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가 새로운 화두로 부각되면서 경제사범에 대한 법의 잣대가 바뀌고 있다.
서울 서부경찰서는 최근 유통업계의 밀어내기 관행을 폭로한 남양유업 욕설파일 최초 유포자에 대해 ‘혐의 없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남양유업 욕설파일을 SNS에 올린 대리점주 2명을 조사해온 서부경찰서는 이들의 녹음파일 유포 행위가 비방보다는 공익적 성격이 더 크다는 이유로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욕설파일을 SNS에 올려서라도 공익적 목표를 달성했다면 범죄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하나의 선례를 남긴 셈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CJ그룹의 이재현 회장은 그동안 경제발전을 위해 쌓은 공로에도 불구하고 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돼 '영어의 몸'이 됐다. 박근혜 정부들어 첫번째 대기업 회장 구속이다.
대형 로펌의 관계자들은 "지난 대선때부터 이슈가 된 경제민주화가 오늘 내일 끝날 일이 아니며 박근혜 정부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 논의가 될 수 있는 핵폭탄급 논제"라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대기업 그룹 회장들의 잇따른 법정구속에 이어 이재현 회장마저 구속된 일련의 흐름을 눈여겨 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인수위에서 공약을 재정리하여 140개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를 빼고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질서 확립’이라는 항목에 경제민주화 공약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어 지난 4월까지만해도 박 대통령은 꾸준히 경제민주화가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는 방향으로 진행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또한 국세청장, 공정거래위원장, 관세청장과의 조찬간담회를 통해 경제민주화가 기업을 위축시켜서는 안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남양유업 대리점주의 밀어내기 폭로와 영업사원의 폭언 등 ‘갑’의 ‘을’에 대한 횡포가 연이어 보도됐고 배상면주 대리점주의 자살사건과 5명에 이르는 편의점 주인들의 자살이 사회문제로 비화됐다.
이로 인해 시들해졌던 경제민주화 이슈가 지난 5월28일 국무회의에서 140개 국정과제를 최종 확정하면서 4대 국정기조인 경제부흥 아래 △창조경제 △경제민주화 △민생경제라는 3대 중간과제를 넣으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법무법인 화우의 손인옥 고문(前 공정위 부위원장)은 “신뢰성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고 있는 대통령의 철학을 볼 때 공약으로 약속한 것은 실천할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단지 언제 실천할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라고 짚었다.
손 고문은 이어 “경제민주화 추진은 시대적 큰 흐름이며 이에 역행하는 기업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며 “갑을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전반에 확산되어 있고 정치권은 지지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관련 입법활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서울중앙지법 법정에 들어서기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고개숙이고 있다. (사진=김용진 기자)
■ 법무법인, 이재현 회장 구속 미리 점쳐…"경제민주화 더욱 거세질 것"
법무법인들은 서울중앙지법이 1일 영장실질심사에서 이재현 회장을 구속키로 결정할 것을 어느정도 예측하고 있었다. 경제민주화는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라는 인식이다.
재벌 그룹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여 관용을 베풀던 미덕은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IMF 경제위기 시 대우그룹 등 대기업들이 공중분해 되면서 '대마불사'란 얘기는 더이상 통하지 않게됐다. 경제발전에 기여한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는 한걸음 더 나아가 대기업 오너에 대한 배려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대선때 몰아닥친 경제민주화 바람 이후 재벌 회장에 무관용 분위기가 자리잡았고 대기업 회장의 잇따른 구속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이 회장이 구속될 것이라는 얘기는 지난 5월28일의 국무회의 이후 법무법인과 법조인들 사이에서 조심스레 흘러나왔다.
법무법인 화우의 차동언 변호사는 "경제적 강자가 형사법적 특권을 누린다는 공감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유전무죄·무전유죄에 대한 국민의 반발심리가 커지고 있다"면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형사법적 접근이 필요한 시기"라고 분석했다.
차 변호사는 "경제민주화는 지나간 이슈가 아니며 일감몰아주기의 범죄화, 갑을관계에 대한 사법적 개입 등 개별적인 논의 형태로 접어들고 있다"면서 "경제민주화는 계속 강화되어 복지와 함께 향후 정책운영의 2대축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경제민주화는 특히 여론의 향배와도 직결되어 있다. 아무리 대기업 오너라 하더라도 여론이 악화되면 시대의 흐름에 맞설 수 없게 된다. 유명 인사일수록 경제민주화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흐름을 맞고 있다.
최근 발간된 '여론과 법, 정의의 다툼'이라는 책에서 1799년 뉴욕에서 일어난 미국 최초의 유명 인사 살인사건 재판 사례를 들며 "충격적인 사건에서는 유죄판결만이 정의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는 교훈을 말한 것이 이 시기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