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하 조세연구원)은 23일 서울시 가락동에 위치한 연구원에서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 대한 공청회'를 열고, 세목별 주요 정책과제를 담은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기획재정부의 용역발주를 토대로 작성된 보고서는 중장기적으로 소득세와 부가세 부담을 올리고 법인세 부담은 낮추는 방향의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또한 양도소득세·취득세 등 거래세를 낮추고, 재산세 등 보유세를 늘리는 정책방향도 내놓았다.
정부는 조세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와 이날 토론회를 통해 수렴된 의견을 덧붙여 내달 2013년 세법개정안과 함께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을 확정,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정부는 이번 공청회에 앞서 새로운 관점의 조세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양 홍보했다. 그런데 막상 모습을 드러낸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은 매우 낯이 익은 모습이다. 7년 전인 2006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조세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에 담긴 내용 중 상당수가 2006년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가 조세연구원과 함께 작성한 '중장기 조세개혁 보고서'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2006년 당시 중장기 조세개혁 보고서도 세율인상 또는 세목 신설 등 직접 증세 없이 조세제도 개편을 통해 세수를 확충한다는 기본 취지가 설정되어 있었다. 이번 조세연구원의 보고서도 표현법만 다를 뿐 취지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06년 중장기 조세개혁 보고서에 담겼던 근로소득 공제 축소 등을 통한 소득세 면세자 비율 축소는 2013년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 보고서에서 비과세 소득 과세 전환 등을 통한 소득세 면세자 비율 축소로 문구만 달라졌을 뿐 판박이다.
소비과세 분야에서도 2006년 중장기 조세개혁 보고서는 교육(학원 등)·의료보건 서비스에 대한 부가가치세 10% 과세 방안을 담았었다. 7년 후 조세연구원이 작성해 내놓은 보고서에도 이 부분은 그대로 담겼다.
이외에도 2006년과 2013년 7년의 시간을 거스르는 동안 변하지 않은 것들이 상당하다.
거액의 용역비를 지출해 작성한 보고서가 과거 보고서의 재탕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나라 조세제도상 지적되어 온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차 같은 내용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볼 여지가 많다.
지난 2006년 정부는 대통령 직속 조세개혁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대대적인 조세개혁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재정경제부에도 TF팀을 구성, 상당한 시간 동안 공을 들여 조세개혁 보고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2006년 2월 어느 날, 철저한 보안 속에 작성이 마무리 된 중장기 조세개혁 보고서가 여론 수렴을 위한 공청회를 앞두고 유출되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이 여파로 공청회는 무기한 연기됐고 TF팀을 이끌던 국장급 간부가 보직해임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중장기 조세개혁 문제는 이 사고를 기점으로 흐지부지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