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에 불어 닥친 위기의 요인은 주식시장 침체가 다는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월가의 금융회사들이 과도한 이익을 취했다는 사실들이 드러나자, 금융권에 대한 비판이 세계적으로 일었고, 국내에서도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주식거래 수수료 등이 금융 당국에 의해 내려졌다.
이는 결국 증권사의 수익성 감소로 이어졌고, 여기에 정부의 세제개편으로 증권거래세 도입이 예고되면서, 증권가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 증권사 자본잠식 '무더기'…실적 악화 지속
증권사 중 3분의1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 분석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증권사 62개 중 적자를 기록한 곳은 21개로 집계돼, 3곳 중 1곳이 이익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황.
적자를 기록한 국내 증권사는 한화·한화투자·교보·SK·하이투자·유진투자·골든브릿지투자·LIG투자·리딩투자·애플투자·한맥투자·토러스투자·KIDB채권중개·비엔지·코리아RB·바로증권 등이다.
또 외국 증권사는 한국스탠다드차타드·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다이와·비오에스·바클레이즈캐피탈 등이다.
증권사의 당기순이익은 2163억원을 기록해, 지난해와 비교하면 73% 줄었다.
같은 기간 자산운용사 82개의 당기순이익은 1198억원을 기록한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4개는 적자를 보였다. 적자규모는 총 마이너스(-) 144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실적이 악화되자 자본잠식에 빠진 증권사들도 늘고 있다.
자본잠식이란 적자가 늘면서 자본금과 잉여금이 서로 상쇄되기 시작한 상태로, 1분기 국내 증권사 6곳, 외국 증권사 4곳이 이러한 자본잠식에 놓였다.
1분기에 자본잠식을 보인 국내 증권사는 한맥투자·애플투자·IBK투자·토러스투자·코리아RB·바로증권이었으며, 외국 증권사 국내지사 및 지점으로는 한국스탠다드차타드·비오에스·바클레이즈캐피탈·알비에스아시아증권이 이름을 올렸다.
한편, 증권사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은 534%를 기록해 금융감독규정상 양호수준인 150%를 웃돌았다.
◆ 파생상품 세금부과에 '설상가상'
증권사 경쟁과 금융 당국의 압박이 맞물려 주식거래와 관련한 수수료도 낮아졌다. 올해 증권사의 수수료 평균은 처음으로 0.1%를 밑돌았다.
증권사 매출 중 위탁매매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70% 수준. 수수료가 인하되고 투자자마저 시장을 떠나자, 지난 1년 동안 증권사의 수수료 수익은 5390억원(37.2%) 가량이 줄었다.
이뿐만 아니다. 정부의 세법개정에 따라 오는 2016년부터 일부의 파생상품에 증권거래세가 도입될 것으로 예고되면서 금융투자업계에 고민을 더하고 있다.
과세대상 및 과세율은 주가지수에 연동되는 장내 파생상품에 한해, 선물(先物)거래에 0.001%, 옵션거래에 0.01%가 부과된다.
지난 1996년 파생시장이 개설된 뒤 정부는 시장의 육성을 위해서 증권거래세를 부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이 이뤄지자, 증권거래세 추진이 꾸준하게 논의됐고 그때마다 금융투자업계는 강력하게 반발해 왔다.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증권거래세가 도입되면 투자심리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거래소 한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비결은 코스피200 선물과 코스피200 옵션 등의 거래비용이 저렴한 덕분이었다"며 "코스피200 선물·옵션에 파생상품 거래세를 부과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그는 "한국의 주식시장은 선물·옵션 건전화(규제강화) 정책으로 거래량이 이미 많이 줄었는데, 파생상품 거래세가 도입되면 글로벌 경쟁력은 더욱 감소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