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국가의 재정위기에 이어 미국 및 중국 경제가 심각한 불황에 빠지면서,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비상등이 들어오고 있다. 특히 주가 하락과 구조조정에 증권가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사진은 미국 월가의 투자자들이 주가 폭락에 충격 받은 모습.
대신증권, KDB대우증권, 신한금융투자는 최근 들어 사옥을 매각했다. 삼성증권은 홍콩법인의 주식영업을 아예 중단했다.
금융투자업계 실적악화가 계속되자, 증권사들은 소유한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자체 노력 만으로는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에 정부와 금융 당국은 증권거래와 관련한 규제들을 완화하고, 새로운 동력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 ELW 시장 침체, 각종 규제 폭탄에 업계 '시름'
지난해 검찰이 주식워런트증권(ELW) 조작과 관련해 12개 증권사 대표를 기소하면서 일반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이 금융계 안팎에서 일었다.
ELW는 주식 등을 미리 정한 시점과 가격에 매수·매도 할 수 있는 권리증권으로, 일부 증권사의 조작혐의에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금융 당국은 일반투자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호가를 제한하는 등 규제수위를 높였다.
이에 ELW 거래가 급감했고, 이는 결국 증권시장 전반의 침체로 이어졌다. 개인투자자의 ELW 거래량은 지난달 890억원 수준을 기록해, 올해 초의 9881억원과 비교하면 10분의1 이상이 줄었다.
게다가 금융 당국이 콜(단기)차입 한도를 줄이고, 공매도(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미리 판 뒤 주가가 하락하면 되사는 투자기법) 규제들을 강화하자, 금융투자업계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대표는 "시장이 호황이면 금융 당국이 바빠지고, 시장이 불황이면 금융 당국의 할 일이 없어야 하는데, 규제가 오히려 강화되면서 증권사들을 죽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 금융 당국, 규제 완화 '공감'…시장 효과는 미지수
상황이 이렇자, 금융 당국 역시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지난달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금융투자회사 대표들을 만나 "콜차입과 신용융자 규제들을 완화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증시가 과열된 시기에 만들어진 규제들이 현재로서는 과도하다는 업계의 의견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의 이 같은 규제 완화 노력이 시장을 활성화 하는데, 얼마만큼 효과가 있을지 우려 섞인 시선들도 적지 않다.
권 원장은 "이 역시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일정한 범위 안에서 차츰 규제를 풀어야 한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송상진 한국은행 금융제도팀 과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따라)금융 겸업이 허용되면, 과도한 리스크의 부작용이 유발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그는 "증권사의 대출 업무 허용, 유사 은행 영업 등을 겸업 대상에 추가하려면, 자본규제 부과방안을 마련하는 등 시스템적 리스크를 사전에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해를 시작으로 1년 이상 금융위원회가 추진해온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좌초위기에 놓이면서 금융투자업계를 공황 상태에 몰아넣고 있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일정 규모(자기자본 3조원) 이상의 증권사들을 '종합금융투자사업자'(IB)로 지정해 기업여신 등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허용하고, 이들을 글로벌 금융회사로 육성하는 것이 주된 내용.
하지만 금융위기로 글로벌 IB들이 무너지면서 실효성 논란이 제기됐고, 대형 금융회사를 키우는 동시에 중소형 금융회사를 침체시키는 자본시장법 내용은 최근 정치권이 추진하는 '경제 민주화'의 방향과도 어긋났다.
그동안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앞두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온 증권사들 입장에서는 무리하게 자본금을 늘렸다가 사업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
이처럼 정부의 규제 완화 노력과 자본시장법 개정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증권사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