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세무서 맞은편에 있는 세경세무법인의 사무실 안에는 며칠 전부터 치르기 시작한 '신고전쟁' 탓인지 여기 저기 수임업체로부터 수집한 증빙들이 널려 어수선한 모습이다.
며칠 전부터 신고 준비로 밤샘작업이 이어진 터라 츨근하는 직원들의 표정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오전 9시, 이 곳 직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를 찾아 주어진 업무에 열심이다.
'호텔식 세무사무실'로 알려진 세경세무법인의 직원은 21명. 이중에서 부가세 신고를 전담하는 직원은 최용록, 성열건, 박승용 세무사를 포함해 모두 12명. 부가세 신고를 진두지휘하는 이들 세무사 아래 각각 3명의 직원들이 포진해 있다. 다시 말해 팀제로 운영되고 있다.
12명 외 나머지 9명의 직원들은 세경세무법인이 의욕적으로 벌이고 있는 복합운송관련 영업·회계 프로그램 개발 등 전사적자원관리(ERP)사업과 자동차보험가입대리업무 등 또 다른 실무팀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부분 여직원으로 구성된 '부가세신고준비팀' 직원들은 수임업체들로부터 수집된 세금계산서 등 각종 증빙 자료를 더존회계프로그램에 입력하는 일로 본격적인 부가세 신고 업무를 시작한다. 이들 자리 뒤에 종이 상자 안에 수북이 쌓인 증빙 자료들은 이들의 업무량을 가늠케 했다.
세경세무법인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이희경씨(33세)는 "단순히 세금계산서를 입력하는 것으로 부가세 신고업무가 끝난다면 훨씬 수월하겠지만 세금계산서 입력 업무는 전체 업무중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희경씨는 "입력업무와 함께 세금계산서 상에 기재된 담당업체의 품목에 따라 계정과목을 분류, 분개하는 업무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며 "구분이 애매한 '매출·매입에 대한 결정'은 수임업체에 전화를 걸어 직접 확인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각 팀을 담당하고 있는 세무사들은 팀원들이 제출한 부가세 신고서에 잘못된 내용이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한다. 세경세무법인의 경우 직원들이 입력한 내용을 세무사들이 다시 한번 검토하는 '크로스체크'를 하고 있었다.
성열건 세무사는 "세금계산서 등 증빙금액과 신고서 금액이 정확히 일치하는지 살펴보는 것 외에 수임업체 매출액이 직전 사업연도와 비교해 지나치게 증가했거나 감소함에 따른 납부세액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거나 부정환급 세액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출된 부가세 신고서 검토가 끝나면 세무사들은 담당 팀원들이 어려운 점은 없는지 살펴보며 팀원들과 긴밀한 대화를 나눈다.
오전 11시. 한 여직원이 수임업체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전화를 걸어 온 수임업체는 이번 부가세 신고 때 납부할 세금 걱정으로 이곳에서 납부서를 발행하기도 전에 세액을 물어오는 전화였다.
'가르쳐 달라', '가르쳐 줄 수 없다'는 실랑이 끝에 결국 납부서가 도착하기 전에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성 세무사는 "아직 검토가 끝나지 않은 납부세액을 수임업체가 요구한다고 해서 가르쳐 줄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중간에 납부세액이 변경되기라도 하면 철저한 정확성이 요구되는 세무법인이나 수임업체 모두가 곤란을 겪게 된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납부세액이 큰 업체의 경우 이들 업체들이 세무서에 납부할 자금 마련을 위한 시간을 주기 위해 납부서 발급 전 세액이 대충 얼마정도 되는지 미리 귀띔해 주기도 한다.
오후 12시. 물 한잔 마실 틈 없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오전 업무를 마친 직원들은 이날 비가 와서인지 대부분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기로 결정했다.
한 여직원은 "밤 12시경 퇴근하면서 라디오를 들었는데 요즘에는 라디오에서 소개하는 사연 들 중에는 사무실에서 보내는 사연이 많은데 아마 부가세 신고 업무를 하고 있는 세무사 사무소 직원들일 것"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또 다른 여직원은 "이곳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일을 마치고 나면 성취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오후 3시. 한 여직원이 갑자기 담당업체의 거래처가 부도가 났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전에 비슷한 업무를 처리한 여직원이 "금융결제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업체의 부도를 증명할 수 있는 내용을 알 수 있다"고 말해 들어가 봤지만 부도내용을 확인 할 수 없었다.
담당업체가 부도가 날 경우 이를 증명할 수 있으면 '대손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지만 부도 처리된 어음 등 부도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으면 수임업체는 고스란히 세금을 내는 수밖에 없다.
하던 일을 멈추고 한동안 방법을 찾던 여직원과 최용록 담당 세무사는 "이처럼 거래처 부도가 증명되지 않을 경우 법인세 신고 때 비용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후 4시. 부가세 신고에 필요한 신고서, 매출처·매입처별 세금계산서 합계표가 출력되기 시작한다. 이들 서류의 최종 검토자는 담당 세무사. 이들의 치밀한 검토가 끝나면 곧바로 납부서 발급이 시작되고 부가세 신고 업무는 끝이 나게 된다.
부가세 신고의 막바지 작업을 돕기 위해 담당 세무사와 ERP 사업을 맡고 있는 권지선 공인회계사 등 세경세무법인 직원들이 모두 가세해 입력 작업과 세액 검토 등 부가세 신고 업무를 도왔다.
갑자기 "내일이 신고 마감인데 주류회사는 왜 그런데요"라는 애타는 소리가 들렸다. 마감 하루를 남겨 놓고 아직까지 증빙을 보내지 않은 업체와 이들 업체를 담당하는 박중식 팀장의 전화 통화내용이었다.
최용록 세무사는 "신고 때마다 증빙 때문에 애를 먹는다"며 "특히 처음 사업을 시작하는 사업자의 경우 세금에 대해 전혀 몰라 더 힘이 든다"고 설명했다.
최 세무사는 "이들 업체들을 수임할 때마다 세금을 잘 내야 손해 보지 않는다고 몇 번을 설명해도 소용없다"면서 "부가세 신고가 다 되어서야 예상외로 세금이 많이 나간다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증빙을 챙기는 업체가 많다"며 아직도 낮은 사업자들의 납세의식을 아쉬워했다.
최 세무사는 "어떤 사업자의 경우 모든 영수증이 세액공제가 되는 줄 알고 애기 기저귀를 사고 받은 영수증을 포함해 까만 비닐 봉지에 담아오기도 한다"며 "이럴 경우 필요한 영수증만을 골라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오후 5시. 한 여직원이 우편 접수를 하기 위해 각 세무서 주소가 입력된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부가세, 원천세의 경우 전자신고가 가능하지만 아직까지 오류가 많아 우편 접수를 더 많이 이용한다.
부가세 신고에 사용된 증빙들은 각각 A4용지에 잘 붙여서 사업자들에게 돌려준다. 나중에 있을 지 모르는 세무조사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들 증빙의 보존기한은 5년.
오후 6시. 다른 사무실은 퇴근 준비에 한창일 이 시간에 이 곳 세경세무법인의 직원들은 내일 있을 신고 준비로 쉴 틈이 없다.
한 여직원은 "부가세 당일 오전까지는 작업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이번 부가세신고 준비가 무사히 끝나게 돼 다행"이라고 기뻐했다.
최 세무사는 "부가가치세 신고는 1월부터 6월까지 매출한 것을 7월 25일까지 신고해야 하지만 실제로 증빙이 모두 갖춰지는 시점은 마감 5∼6일 전으로 필요한 증빙이 모두 있어야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 세무법인으로서는 이 기간동안 한꺼번에 세금계산서 입력에서 납부서 발급까지 한다"고 설명했다.
최 세무사는 "이런 일로 신고 때만 되면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거나 밤을 샐 수밖에 없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오후 11시. 오늘도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14시간 동안 부가세 신고 업무가 강행됐다. 매번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여직원은 "내일 우편접수와 함께 전자신고가 이뤄질 것"이라며 "전자신고 입력작업이 끝나면 이번 부가세 신고도 무사히 마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세경세무법인 02-678-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