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문제 의사결정 구조 후진적-기업가치 손상과 직결"
"법무·회계법인, 역할 중요-직업 윤리적 책임 다해야"
이현동 국세청장-법무·회계법인 대표단 '간담회'
이현동 국세청장은 취임 후 첫 외부간담회 파트너로 법무법인·회계법인 대표단을 선택했다. 대기업, 대주주 등과 활발한 거래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 대형 '펌(Firm)'들에게 세무문제 등의 조력자로서 성실납세를 유도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줄 것을 당부한 것이다.
국세청장이 법무법인·회계법인 대표자들을 공식석상에 불러 모아 간담회를 가진 것은 사실상 처음. 특히 국세청은 법무·회계법인들이 기업들의 공격적 조세회피에 조력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간담회의 표면적 목적은 기업들이 성실납세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 달라는 당부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지만, 여러 가지 제반 상황을 감안할 때 단순한 당부 메시지 전달 이상의 목적을 가진 간담회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19일 오전 이현동 국세청장은 법무·회계법인 대표단을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로 초청, '대기업·대주주의 성실납세를 위한 간담회'를 가졌다.
이 날 간담회에는 김&장, 율촌, 태평양, 삼일회계법인, 한영회계법인, 안진회계법인, 삼정회계법인 등 국내 주요 법무·회계법인 대표 20명이 참석했다. 국세청에서는 이현동 국세청장, 박윤준 국제조세관리관, 제갈경배 법인납세국장 등이 참석했다.
이 국세청장은 이 날 간담회 모두발언을 통해 대기업·대주주의 성실납세는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고 여유 있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이행해야 할 최소한의 사회적·윤리적 책임임을 강조했다. 특히 일부 대기업들의 후진적인 '세금인식'을 강하게 꼬집었다.
이어 이 국세청장은 최근 세계 유수의 대기업들이 '기업가치 극대화'를 목표로 성실한 세금납부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국제적 기류를 소개한 뒤 "우리나라 일부 대기업들은 아직까지 과거의 세금을 보는 자세에 안주하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우리 대기업의 이사회나 CEO는 세무위험의 통제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이 보편적 현실"이라고 전제한 후 "기업내부의 세금문제 처리과정은 알려 하지 않고 결과만, 그것도 가장 위험한 결과를 가져 올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국세청장은 "최소의 세금이란 목표가 주어진 상황에서 세금문제 처리과정이 회계·경리담당 임원의 전결에 맡겨져 '공격적 세무처리'가 채택될 가능성이 크고 그런 방향으로의 세무의견을 구하는 '펌쇼핑(Firm Shopping)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일부 대기업의 세금문제에 관한 의사결정 구조는 이 시대의 선진적 경향에 뒤쳐져 있고 그 폐해는 결국 기업가치의 손상으로 직결될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대기업, 대재산가 등을 매개로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역외탈세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국세청장은 "우리나라 역외탈세는 기업의 해외투자나 해외투자법인과의 특수관계 거래를 계기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으며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 대주주나 가족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라고 적시했다.
그는 "만일 이런 특징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사례들이 축적되면 우리 기업들이 CEO리스크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외에 이 국세청장은 이 같은 기업들의 세무문제와 관련해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의 순기능적 역할도 강조했다.
이 국세청장은 "법무·회계법인은 모두 고객인 대기업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국가가 공인한 세법전문가로서의 공적기능도 수행해야 한다"며 "성실납세 불이행에 따라 기업이 치러야 할 대가의 위중함을 대기업 등에 대한 서비스 과정에서 기업 이사회나 CEO 등에게 적극 일깨워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이어 "그 동안 법무·회계법인들이 세법 사각지대를 활용해 (기업의)탈세나 조세회피행위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며 "앞으로 대기업·대재산가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때는 국가에서 공인받은 전문인으로서 엄격한 윤리기준에 따라 보다 공익적 견지에서 판단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