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5일 삼청동 인수위에서 열린 국정과제토론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간접증세 후 세율인상은 '마지막 보루' 유력
비과세 일몰원칙 주장…'현실론' 충돌 가능성
국민대타협위원회, 국회 조세개혁특위 '주목'
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천문학적 재원이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예상되는 노인연금 수급대상 확대방안과 관련 "그것(재원)을 어디 다른 데서 빼 오는 것이 아니라 세금으로 해야 된다"고 언급한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박 당선인 스스로 별도의 증세 없이는 재원확보 실효성이 떨어진 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지, 아니면 그동안 주장했던 지하경제 양성화 등 간접증세를 적극적으로 실천해 마련할 것인지 구체적인 증세 방법론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 숨은 세원 쥐어짜도 6조원 안팎…결국 세율 올리나? = 박 당선인은 지난 대선기간 직접적인 증세를 거론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했다. 당선되면 세금을 올리겠다는 주장은 국민정서상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대신 박 당선인은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 감면정비 작업을 통해 최대한의 추가적인 세원을 확보하겠다는 이른바 '간접증세' 방안을 전면에 내걸었다.
연간 300조원을 넘어서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데 과세역량을 집중하고, 각종 비과세 제도를 정리할 경우 상당한 세수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비롯된 구상이다.
실제로 상급부처인 기획재정부 보다도 인수위 업무보고를 먼저 치른 국세청은 FIU(금융정보분석원)이 보유한 자금 세탁 가능성이 있는 수상한 거래(STR)나 하루 2000만원 이상의 고액 거래(CTR) 자료의 열람권한을 대폭 확대해 이를 과세정보로 활용할 경우, 연간 4조5000억원 이상의 추가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분석결과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더해 국세청이 징세 행정력을 증원, 연간 7조원에 육박하는 체납징수 규모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역외탈세에 제대로 과세가 추진될 경우 연간 1조원 안팎의 세수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것도 사실상 최대한 행정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결과적으로 집행력을 총동원할 때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세금규모가 연간 6조원 정도라는 얘기다.
하지만 노인연금 문제만 하더라도 당초 공약에서 바뀐 소득계층별 지원으로 가정해도 올해보다 연간 10조원 이상의 재원이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간접증세 방안 외에도 획기적인 추가세수 확보방안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번 박 당선인의 발언도 이런 견해들을 일부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공약실천 의지를 거듭 강조하면서 당초 계획한 간접증세로 재원이 부족하다면 일부 직접증세, 즉 세율인상을 통해서라도 재원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다.
하지만 박 당선인 스스로 당장 소득, 법인세 등 직접세 세율을 곧바로 올리는 방안을 선택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은 상황이다.
그는 이미 전경련 등 경제계 만남을 통해 법인세 인상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으며, 소득세도 작년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대폭 인하(4000만원→2000만원)되고, 소득공제 한도 신설(年 2500만원)로 일부 고소득층 부담이 늘어난 상태에서 추가로 세율인상까지 이어가기에는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결국 증세를 단행하더라도 박 당선인 당초 밝힌 대로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는 "증세가 불가피한 상황일 경우, 국민대타협위원회 등을 통해 여론을 충분히 수렴한 뒤에 결정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선 직접세 증세 이전에 조세저항이 덜한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 증세를 우선 선택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소득과 관계없이 정률로 부담하는 부가세율 인상은 서민층 '고혈 쥐어짜기'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어 성급하게 결정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조세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에서 꾸준히 향후 증세 우선순위를 부가세로 손꼽고 있고, 비록 사견에 그쳤지만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전도사인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도 재원확보를 위해 부가세율 2%p 인상안을 검토해 볼 문제라고 밝힌 점은 향후 증세논쟁에서 또 다시 논란을 부추길 소지가 다분하다.
□ 年 30조원 비과세 혜택…얼마나 줄일까? = 최근 5년 동안 세법(조세특례제한법)에 규정된 각종 조세감면, 면세제도를 통해 지출된 국세감면액 평균 30조원에 육박한다.
박 당선인은 지난 국정과제토론회에서 "일몰이 도래한 비과세 감면제도는 원칙대로 종료해야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현행 세법상 대체로 비과세 감면제도는 2~3년 주기로 혜택종료 시점이 지정돼 있는데 이 부분을 예정대로 모두 끝내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일단 세원확보에는 상당한 도움일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올해만 하더라도 일몰이 도래하는 비과세 감면제도 규모는 약 1조6000억원에 육박한다. 박 당선인의 원칙론이 적용될 경우 이 부분은 곧바로 세수증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박 당선인의 소신은 곧 향후 정치권과의 갈등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동안 정부의 정책 기본방향도 비과세·감면 제도를 원칙대로 적용하는 것이었는데 연말 국회 세법심의 과정에서 '가위질' 당한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또한 일부 비과세 감면제도는 사실상 서민지원 성격이 커서 쉽사리 정부가 연장을 끊을 수도 없는 처지다.
일례로 올해 일몰이 도래하는 비과세 감면 제도 가운데 가장 감면세액이 큰 부분은 재활용 폐자원 및 중고품 부가세 매입특례(7375억원)이며, 이어 에너지절약시설 투자세액공제(2957억원), 법인택시사업자 부가세 감면(1576억원) 등 쉽사리 지원을 끊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작년에도 정부는 2조원 상당의 전체 비과세 감면제도 가운데 연 감면세액 4500억원으로 가장 덩어리가 큰 농·수협 등 조합 예탁금 및 출자금 비과세 혜택을 일부 저율 과세로 바꾸고자 했으나, 지역민심을 고려한 정치권의 반대로 성사시키지 못했다.
정치권이 대기업, 고소득층 증세차원에서 법인세 최저한세율을 높이고 금융소득 과세를 강화한 효과를 모두 합쳐도 세수효과는 이보다도 적었다. 결과적으로 대규모 정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작년 세법개정에 따른 세수효과는 당초 계획보다 500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또 일부 조세감면제도는 성격상 일몰제로 운영되고 있더라도 사실상 특례가 상설화 된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일몰이 종료됐다고 모두 일률적으로 종료하기는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정비과정을 통해 조세 감면비율을 줄이거나 상설화 된 제도는 일몰제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개편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정비작업에 따른 구체적인 추가세수 확보규모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행정안전부도 연간 15조원에 육박하는 지방세 감면제도 정비차원에서 올해 일몰이 도래하는 취득세, 재산세 등과 관련된 40개 일몰제도의 타당성을 검토할 방침이다.
□ 국회 조세개혁특위 주목…부자증세 논의 탄력? = 이런 상황에서 세법을 심사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내부에 조세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여야가 의견을 모은 것은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는 박 당선인이 제안한 국민대타협위원회의 역할과 같이 정치권 내부의 증세관련 의견대립을 '교통정리'하려는 차원에서 나온 합의체적 성격이 예상되기 때문.
이 자리에서 향후 증세관련 논의, 특히 고소득층 증세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홍종학 의원은 "내년 박근혜 정부 첫 세제개편안에 대규모 개정안이 담길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번에 여야가 설치하기로 합의한 기획재정위 내 조세개혁특위에서 각종 증세정책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가 오갈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 부의장(기재위 조세소위원장)은 향후 증세 문제와 관련해 "증세를 할 것이다. 다만 바로 세율을 올리자는 민주당과 달리 1단계로 비과세·감면 축소, 탈세척결, 금융자본소득 과세강화 등 간접증세를 통해 최대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며 우선 간접증세 방안에 무게를 뒀다.
다만 그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세율 인상을 검토해야 할 단계가 올 것"이라며 "필요할 경우 2단계로 박 당선인이 밝힌 대로 국민 대타협을 통해 국민들을 설득해 조세개혁과 함께 세율을 인상할 것"이라며 직접증세 가능성도 거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