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재원 필요하다는데…朴의 '황소고집'

공약이행 '年 54조원' 필요…재원확보 현실성 지적

지난 대선기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공언한 각종 공약은 300개가(지역공약 105개 포함) 넘어선다.

이를 위해 필요한 돈은 실로 엄청난 수준이다. 특히 201개 복지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만 해도 박 당선인 측이 제시한 예상 소요금액이 5년간 135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재원추계가 사실상 '과소계상' 됐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4대 중증질환 보장 공약의 경우, 당초 예측한 재원(연간 1조5000억원)보다 최소 2~3배는 더 들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고, 소득계층과 관계없이 연간 20만원씩 지급하겠다던 노인연금도 천문학적 재원소요로 소득계층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것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밖에도 차기 '큰 정부' 로드맵에 따른 공무원 수 증가까지 더해져 정책과 정부조직 운영 등 전반적으로 상당한 규모의 재원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박 당선인의 재원확보 계획과 공약실천 의지다.

박 당선인 측은 연간 27조원에 달하는 재원을 세출 구조조정(연간 16조원)과 세율인상 등 직접적인 증세(연간 11조원) 없이 달성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 필요한 돈 규모는?…공약집은 27조, 실제로는 54조 = 새누리당이 대선 공약집을 통해 제시한 공약이행에 따른 추가재원 규모는 연간 27조원, 임기 5년 동안 135조원이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과소평가됐다는 것이 학계 재정전문가와 정부 내부의 중론이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7월경 정치권이 제시한 각종 복지공약에 따른 비용추계 분석결과 새누리당은 5년간 270조원, 민주통합당은 571조원이 각각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앞서 기획재정부도 양당이 제시한 공약을 온전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총 268조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계했다.

당시 나라살림을 총괄하는 재정부가 '정치개입'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석결과를 공개한 것은 재정여건을 고려할 때 사실상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제시한 모든 공약을 완벽히 이행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을 밝힌 것이었다.

문제는 박 당선인의 예상을 2배나 뛰어넘는 연간 54조원이라는 재원소요 예상치가 201개 복지공약에 한정됐다는 점이다. 실제 예산안에 반영될 가능성이 낮은 105개 지역공약(도로, 철도 등 SOC 설치) 이행에는 이와 별도로 150조원 상당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종합해보면 300개가 넘는 대선공약을 100% 이행하기 위해선 400조원이 넘는 재원이 들어간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올해 국가 전체 예산규모는 342조5000억원.

가뜩이나 경기침체 여파로 세수확보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불안한 전망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차기 정부 5년 동안 추가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 '의문부호'가 찍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인수위 "당분간 증세 없다"…先 '지하경제 양성화' = 지난 18일 대통령직 인수위는 출입기자단과 약 30분 동안의 환담회를 가졌다. 그동안 쌓인 불통 이미지를 벗기 위한 일종의 스킨쉽 행사였는데 이 자리에 취재진은 재원확보를 위한 증세 문제를 거론했다.

이에 안종범 인수위원은 "(복지재원 확보를 위해) 증세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동안 야권이 제기한 것처럼 소득·법인세율을 직접 올려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방법은 선택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박 당선인도 대선 기간 TV토론회에서 "증세는 정말 필요할 때,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시행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최근 전경련 간담회에서 "경제상황이 어려운데 법인세 인상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법인세 인상에 반대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현재 인수위는 별도의 증세 없는 '간접증세' 방식을 통한 재원 확보 계획을 구상 중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위 말하는 '지하경제 양성화' 작업인데 그동안 세정당국에 노출되지 않은 현금거래 세원을 발굴할 경우 상당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 부처 업무보고 과정에서 인수위가 국세청을 상급기관인 재정부에 앞서 요청한 것도 이런 맥락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세청은 이 자리에서 최근 국회에 계류 중인 법이 통과돼 FIU(금융정보분석원)가 보유한 CTR(2000만원 이상 현금거래), STR(의심정황거래) 자료를 세정에 활용할 경우 연간 4조~6조원의 추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결과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인수위는 비과세 감면제도 정비작업을 위해 세제당국 실무진을 실무위원으로 추가요청, 조세특례제도 우선순위를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등을 비롯해 연간감면액 1조원이 넘는 덩어리 큰 감면제도가 우선 검토대상인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이 모두 현실화된다고 해도, 박 당선인이 구상한 연간 27조원의 재원을 확보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삼수 경실련 정부입법팀장은 "재원마련이 가장 큰 문제인데 방법은 결국 증세밖에 답이 없다. 부자증세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며 "불필요한 예산 줄여서 소요예산으로 돌려내는 개혁적 모습도 보여야한다"고 말했다.

당장 이달 안으로 정부 세출구조조정 개혁안의 골격을 제출해야 되는 재정당국도 부담감이 상당한 상황이다. 재정부는 국가재정에 부담이 없는 재원확보를 위해 일부 증세방안을 인수위 측에 보고할 것으로 전해졌다.

□ 정치권 '증세 갑론을박' 이어질 듯 = 대선에 승리한 여권은 내부적으로 차기 정부 출범 전부터 이른바 '출구전략' 논의가 나오고 있다.

현실성 낮은 공약(空約) 카드는 미리 골라내자는 취지다.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지난 14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약 이행도 좋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는 대형예산 공약에 대해 출구전략도 같이 생각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목돈이 들어가는 대형 공약을 이행하려면 세금을 늘리던지, 재정적자를 늘리던지, 세출구조 조정을 하든지 셋 중에 하나를 해야 하는데, 이 가운데 증세나 재정적자는 안하겠다고 했으므로 세출구조 조정을 해야 한다"며 "하지만 세출구조 조정으로 각 부처에서 조단위 예산을 염출하거나 1년에 수천억원씩 전용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대표를 역임했던 정몽준 의원도 16일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인수위가 공약의 자구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했으면 한다"고 '속도조절론'·'출구전략' 논의에 힘을 보탰다.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도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105개 지역공약과 관련, "당장 내년에 하자는 얘기가 아니고, 올해 예산안에도 포함되지 않은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차기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증세를 통한 재원확보 방법론을 주장했던 야권과의 대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현미 의원은 "재원 마련 문제 때문에 조세개혁을 해야 되는 것이고 그래서 (기획재정위원회 내부에) 조세개혁특위를 만든 것"이라며 "공약을 했을 때 별도의 재원 마련대책이 있었으니깐 만들었을 것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국민을 속이려고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