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남긴 조세소위…시계는 "대선 後"

정기국회 조세소위 사실상 종료…내달 21일 속개 유력

이달 초부터 개시된 국회 조세소위원회의 세법심의가 다수 쟁점법안에 물음표를 남긴 채 사실상 일단락됐다.

23일 국회, 기확재정부 등에 따르면 여·야 조세소위 의원들은 이날 예정된 소위심사를 취소한 뒤 정회했다. 새누리당 측에선 오는 26일(월) 속개한다는 방침이나, 합의 파트너인 야권에서 대선 이후 속개하기로 한 만큼 소위 속개여부와 시점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 '절반'의 성공…알맹이 법안들은 '미궁' = 약 3주간 속개된 조세소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올해 심사대상인 139개 세법개정안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과정을 끝마쳤다.

이 가운데 원안대로 합의된 법안은 57개로 절반도 채 되지 못했으며, 법안 일부를 수정해서 합의한 법안은 7개, 이견차이를 보여 재논의 결정된 법안이 60개, 계류 4건, 폐기 8건 등으로 결정됐다.

소관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로 보내기로 합의된 법안들은 주로 정부가 발의한 세법개정안이 대부분이다.

특히 세수에 별다른 영향이 없거나 일부 고소득층에 증세효과를 나타내는 법안, 서민·중산층 지원 법안 위주로 합의됐다. 반면 세수변동 폭이 상대적으로 크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표심(票心)을 흔들 수 있는 법안들은 대체로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체납금액 5억 이상 징수권 소멸시효를 10년으로 연장 ▲저소득 근로자 비과세  수당 범위 확대(100만원→150만원)▲연금소득 분리과세 대상 1200만원 상향 조정 ▲월세 소득공제 확대 ▲한부모 가정 소득공제(150만원) 신설 ▲연금소득 원천징수 세율 인하 ▲특수관계법인간 접대비 손금산입 한도 축소(20%→10%) 방안 등이 합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국외 예금에 대한 비거주자 증여세 납부의무 부과, 차명계좌 증여추정 방안 등 상속·증여세 과세강화방안도 정부가 제출한 원안대로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전해졌으며, 간이과세자 부가세 신고기간을 연 1회로 단축하는 방안도 여야 이견 없이 통과됐다.

이와 함께 신용카드 등에 대한 공제율 조정(신용카드 20%→15%, 현금영수증 20%→30%) 및 일몰기한 연장, TV·에어컨·냉장고·세탁기 등 4대 가전제품에 대한 개별소비세 3년 연장방안도 원안대로 합의됐다.

특히 출고가 200만원(시중가격 350만원~400만원)이상 고가 가방에 대해 20%의 개별소비세를 물리는 방안이 신설됐고, 교통환경에너지세법의 일몰기한을 3년 더 연장하는 방안도 합의됐다.

이밖에도 소상공인 공제부금인 노란우산공제 소득공제 확대방안과 동(銅) 스크랩 매입자 부가세 납부특례 제도도 사실상 합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구체적인 과세기준과 시행 시기에 대해선 추후 구체화하기로 했다.

□ 대기업·고소득층 증세방안 '강화' = 상당 수 쟁점법안들이 재논의 결정으로 최종합의가 미뤄진 가운데, 대기업 과세강화 방안들은 정부 원안보다도 한층 수위가 높아진 수정안으로 합의됐다.

우선 대기업 최저한세율의 경우, 당초 정부는 과표 1000억원 이상 구간에 한정해 14%에서 15%로 1%p만 올리기로 했으나, 소위 논의과정에서 16%로 2%p 올리도록 바뀌었고 당초 정부 계획에 없었던 100~1000억원 구간 법인의 최저한세율도 11%에서 12%로 올리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도 정부안대로 기본공제율을 1%p씩 낮추고, 고용 증가에 따른 추가공제율을 1%p씩 높이는 방안은 합의하되 대기업이 고용을 줄이면 올해처럼 아예 공제를 받을 수 없도록 하는 수정안으로 합의됐다.

고용감소와 관계없이 기본공제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자 했던 당초 정부 구상이 상당 부분 틀어진 셈이다.

또한 대기업 계열사간 일감몰아주기 정상거래비율도 기존 30%에서 20~25%로 낮춰 세부담을 높이는 방안도 합의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정부가 내수활성화 차원에서 추진코자 했던 골프장 개별소비세 감면제도는 아예 소위차원에서 법안폐기가 확정돼 사실상 도입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정부가 주택거래활성화를 위해 제시했던 다주택자 및 비사업용토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제도 폐지방안도 '부자감세'라는 야당 의원들의 강력한 반발 속에 절충점을 전혀 찾지 못했다.

일각에선 이 문제에 대해 조세소위원장인 나성린 의원이 발의한 중재안(일몰 2년 연장)으로 합의가 유력해, 정부의 양도세 중과 폐기방안이 사실상 물 건너 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금융세제 분야 '혼란' = 당초 고소득층 증세차원에서 통과가 유력했던 금융세제 분야방안도 소위 논의과정에서 여러 가지 정치적인 문제가 얽히면서 결과를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우선 관심을 모았던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인하문제는 기존 4000만원에서 낮추는 방향에 대해선 합의점을 모았으나, 과세기준금액(2000~3000만원)에 대해선 아직까지 확정짓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세대상인 대주주 범위를 축소하는 주식양도차익과세 방안은 재논의 대상으로 추후 검토하기로 했다.

특히 당초 통과가 유력했던 파생상품거래세 도입방안이 올해에는 사실상 통과여부가 불투명해 진 상황이다.

총선 이전에 여야 모두 도입을 찬성했고 당론차원에서 개정안을 제시하는 등 사실상 제도 도입이 유력했지만, 파생상품을 다루는 한국거래소 본사가 위치한 부산지역 여론이 민감한 대선정국을 흔들었다.

급기야 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최근 부산상공회의소에서 "파생상품거래세 도입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날 이후 소위 내부에서 도입을 강력히 주장해 온 야당 의원들이 신중론으로 전환했다.

결국 부산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나성린 조세소위원장(새누리당)이 "내년에 논의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고 다수의 의원들이 동의의사를 표시해 내년에 심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당초 파생상품거래세 도입 이후 시행시기 3년 유예를 주장해왔던 정부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 소득, 법인세율 등 핵심 법안은 향방은? = 소득, 법인세율 조정문제는 올해 조세소위 가장 큰 이슈임에 틀림없다. 다만 대선을 앞둔 시점, 정권교체기라는 점이 여야 의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여야 대선후보 중 어느 누가 당선될지 모르는 불투명한 상황에서 차기 정부 세제의 핵심골격이 되는 세법을 결정짓기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런 측면을 고려해 올해 세법개정안에 따로 소득세 개편안을 넣지 않은 채 내부 검토방안 위주로 소위협상에 나섰다.

이에 따라 소득, 법인세 조정문제를 포함해 아직까지 뚜렷하게 결정짓지 못한 민감 법안들은 대선 이후 결정될 가능성이 현 시점에서 가장 높은 상황이다.

실제로 정부와 조세소위 의원들은 소득, 법인세 조정문제를 비롯 R&D 세액공제 제한 등 세수변동성이 큰 법안과 관련된 협의를 양당 정책위의장 협의사항으로 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세 향방이 결국 정치권 힘겨루기 양상으로 넘어간 모양새다.

양당 고위층으로 공이 넘어간 소득, 법인세법 개정안 이외 쟁점법안들은 내달 2일 예산안 법정처리기한 또는 대선 전까지 재정부 고위 당국자들을 중심으로 비공식 루트를 통해 협의를 지속할 가능성도 있다.

새누리당에서 소위를 재개하더라도 야권이 전원 불참하면 사실상 법안 합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선은 내주에도 소위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추후 선거일정 등으로 소위가 제대로 열리지 못하게 될 경우, 일부 쟁점법안들에 대해 별도 합의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