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배우 소피아 로렌의 전성기 때 일이다. 영화배우로서의 매력포인트인 그녀의 초대형 가슴이 손상되거나 색깔이 변하면 보상받을 수 있도록 100만불 짜리 보험에 가입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얼추 100억원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다. 최근에는 미국 여배우 제니퍼 로페즈가 10억 달러(약 1조 1570억원)의 신체 보험에 가입하였다 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신체 일부를 담보하는 보험이 인기 끌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다. 2차 대전 때 수많은 미군 병사들의 pin-up girl(사진을 관물대나 벽에 붙여 놓고 보는 예쁜 여배우) 이었던 마를레네 디트리히를 비롯해 소속사가 보험을 대신 가입해 준 베티 그레이블, 러시아 발레의 1인자 루돌프 누르예프 등이 각각 100만 달러의 다리보험에 가입했다.
베티 데이비스라는 여배우는 살이 찔 경우에 대비하여 비만보험에 가입했다. 영국 팝 그룹인 비틀스 멤버는 손가락을 보험에 들기도 하였으며, 미국의 컨튜리 뮤직 가수인 돌리 파튼은 그녀의 그 유명한 42인치 가슴을 60만 달러 짜리 보험에 가입했다.
브라질은 여자들의 엉덩이 보험이 유행이었다. 남녀평등 기조에 부응하여 영국의 프랭키 제이크맨이라는 남자 스트립 댄서는 자신의 음경을 160만 달러 짜리 보험에 들었다. 물론 영국 전역에 있는 옛 여자친구들로부터 그까짓 것에 보험을 들었냐는 비아냥거리는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가수들의 목소리 보험도 있는데 브루스 스프링스턴은 6백만 불의 목소리 보험에 가입하였으며 로드 스튜어트도 그 쇳가루 소리 나는 목소리를 보험 들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틀니를 끼었었는데 공연 중에 틀니 때문에 생길지도 모르는 출연중지 등의 손해에 대비해 보험을 애용했다.
보험에 가입하면 보험사 직원이 보험대상자를 만나 기왕증이라 하여 과거에 경험한 질병이 있었는지 또는 현증이라 하여 현재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질병이 있는지 등을 파악한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해당부분을 보장부분에서 제외하던가 아니면 심각할 경우 아예 보험가입을 거절하게 된다.
필자는 1983년 제대 후 청운의 꿈을 안고 모 그룹에 입사하였다. 약 한달 간의 신병훈련 같은 교육을 받고 각 계열사로 배치되기 전에 각 사의 인사담당 부장들이 와서 회사설명회를 벌였다.
그 당시 인기가 없었던 보험사의 부장이 "여러분, 소피아 로렌 아시죠? 그녀가 가슴보험을 들었는데 보험사 직원이 그녀를 방문하여 그녀 가슴을 체크합니다. 유방의 형태는 완전한 지, 꼭지는 선명하고 제대로 자리를 잡았는 지, 전체적으로 색깔은 괜찮은 지, 냄새는 나지 않는 지 등을 확인한다 이 말입니다. 보험사로 오세요"라며 입사를 권유했다.
나는 속으로 침을 꼴깍 삼키며 '이제부터는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등 트로이카의 가슴도 내 손안에 있구나' 라고 쾌재를 부르며 당당하게 보험사에 지원했다.
영업소에 배치돼 출근 첫 날에 한 일은 설계사에 지급할 빨래비누를 나르는 일이었다. 빨래비누가 그렇게 무거운 지 그때까지 몰랐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건물 꼭대기에 있는 영업소까지 옮기려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앞이 노랗게 보였다.
막노동 중에서도 상노동이었다. 그렇게 고생하여 어느 설계사에게 빨래비누를 건네 주었는데 그 설계사는 화를 벌컥 내며 "소장님이 향 비누 준다고 했는데 이건 그냥 맹 비누잖아요"라며 삿대질을 해 댔다.
그 이후로도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가슴을 만지기는 커녕 나이가 아주 많고 산전수전 다 겪은 아줌마 설계사들과 참 많이도 부대끼며 살아 왔다. 가끔은 소피아 로렌 가슴 어쩌고 하며 나를 꼬드겨 보험사로 오게 했던 그 인간, 언젠가 만나면 귀싸대기 한대쯤 꼭 올려 붙이고 싶을 때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