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민국은 저출산 및 고령화 현상 등으로 인한 사회 복지분야 재정지출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성장 잠재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국가운영에 필요한 재정은 국민의 세금이다. 국민들이 어렵게 낸 세금을, 정부는 한 푼이라도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정부의 예산편성 및 운용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검증절차를 거쳐 확정된다.
따라서 국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가 효과적인 감시자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회가 감시자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측면에서 지원하는 조직이 바로 국회예산정책처다. 예산정책처의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다.
정부 예산 및 결산, 예산사업, 경제정책 등을 분석한 예산정책처의 연구보고서는 질과 양 측면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지식창고'로서 알게 모르게 각광을 받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국민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나라살림을 지키는 중요한 책무를 떠안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바로 이 것이다. 조세일보(www.joseilbo.com)가 국회예산정책처 해부에 나선 명분 또한 이와 맥이 닿아 있다. [편집자 주]
최근 국민들의 이목(耳目)을 집중시키고 있는 뉴스 중 하나는 '나라살림(국가재정)' 문제다.
복지논쟁에서 파생된 지류인 재정건전성 확보 문제는,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가계부채 및 물가문제에 허덕이는 서민살림살이 문제와 조화롭게 버무려지면서 일반 국민들의 술자리 안주거리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국민들의 관심만큼, 나라살림 문제는 쉽게 이해하고 접하기가 힘든 부분인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방대한 살림살이 규모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구멍도 많아 국민 개개인의 힘에 의한 '감시'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행정부 가운데 나라살림을 관장하는 중앙부처는 기획재정부다. 지식경제부,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경제관련 부처는 수두룩하지만 현재 정부 조직체계상 전체적인 경제 및 재정정책의 방향을 좌우하는 컨트롤 타워는 재정부가 유일무이하다.
예산편성권 또한 재정부가 틀어쥐고 있다. 재정부는 종종 '재정파수꾼'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는 국민들로부터 거둬들인 혈세(血稅)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 예산을 관장하고, 각종 대외여건 속에서도 국고(國庫)를 지켜낸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
그러나 재정부가 가지고 있는 행정부라는 한계를 뛰어 넘어, 국가 예산이 제대로 걷히고 사용되는 지 여부와 함께 경제 정책 전반에 대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은 국회 본연의 역할이며, 이를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조직이 국회에 있다.
'나라살림 지킴이', '나라정책 길잡이'를 자처하는 국회예산정책처다.
◆ 우여곡절 끝, 압도적 법안통과…"예산정책처 탄생 알리다"
예산정책처 설립의 모태가 된 '국회예산정책처법'은 지난 2002년 10월 박관용 前국회의장이 제안한 '한국의정연구원법안'으로 출발했다. 애초 예산정책처는 독립적 형태의 국회 출연 연구기관을 모토로 '한국의정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논의가 시작됐으나, 대통령선거 등 주요 정치일정에 묻혀 한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3년 3월 이후 설립논의가 재부각됐다.
모든 기관과 마찬가지로 예산정책처 또한 설립논의 과정에서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단기간에 우수한 연구진을 확보해서 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으며, 특히 국회로부터 지원을 받는 기관인 만큼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내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쏟아졌다.
또 다른 '관료제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부정적 여론도 형성됐다. 하지만 기관 설립 자체의 당위성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다. 경제운용과 관련된 정부 독주체계를 막을 '스토퍼' 역할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던 시대적 과제였기 때문이다.
논의 끝에 '국회예산정책처법'은 국회운영위원회 및 법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2003년 7월1일 본회의에서 압도적 다수의 찬성을 얻어 통과됐다. 그 해 10월 최광 前보건복지부 장관이 1대 처장에 임명됐고, 개청준비 기간을 거친 후 2004년 3월 개청식을 개최했다.
◆ 4개 실·국, 18개과…박사·공무원 등 전문가 대거 '포진'
2실 1국 1관 1심의관 15팀, 정원 92명으로 출발한 예산정책처의 현실은 냉정했다. 개청이 결정된 상태였지만, 예산과 건물, 인력은 전혀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 개청식(2004. 3. 3) 전까지 험난한 여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11년 초 4대 처장으로 임명, 현재에 이르고 있는 주영진 처장은 당시 조직 출범작업을 총괄하는 실무준비단장이었다.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주 처장은 '고단하지만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전했다.
법안 통과(2003년 7월) 이후 당시 예산총괄부처였던 기획예산처(現 기획재정부)로부터 예비비 22억원을 받아 여의도 모 처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인력을 모집하는 것을 시작으로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개청을 준비했다는 전언.
시작은 미약했지만, 현재의 예산정책처는 힘들고 고단했던 과거를 먹고 쑥쑥 자라있는 상태다. 현재는 예산분석실, 경제분석실, 사업평가국, 기획관리관실 등 4개 실·국과 16과 2담당관으로 조직이 다소 보강된 상황이다.
조직 정원도 총 125명으로 출발 당시 외부 전문가 인력이 거의 없었던 점을 감안할 때 비약적인 성장을 만들어 냈다. 예산정책처는 현재 입법고시 출신 일반공무원들과 박사출신의 계약직 공무원들이 각각 절반정도씩 자리 잡고 있으며, 변호사·공인회계사 등 전문가 인력도 포진돼 있다.
이렇듯 우수한 두뇌들이 모여서 만들어 온 예산정책처의 전문성은 이미 대외적인 검증이 끝났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 집단으로 자리 잡았다.
주영진 처장은 "(경제성장률 예측이)저희가 KDI(한국개발연구원)나 한국은행보다 더 정확하다. IMF(국제통화기금)등 국제기구도 연례협의 시 재작년부터 예산정책처 의견을 청취하러 오고 있다"며 "국제기구 등이 한국의 재정상태나 국가부채, 경제성장 등에 대해 우리 의견을 듣고 가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자부심을 표출했다.
◆ 짧은 역사, 굵은 '족적(足跡)'
입법부 산하 기관인 예산정책처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의 효율적인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전문재정연구기관이다. 지난 2003년 설립, 불과 10년도 채 안된 짧은 기간 동안 예산정책처가 남긴 '족적'은 상당히 뚜렷하다.
재정부가 국회에 보고한 예산안, 기금운용계획안 등 나라살림과 관련된 관리체계를 중립적 시각에서 냉철하게 분석한 보고서를 내놓기도 하고, 경제성장률 등 거시경제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특히 지난 6월 말 우리나라 최초로 '2012~2060년 장기 재정전망 및 분석' 보고서를 발간하여 국회의원은 물론 학계·언론 등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의원·정부 입법안 등 각종 조세정책에 따른 세수(稅收)효과를 분석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으며, 정부가 추진 중이거나 추진코자 하는 재정사업 및 경제정책을 평가하고 소요될 예산을 분석하는 일도 도맡고 있다.
입법부 내의 재정파수꾼으로서 '팔방미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예산정책처가 만들어 낸 각종 분석보고서 및 자료는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행정부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들을 찾아내 문제점은 언론은 물론 국회의원들의 입을 통해 전파, 행정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예산정책처가 설립된 이후, 매년 예산결산 심사장이나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들이 예산정책처가 만들어 낸 자료를 인용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은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장면이 됐다.
기획취재팀 : 최종건 정치팀장, 유엄식․이희정․김기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