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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 말하는 세제개편]

건설업계 현실 반영못하는 '인지세 연대책임' 규정

조세일보 | 이상원, 유엄식 기자 2011.06.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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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당국에게 '현장'(現場)은 정책 마련의 가장 중요한 토양이다. 현장이 있어야 정책이 있고, 현장의 실상을 반영한 정책이야말로 진정 올바른 정책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대통령이 새벽시장을 찾아가고, 장관이 셀프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이벤트를 벌이는 것도 현장의 중요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 조세정책 역시 현장은 '기본'이다. 현장에 대한 이해 없이 책상에 앉아서 계산기만 두들겨 가며 어디에서 더 걷고, 어디에서 덜 걷자는 결론을 내린다면, 자칫 가렴주구(苛斂誅求)가 되거나 그야말로 혈세(血稅)낭비가 될 수 있다. 조세일보는 올해 본격적인 세법개정을 앞두고, 조세정책에 '현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납세자들과 기업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조세정책의 문제점과 개선대책을 조명해 보기로 했다. <편집자주>

하도급자에 일방전가 방치한 '불평등 조항' 지적중소건설업계 "개별책임제로 전환해야"경기도에 소재한 중소건설업체 A사는 대다수의 중소건설업체와 마찬가지로 공사를 직접 수주하기에는 자본금이나 인력 등이 턱없이 부족해 주로 대기업 건설사가 수주한 공사를 하도급 받아 시공하고 있다.

A사 임직원 김 모씨는 지난 달 한 대형건설업체와 아파트 건설시공 계약을 맺었다. 건설경기가 어려운 가운데 일감을 따낸 것에 흐뭇하면서도 계약서를 쓰고 난 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늘 그래왔듯이 이번 계약에서도 '인지세'를 전부 A사가 부담해야하기 때문이다.현재 인지세는 하도급 계약처럼 둘 이상의 공동계약일 경우 나눠서 내도록 하고 있지만, 건설업계에서는 A사와 같이 하도급을 받는 중소업체가 인지세를 전액 부담하는 것이 관행화 돼 있다.상대적 약자인 중소 하도급업체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관행을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 "몇 푼 안되니 전부 부담하라굽쇼?" = 인지세는 정부가 발행한 인지를 붙여서 납세가 증명되는 일종의 문서세(文書稅)다.

각종 재산에 관한 권리의 창설·이전 또는 변경에 관한 계약서나 이를 증명하는 문서에는 인지세의 납부의무가 발생한다. 부동산 매매나, A사와 같이 도급 또는 위임계약을 체결할 때, 심지어 상품권이나 선불카드에도 인지세가 부과된다.

문제는 현행 인지세법상 2인 이상이 공동으로 문서를 작성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인지세를 연대(連帶)해서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계약 당사자간에 일정 비율의 책임을 확정하지 않고, 단순히 '연대'해서 책임지도록 하면서 계약관계에서 있을 수밖에 없는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쪽이 자연스럽게 더 많이 부담하거나 전액 부담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특히 하도급계약이 일상화 돼 있는 건설업계의 경우 '을'의 사업자가 인지세를 전액 부담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져 왔던 것.

인지세액 자체만을 놓고 보면 금액적인 부담은 적다.

도급·위임계약의 경우 계약금액에 따라 5000만원짜리 계약은 4만원, 1억원짜리 계약은 7만원, 10억원 짜리 계약은 15만원, 20억원짜리 계약은 35만원 등으로 부과된다. 계약금액을 기준으로 하면 속된 말로 '몇 푼 되지도 않는 세금'이다.

이 정도는 하도급업체가 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대한전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체들이 부담한 인지세액은 197억원에 달하며, 이 중 하도급 업체들이 대기업건설업체 등 원 사업 발주업체를 대신해서 납부해 준 인지세만 연간 100억원에 가깝다. 중소업체의 입장에서는 가랑비에 옷 젖는 격인 셈이다.

□ "'연대책임', '개별책임'으로 바꿔야" = 대형 종합건설사들이 큰 공사를 따내면, 중소건설업체들이 하도급 계약을 맺는다.

상하 수직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하도급자에 대한 인지세 부담전가는 하도급법상 불공정거래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할 수도 있지만, 건설업의 경우 차기 공사 수주가 단절되는 등 앞으로 '밥줄'에 영향을 받을까봐 엄두를 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서울의 한 중소건설업체 관계자는 "건설업종은 '이번에 하도급 할 때 말 잘 들으면 다음에 하나 더 줄게' 하는 상황이다. 인지세 당신들이 부담해라고 하면 울며 겨자먹기로 부담해야 한다. 그렇다고 불공정행위라고 신고하면 건설업계를 떠나야 한다"고 털어 놨다.

어느 한쪽이 세금을 냈다고 하더라도 다른 한쪽이 세금을 내지 않으면 세금을 낸 쪽도 연대해서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처할 수밖에 없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법제도로 인해 피해를 보는 쪽은 약자다. 한쪽이 의무를 이행하더라도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다른 쪽의 책임까지 떠 안아야 하는 것은 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인지세는 '연대책임'보다는 '개별책임'으로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재정부 "법개정, 신중히 검토해 볼 것" = 인지세 연대책임의 문제점은 이미 다른 분야에서도 불거져서 개선대책이 마련되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08년 은행여신거래표준약관을 개정해서 금융기관과 대출계약을 맺을 때 부담주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던 인지세를 은행과 채무자가 각각 50%씩 부담하도록 명시화했다.

연대납부하도록 돼 있다보니 주로 '을'의 입장인 채무자가 부담했던 인지세를 은행과 함께 정확히 나눠서 분담하도록 한 것이다.

세법개정에도 긍정적인 결과가 기대된다.

재정부 관계자는 "인지세 부담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건설업체들이 부담하는 것만 연간 200억원정도이니 적지 않은 규모"라며 "규정과 현실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잘 살펴보고 (법개정 여부를) 신중히 검토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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