국가차원에서 지원하지는 않는다. 와인이 국민건강을 해치는 규제의 대상, 즉 '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떨까.
최근의 대한민국은 해외국가에서는 좀처럼 예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주류에 대한 국가차원의 규제를 대대적으로 풀어내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거창한 논리가 깔려 있다.
지난 23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에는 소주와 맥주, 농민주(막걸리 등), 전통주 등 술 제조와 관련한 시설규제를 대폭 완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소주와 맥주의 경우 일정한 규모의 기업들이 시장참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규제는 남겨놓았지만 농민주와 전통주의 경우 사실상 시설규제를 폐지, 누구나 자유롭게 술을 제조해 판매할 수 있도록 장벽을 모두 허물어 버렸다.
정부가 시설규제를 풀어내면서 내놓은 논리는 일견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중소사업자들의 자유로운 시장참여를 통한 경쟁체제 구축, 이는 다양한 주류의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양한 주류의 생산은 그 동안 규제로 인해 억제되어 있던 '국민의 선택권'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도 육성하고 경쟁체제 구축을 통한 산업의 활성화, 국민의 선택권 확대까지 말 그대로 1석3조로 포장돼 있다.
이 같은 정부의 방침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술을 마음대로 만들어도 되는 나라가 과연 제대로 된 나라인가".
이 물음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은 없다.
정부와 일부 학자들이 '탁상공론'을 통해 만들어낸 시장경제학적 측면에 기댄 논리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이다.
방향을 잠깐 돌려보자.
주변에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체질에 맞지 않은 사람도 있고, 과음으로 크게 한 번 '사고'를 친 후 금주선언을 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주(節酒)의 이유는 건강상의 이유가 대부분일 것이다.
술은 건강에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 물질이다.
국가의 책무에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보건정책'을 펼치는 것도 포함된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유독 술에 대해 강도 높은 규제를 해온 이유는 이 때문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지만, 국가의 책무마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술에 취하거나, 미치지 않은 이상 말이다.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 손실 연간 15조원, 살인 등 범죄의 60%이상·교통사고 특례범의 64.5%가 음주상태에서 발생했다는 통계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적정 수준 이상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통계가 증명해주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는 술을 많이, 다양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음주에 의한 폐단이 어느 정도까지 늘어나야만 이런 선전을 멈출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나"라는 반박도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구더기는 단순한 '구더기'가 아니다. 개인의 건강, 나아가 사회와 국가의 건강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시무시한 구더기다.
"주류 제품이 다양하지 않아 국민의 선택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정부의 논리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주종은 지금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다양하다. 소주의 종류도 수 십 가지다. 맥주도 마찬가지. 일본, 독일 등 외산 맥주까지 자유롭게 시장에 진입, 판매되고 있다.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여러 가지 상표를 부착한 막걸리들이 속속 시중에 출시되고 있다.
여기에 위스키, 와인, 고량주까지 원하는 종류대로 선택해 마실 수 있다. 게다가 정부의 통제(행정지도)에 힘입어 가격도 싸다. 어느 구석을 봐서 국민의 선택권이 침해당하고 있는 것인가, 정부는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의 정책 스탠스를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무너진 시장진입 장벽의 틈을 타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제조사들의 난입에 따른 저질주류 유통, 필연적으로 따라붙을 것으로 보이는 '탈세문제' 등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궁극적으로 음주폐해가 낳는 사회적 비용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냐는 반박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의 '책임' 문제로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함부로 덤벼들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다시 한번 이 부분에 대한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