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지원 인프라 보강…정부 가계 부채 해결 의지
'밑 빠진 독에 물 채우기'…향후 위험 대출 더 늘어날 것
실질소득 증대·대출 구조 개선·자활 지원 등 종합 대책 필요
박근혜 대통령의 가계 부채 대책 중 하나인 '국민행복기금'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다.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부채의 시한폭탄을 잠재울 현실적인 대책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정부에 기대어 빚을 고의로 갚지 않는 도덕적 해이나 성실 채무자에 대한 역차별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정부가 채권을 보증해 또다시 연체가 되면 이중(二重) 부실뿐 아니라 공적 자금 투입이라는 최악의 상황도 야기될 수 있다.
전국은행연합회 집계에 따르면 올해 1월까지 등록된 채무불이행자 수는 약 123만9188명. 우리나라 가계 부채 1006조원 중 이들이 떠안고 있는 빚은 157조8375억원으로 전체의 16%에 달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행복기금'을 설립하고 서민들의 빚을 덜어주겠다고 공약한 것은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경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현재까지 윤곽을 드러낸 국민행복기금은 8700억원 규모로 올해 2월까지 6개월 이상 빚을 연체한 채무자에 대해 장기 분할상환, 저금리 전환 대출, 원리금 감면 등 채무 조정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국민행복기금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방안은 무엇일까.
오는 28일 설립되는 국민행복기금의 바람직한 운영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조세일보>는 학계와 정치권 등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구했다.
이번 '머니&토크'에 참여한 지상 토론자는 국회 정무위원회 김기식 의원(민주통합당),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실장(선임연구위원), 윤석헌 숭실대학교 교수, 이군희 서강대학교 교수이다.
■ 전국은행연합회에 등록된 6개월 이상 연체자는 112만명이다. 국민행복기금은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까.
서정호 실장: 국민행복기금만으로 우리나라 가계 부채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효과적으로 운영된다면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경제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고, 취약한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인프라를 보강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윤석헌 교수: 첫째는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한 저소득층의 생계형 부채 해결이다. 국민행복기금을 저소득층에 맞춰 운영하면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둘째는 대출 금융회사의 부실 차단이다. 국민행복기금이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매입해준다는 점에서 금융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가계 부채 쏠림 현상을 야기했고 이 문제의 장본인으로 볼 수 있는 금융회사들이 비용을 좀 더 부담하는 게 적절하다.
셋째는 시스템 위기 예방이다. 국민행복기금 자체가 정부의 가계 부채 해결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긍정적 신호가 될 것이다.
■ 은행, 저축은행, 보험, 카드 회사, 할부 금융, 대부 업체 등의 채무를 일괄적으로 조정할 경우 기금의 운영상 미비점은 없을까.
서정호 실장: 국민행복기금이 효과적으로 운영되려면 채권 금융회사들이 보유 중인 부실채권을 신속하게 매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매입 가격이 쟁점이다. 기금은 최대한 저렴하게 부실채권을 매입하려고 할 것이고, 채권 금융회사들은 비싼 가격에 매각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채권자와 채무자 간 가격 협의를 충분히 해야 하고 추후 잔여 이익에 대해 사후 정산이 되는 메커니즘도 고려돼야 한다.
김기식 의원: 국민행복기금은 자칫 금융회사의 행복기금이 될 위험성이 있다. 가계 부채 문제는 은행이나 카드 회사에서 채무자의 상환 능력과 신용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대출해 수익을 챙겨온 행태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따라서 사실상 회수가 어려운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것은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고 약탈적 대출을 묵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 정부가 채무 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시장 질서를 훼손하거나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김기식 의원: 국민행복기금의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큰 6개월 이상 연체자는 112만4711명으로 전체의 90.76%를 차지한다. 채무 금액은 136조8423억원으로 86.7%다. 또 90%는 빚이 1억원을 넘은 고액 채무자들이다. 잘못된 선례가 생기면 채무자들은 '버티면 언젠가 정부가 해결해 줄 것이다'고 믿게 된다. 게다가 성실한 채무자에게는 역차별로 받아들여진다.
서정호 실장: 성실 상환 채무자를 미리 선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사후에 은폐 소득이나 재산이 발견되면 무거운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수혜 대상자의 신용 정보 공유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윤석헌 교수: 하우스 푸어(House Poor)와 무주택 채무자 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전자는 집값 상승을 노리고 차입을 해 집을 구입한 경우다. 정부가 이들을 구제하는 것은 집값의 추가 하락을 억제하고 무주택자 입장에서 불만일 수밖에 없다. 이는 앞으로 무리하게 차입해 주택을 구입하려는 거품을 창출할 것이다.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도 우려된다. 비(非)우량 고객에게 마구잡이로 대출해준 금융회사가 손실을 구제 받는 것은 향후 위험 대출을 더 늘릴 수 있다.
이군희 교수: 가장 우려되는 것은 믿음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신용 시장의 붕괴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시장은 담보가 없이도 신용만 있으면 자금을 구할 수 있는 환경에서 발전돼야 한다. 1990년 초 홍콩에서는 부채 탕감 이후 3년 동안 채무불이행자가 10배 가까이 늘었다.
■ 국민행복기금의 바람직한 운영 방안은.
김기식 의원: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 전 6개월 이상 연체한 채무자에 한해 국민행복기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도 매달 4만7000명의 신규 채무불이행자가 발생한다. 이러한 이유로 기존과 신규 채무불이행자 사이의 차별이 발생하고 신규 채무불이행자들이 추가적인 조치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개인 회생 기간을 단축하거나 채무불이행자의 금융거래 제한을 해소하는 등 기존의 신용 회복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서정호 실장: 다중 채무자들의 문제를 채무 조정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이들이 과다 채무 문제에 다시 봉착하지 않도록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 예를 들어 자활 의지를 진작시키고 직업훈련을 알선하거나 금융 교육 등을 통해 소비 습관에 변화를 줘야 한다. 나아가 가계 부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가계 실질소득의 증대, 부동산 거래 활성화, 가계 대출의 구조 개선, 과다 채무자에 대한 자활 지원이라는 4가지 축에서 접근해야 한다.
윤석헌 교수: 가계 부채 문제는 금융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 실물 경기, 복지 등의 문제를 포괄한다. 따라서 다양한 정책을 종합적으로 균형 있게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또 가계 부채 문제를 초래한 금융회사들이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이군희 교수: 국민행복기금은 십중팔구 실패하리라 본다. 변화된 것은 하나도 없고, 몇몇 연체자들만 혜택을 본 채 8700억원이 날아가는 것이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십중팔구이니깐 10~20%의 희망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행복기금 운영자의 선정이며, 채무 조정 대상자의 선별이 더욱 정교해야 한다. 운영자는 전문성을 갖춰야 하며 감시 시스템이 필요하다. 6개월 이상 연체자 중 고의적 연체자, 고소득자 등은 제외돼야 한다. 채무자가 재기할 수 있도록 일할 터전도 제공돼야 한다.
[토론자 약력]
김기식 의원: 서울대학교 인류학 학사,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제19대 국회의원, 민주통합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서정호 실장: 연세대학교 경영학 학사, 금융감독원 은행감독국, 하나금융그룹 부사장,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위원
윤석헌 교수: 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 HK저축은행 사외 이사, 한국거래소 사외 이사,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
이군희 교수: 서울대학교, 서울대 경영학 초빙교수, 뉴욕주립대학교(State University of New York) 비상임 교수, 휴스턴대학교(University of Houston) 경영학 교환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