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정무, 경제수석 등 6개 청와대 수석참모진 인선을 끝으로 박근혜 정부 초반 국정운영을 함께 할 각 부처 장관과 청와대 참모진 인선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당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조용한 인수위'를 자처해 새 정부 내각과 연결고리가 약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인수위원 출신이 대거 내각과 청와대에 포진됐다.
박 당선인은 이런 가운데서도 새 정부 경제부총리로 승격될 예정인 기획재정부 장관과 경제수석 등 '경제팀' 진용은 전문 경제관료 출신을 선택했다. 구체적으로 기획재정부 장관에는 현오석 KDI원장(행시 14회)을, 청와대 경제수석에는 조원동 조세연구원장(행시 23회)를 각각 낙점했다.
이는 정무적인 판단력보다는 박 당선인의 경제정책 추진력을 뒷받침할 전문성에 인사의 방점을 뒀다는 평가다.
전 세계 경제위기가 장기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정책을 이끌어 갈 경제팀 윤곽이 드러남에 따라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성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모피아 시대 저무나?…EPB 출신 '중용' = 현재 경제부처 수장격인 기획재정부를 구성하는 관료들은 관장하는 업무분야에 따라 ‘양대 축’을 구성했다.
전통적으로 금융, 세제분야 등이 주특기인 재무부(Ministry of Finance)출신과 예산, 경제기획 분야에 특화된 경제기획원(EPB, Economy Planning Board) 출신이 바로 그들이다.
정권별로 양대 부서의 주도권은 바뀌었지만, 대체로 재무부 출신인사들이 부총리, 장관직 등 사령탑을 주로 담당해 왔다. 재무부의 영문약자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인 '모피아'란 말이 나온 배경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현 정부 경제정책들은 사실상 재무부 출신 인사들이 이끌어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 모피아 인사들과 거리를 두겠다는 의중을 내비쳤지만, 현 정부부터 예산파트를 흡수하며 한층 몸집이 커진 기획재정부의 초대장관은 재무부 이재국장, 국제금융국장, 세제실장 등을 지낸 강만수 현 산은금융지주 회장이었다.
강 회장은 행시 8회로 이른바 모피아계 인사들의 대부로 불리는 인물이다.
1998년 IMF 시절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자존심을 구긴 강 회장은 현 정부 초대 기재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취임 첫 해인 2008년 미국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또 다시 중도 하차하는 불운을 겪었다.
강 회장의 '구원투수' 격으로 등판한 윤증현 전 장관도 국제금융국장, 세제실장 등을 역임한 정통 재무부 출신 인사였다. 윤 장관에 이은 3대 박재완 장관은 과거 관료재직 시절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감세(減稅), 규제완화 등 과거 재무부 인사들과 정책적 궤를 같이 해왔다.
뿐만 아니라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경제수석을 역임했던 윤진식 새누리당 의원,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과 이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했던 임태희 전 대통령 실장까지 모두 재무부 출신 인사로 사실상 경제정책 전반을 이끌어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분위기가 차기 박근혜 당선인부터 점차 변화될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그간 재무부 출신 인사들에게 밀려왔던 경제기획원 출신관료들이 곳곳에서 약진하는 모양새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새 정부 경제부총리로 승격되는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인 현오석 KDI원장과,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 경제정책의 실질적인 가교역할을 담당하게 될 경제수석에 임명된 조원동 조세연구원장은 모두 경제기획원 출신 관료다.
뿐만 아니라 이번 인수위에서 경제1분과 간사를 역임하면서 재정부, 국세청, 공정위 등 경제부처 업무보고 인수인계를 총괄했던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도 마찬가지로 경제기획원 출신이다.
전 정권 인수위마다 수 명씩 차출됐던 재무부 출신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인수위에서는 모습이 아예 사라졌다는 평가다. 이를 두고 인수위 안팎에서는 박 당선인이 새 정부에서 재무부 출신 인사를 가급적 중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박 당선인이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 경제정책의 핵심 상징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골격을 만드는데 실무 최전선에서 뛴 경제기획원 출신 인사들을 더 중용, 향후 이와 비견될 대규모 거시 경제정책 밑그림을 구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나온다.
새 정부 기틀을 주도한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내정자도 이 과정에서 경제팀과 함께 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실제로 박 당선인은 물론 인수위 안팎에서 새 정부 과학기술과 ICT 산업 융합을 통한 '창조경제', 이외 일자리, 복지정책을 통한 '제 2의 한강의 기적', '제 2의 새마을운동' 이라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 경제민주화 정책, 흐지부지되나?…공정위원장 등 후속인선 주목 = 박 당선인은 대선 전후로 새 정부에서 경제민주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대기업들이 정부의 감세 및 각종 규제완화 정책들을 바탕으로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정작 중소기업과 서민·중산층에는 이 같은 성장의 온기가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 이른바 '낙수효과' 실패에 따른 대안인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 박 당선인이 지목한 내각 구성원들의 면모를 살펴볼 때, 이 같은 경제민주화 정책기조가 상당히 후퇴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대선캠프에서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불리며 새 정부 경제부총리 하마평까지 올랐던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단장이 이번에 청와대, 내각 인선명단에서 제외됐고 현재 장관급 내정자 상당수가 규제 완화 등 시장경제 원칙을 우선시 했던 인사들이 포진됐다.
야권은 새 정부 경제정책팀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경제정책 컨트럴타워인 현 내정자의 행보가 경제민주화 기조에 상당히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지난 18일 대변인 공식논평을 통해 현오석 재정부 장관 내정자의 재건축 아파트 특혜분양, 저축은행 뱅크런 사태 전 예금인출 의혹사례 등을 거론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민주화공약을 총괄할 인물인지 의구심이 앞선다"며 "청문회에서 엄격하게 검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향후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장, 국세청장 등 재정부와 손발을 맞춰나갈 경제부처 핵심부서 후속 기관장 인선에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들의 면면에 따라 새 정부의 온전한 경제 정책기조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 박 당선인은 성장과 분배의 균형기조를 강조하고 있으나, 내각 구성원들의 성향에 따라 구체적인 정책방안들은 조금씩 수정될 가능성도 여전하다.
당초 내달 초 정도면 어느 정도 윤곽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됐던 이들 경제관련 부서 기관장 인선 시기는 3월말~4월경으로 더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 개정으로 공정위원장, 금융위원장 등이 새롭게 인사청문회 대상이 됐다는 점도 주목해야 될 부분이다.
당장 국무총리를 제외한 17개 전 부처 장관 내정자의 인사청문회가 대통령 취임식인 25일 이후로 밀려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온전한 내각구성 계획이 사실상 틀어졌다.
이런 일각의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박 당선인은 집권 초반 공정위 등을 통한 강력한 경제민주화 정책추진을 예고하고 있다.
인수위 등에 따르면 박 당선인은 공정위를 중심으로 특혜성 부당 내부거래 규제 장치를 보완하고, 부당 단가인하, 발주취소, 부당 반품에 손해금액의 3배를 물리는 내용의 개정안을 추진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공정위가 과거 폐지했던 재벌조사 전담조직 부활을 위한 조직개편 준비작업도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위 한 관계자는 "경제1분과 국정과제 발표내용은 '경제민주화' 관련 내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향후 공정위 역할에 더욱 힘이 실릴 것임을 예고했다.
이와 함께 인수위 안팎에서는 새 정부 복지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확보 첨병(尖兵)역할을 담당할 국세청장 인선결과도 향후 경제정책 운용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