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년 동기 대비 10조원에 육박하는 세수가 부족 징수되는 등 국가 재정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이처럼 사상 초유의 세수부족 사태가 현실화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경기침체'다.
아울러 정부의 실속은 없고 장밋빛으로만 물든 경제전망에 의한 '뻥튀기' 세입예산 책정도 세수부족 사태를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보이게끔 만든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암울한 상황에서 정부가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국가 조세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조세재정연구원의 입을 빌려 내놓은 정부의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은 실망을 떠나, 정부가 도대체 무슨 의도를 가지고 내놓은 것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방향성'은 제시됐지만, 가장 중요한 '방법'이 부재한 모습이다.
방향성 또한 여론의 '몰매'를 맞기에 충분하다.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 수립시 우선적으로 체크해야 할 '이정표'로 저성장, 저출산·고령화 등 현재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현실적인 부분과 '통일재원' 마련 필요성을 제시했다. 즉, 이런 여건들을 감안해 중장기 조세정책 기조를 잡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거창한 이정표들을 전면에 내세운 정부의 진짜 의도는 결국 '증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저성장, 저출산·고령화, 통일재원 필요성 등은 증세 필요성을 교묘히 뒷받침하는, '공포마케팅'의 소재다.
특히 소득세·금융과세제도 분야에서 과다한 비과세·감면에 따른 면세자 비율이 높다며 비과세 소득을 과세로 전환, 과세기반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 관점에서 본다면 면세자 비율이 높은 것은 분명 문제이며 지난 십 수년 동안 지적되어온 부분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점'이다.
면세자의 대부분은 고소득층이 아닌 서민층이다. 경기침체로 고소득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고통지수'를 체감하고 있는 서민층들에게 세금을 더 내야한다, 는 이야기를 지금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경기활성화를 위해 기업들에 대한 법인세를 낮추는 등 성장친화적 조세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방향성은 여러 측면을 감안할 때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기업에 대해서는 감세를 하면서 일반 국민들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것은 명백한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살기 좋은 환경 만들기도 중요하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세금을 더 내라고 한다면 두 팔 들고 환영할 국민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원칙과 방향도 좋지만, 현실적 상황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한 조세정책 방향이다.
방법도 문제다. 일단 방향성에 맞춘 구체적인 제도개편 방법론이 제시되지 않았다.
단순히 확대 필요, 개편 필요 등 의견만 나왔을 뿐, 어떤 형태로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언급은 없다. 물론 보고서의 제목처럼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일 뿐이다'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방향성은 지난 십 수년 동안 언급이 되어 왔던 내용들이고, 정부 또한 수 차례에 걸쳐 소위, 우려먹은 것들이다. 다시 말해 전혀 새로울 것도 없다는 것이고 방향성 제시보다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방향성 운운하며 교묘히 증세 필요성을 제시하는 것은 두렵지 않고, 구체적인 증세 방법을 제시했을 때 불러올 여론의 반향은 두려웠다는 것인지,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가 보고서 전반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아 불편하기 짝이 없다.
또 한가지, 사상 초유의 세수부족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은 지금 당장의 문제다. 현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없이 미래를 운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아울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향후 5년 동안 135조원에 달하는 재원이 투입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의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높게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 그 어디에도 그런 이야기는 없다. 보고서의 전체적인 맥락은 결국,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해도 향후 복지공약 실현에 필요한 재원 마련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로 온 나라가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경기활성화를 위한 조세정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도 모자를 이 판국에 엉뚱한 복지공약 실현을 위한 조세정책을 고민할 때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