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소원·금감원, 쌍봉형 체제로 구축 추진
양 기관 협의 등 규정 불구 갈등 불씨 많아
지난 2008년 이후 정치권과 학계 등을 중심으로 뜨겁게 설전을 펼쳤던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금융 정책과 감독의 기능 분리 없이 금융소비자 보호기구만을 독립기구화 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전망이다.
23일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금융감독체계 선진화 방안'을 국무회의에서 보고했다.
금융위가 준비한 방안에 따르면 기존 금융감독원에서 조직을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이라는 독립기구를 신설하게 된다.
신설 금소원의 집행간부는 금감원의 임명절차, 임기와 동일하게 규정하고 금소원장은 금융위원회 당연직 위원으로 금감원장과 대등한 위상을 갖게 된다.
금소원은 원장, 부원장, 부원장보로 집행간부를 꾸리돼 금감원과 금소원의 집행간부 총수는 현행 금감원의 집행간부수(부원장 3, 부원장보 9)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결정토록 할 예정이다.
한마디로 기존 금감원 조직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금소원 조직을 떼어내 독립기구화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오는 2014년 2분기 말 기구신설을 목표로 향후 입법 진행경과를 보아가며 금융위, 금감원, 금소원이 참여하는 설립위원회를 구성해 조직, 인사, 재원분배 방안 등을 논의키로 했다.
■ 금소원, 어떤 업무 맡나…금융권 예의주시 = 신설될 금소원의 업무는 기존 금융감독에 치우쳤던 것을 보완해 금융소비자 보호의 기능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금소원의 업무는 금융민원 및 분쟁조정 처리, 금융교육 및 정보제공 등 금융소비자보호 인프라, 서민금융 지원, 금융상품 판매 관련 영업행위 감독으로 명확하게 제한된다.
또 금소원은 금감원과 동일하게 업무수행과 관련한 규칙 제·개정권이 부여된다. 다만 규칙 제·개정시 상대기관과 사전협의가 의무화된다.
금소원에는 은행, 보험, 금투, 여전사 등 전 금융권에 대한 검사 및 제재권이 부여되지만 금융회사 부담 최소화 장치가 마련된다.
즉, 금감원과 금소원 양 기관간 MOU를 통해 중복적 자료청구 및 수검부담 방지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회사 검사는 금감원과 공동검사를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인 경우에 단독검사권을 허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검사결과에 따른 제재권을 부여하되 금감원과 금소원 간 중복제재 및 제재형량 등의 조정을 위해 양 기관간 협력체계를 마련하고, 금융위는 양 기관 간 MOU 등의 이행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해 이견사항 해소 및 금융회사 수검부담 완화를 도모할 예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향후 금융환경 변화 및 기구정착 추이 등을 감안해 금융위가 주기적으로 업무현황을 점검하고, 양 기관간 협의를 통해 합리적인 업무 및 인력정비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기존 금감원을 나눠서 금소원을 신설하는 만큼 초기 설립 비용 외에 금융회사 감독분담금 등이 과도하게 소요되지 않을 것"이라며 "새 기구가 설립되는 만큼 집행간부 인선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했다.
■쌍봉형 체제, '갈등 불씨' 어쩌나 =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금감원과 금소원이라는 쌍봉형 체제 출범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금융위 산하에 금융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금감원과 금소원이 설립되고, 이들에 대한 조율을 금융위가 맡겠다고 나섰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이다.
우선 금융권에서는 금소원의 출범에 따라 시어머니가 하나 더 늘었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
금융위도 이를 의식한 듯 양 기관간 규칙 제·개정시 사전협의 의무화, 금융회사 부담 최소화를 위한 공동검사 원칙 준수(예외적인 경우 단독검사권 허용), 중복 제재 및 제재형량 등 조정을 위한 양 기관간 협력체계 마련 등의 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금융건전성 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배치된 목적을 가진 양 기관이 사사건건 부딪히며 갈등을 겪게 될 경우 금융시장에 상당한 혼란이 올 수도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상품에 대한 약관심사 등은 원칙적으로 금감원이 수행하도록 하고 금융상품 판매 관련 영업행위 감독은 금소원에 맡겼는데 금융사들은 이제 금융위를 포함해 3명의 시어머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양 기관의 이견이 돌출할 경우 금융위가 이를 조정할 수 있을 지 미지수다"고 밝혔다.
또 금감원과 금소원이 추진하게 될 검사의 목적이 상이한 상황에서 이를 금융회사 부담 최소화를 이유로 중복적 자료징구를 방지토록 하고 중복제재 및 제재형량 등을 양 기관이 조정토록 했지만 애매하게 규정한 이 같은 부분이 양 기관 간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많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반쪽짜리 개편안? = 이번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바라보는 시민단체와 학계 등은 '무책임하고 허술한 반쪽짜리 방안'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금융위가 이번 금융감독체계 개편에서 그동안 수없이 지적돼 온 금융정책과 감독정책의 분리, 국내금융과 국제금융의 통합문제를 정부의 조직개편이 마무리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개편 방안에 반영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다.
금융위가 금융행정체계 개편 대신 기획재정부, 금융위, 한국은행 간 공유가능 정보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부처간 칸막이를 해소해 협업 시스템 강화 등을 도모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번 금융체계개편의 대상자이기도 한 금감원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역시 금융위는 쏙 빠진 반쪽짜리 방안이다"며 "너무도 허술한 개편방안으로 실효성도 없고 혼란만 가중할 것"이라고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또 이들은 "금소원 분리는 해외 분리형 금융감독 모델을 참고하고 있는데 분리형 모델의 종주국인 호주조차 국회에서 분리형 모델이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1년 호주 2위 보험사(HIH) 파산 사건, 2009년 호주 퇴직연금 운용사(트리오 캐피탈) 사건 등이 터졌는데 분리된 두 감독기관이 사건 초기 서로 자기 관할이 아니라고 책임 떠넘기기를 하다가 부실을 더욱 키운 측면이 있는데도 이러한 해외 실패 사례를 금융위에서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어 이들은 "금융위가 법률, 시행령 관련 권한에 규정 개정권까지 틀어쥐면 금소원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며 "규정 개정권조차 주지 않고 소비자보호를 하라는 것은 그야말로 금융위의 하수인 기관 하나 더 만들겠다는 음모가 아니고 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금융산업은 정부가, 금융감독은 소위 모피아로부터 독립된 공적민간기구가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금융위는 이번 개편안에서 '금융행정'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산업정책과 감독업무를 정부에서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이는 세간의 보편적인 요구를 애써 외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금융 소비자 보호기구를 독립하겠다고 했는데 가장 중요한 검사와 제재 관련 사항을 양 기관이 협력하라는 것은 제대로 된 분리가 아니다"며 "양 기관을 어쩔 수 없이 분리하지만 금융위가 이들을 분리하지 않은 것처럼 통제하겠다는 속내가 숨겨 있다"고 강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