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 중인 가운데, 차명 거래에 대한 법적 처벌 논란에도 불이 붙고 있다.
오는 12일 금융실명제가 시행된지 20년이 흐른 시점에서 최근 CJ그룹이나 전두환 전(前) 대통령 일가의 차명 거래가 대형 비리와 탈세에 연루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차명 계좌의 실태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민병두 민주당 의원에 이어 김기준 민주당 의원,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 차명 거래자뿐 아니라 이를 방조한 금융회사에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가명뿐 아니라 합의에 의한 차명도 안돼" = 개정안의 핵심은 금융거래에서 가명을 포함해 합의에 의한 차명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만일 이를 위반하면 금융회사와 거래자, 명의자 둘 다 처벌을 받는다.
그동안 차명 거래를 규제하지 못한 것은 입증 곤란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민병두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차명 계좌의 금융자산을 명의자의 것으로 간주한다.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나 '상속세 및 증여세법'과 마찬가지로 증여를 의제(擬制)해 실제 거래자가 명의 수탁자에게 이익 반환 청구를 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것.
한마디로 차명 거래를 하면 위탁한 자산을 돌려받을 수 없다. 거래자의 명의자에 대한 증여 의제로 간주하면 입증 곤란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며 이는 다른 법안들이 이미 적용한 것이라 법리적 논란의 소지가 적다는 게 민병두 의원 측의 설명이다.
차명 거래 금지에 대한 논의는 오랜 기간 있어왔으나 새 정부 들어 '지하경제 양성화'가 추진되고 있고 차명 계좌 추적을 통해 어마어마한 세수 확보가 가능해지는 만큼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금융권에서는 선의의 차명 거래를 처벌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명 거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외 차명 계좌를 이용해 자금세탁 등 불법 외환 거래를 하는 규모도 해마다 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불법 외환 거래는 2010년 3조1017억원에서 2011년 3조8000억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4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금융권 선의의 차명 거래 처벌 우려 = 정부와 정치권은 이미 오랜 기간 차명 거래를 금지할 법적 장치의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선의의 차명 거래'마저 처벌하거나 원천 차단하는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예컨대 불법 비자금이나 탈세와 관련 없는 일반인 거래자들, 즉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가족이나 동창회 등 당사자 간 합의된 차명 계좌까지 단속의 대상이 될 경우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고 또 다른 편법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본격적인 논의는 계속해서 미뤄져왔다.
또 예금자보호법상 정부가 보장하지 않는 5000만원 초과액을 가족의 명의로 예금하는 경우도 이러한 선의의 차명 거래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정부 부처 간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국세청과 관세청은 차명 거래 금지를 통해 세수 확보를 추진하려는 반면, 금융위원회는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차명 거래를 처벌해야 한다는데는 동의하지만, 선의의 거래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증여 의제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예를 들어 차용증서를 받고 돈을 빌려줬는데 이 돈이 차명 계좌로 입금된 경우 재산권을 요구할 방법이 없어지는 등의 엉뚱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선의의 차명 거래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굉장히 기술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