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업계 규제 완화 요구에 금융감독당국 '난색'
지역영세중소기업 대상 밀착형 관계금융 등 해법 제시
생존의 기로에 선 위기의 저축은행의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때 231개에 달하던 저축은행수는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거듭하며 올해 6월 말 현재 91개로 줄어들었고, 수익성은 2004년 이후 잠시 회복되었다가 2009년 6월 말 이후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013년 상반기 저축은행들의 당기순이익은 8803억원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활로를 찾지 못한 체 절체절명의 위기에 서 있다는 것이 금융권의 전반적인 분석이기도 하다.
30일 한국금융연구원과 금융위원회의 공동 주최로 서울 YWCA 대강당에서 진행된 ‘저축은행의 건전한 발전방향 공개토론회’는 이 같은 절박한 위기 의식에서 출발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저축은행산업 내부적으로는 지난 2년여간 구조조정을 통해 누적된 부실 대부분을 해소하는 성과를 달성했으나 업계 신뢰도가 하락한 상황에서 수익구조가 악화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저축은행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건전성과 투명성 제고를 통해 실추된 국민적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대형저축은행의 소유집중도를 낮추고 상장을 통해 시장감시기능을 강화하는 등 소유 및 지배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저축은행의 활로를 관계형금융(relationship banking) 확대에서 찾았다.
그는 "향후 저축은행은 고위험고객을 주 고객으로 하기 보다는 심사 및 사후관리과정에서 높은 비용이 발생하는 고비용고객을 주 고객 대상으로 해야 할 것"이라며 "관계형금융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대출심사 및 사후관리, 대출자산 분류 및 검사규정 개정 등 여러 가지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단계적 활성화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계형금융을 통해 담보 및 신용도 부족으로 은행이 취급하기 어려운 중소영세기업 및 서민에 대한 자금제공이 저축은행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새시장이라는 지적인 것이다.
저축은행의 집중화된 지배구조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다.
박광우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6월말 기준으로 저축은행의 소유지배구조가 최대 주주 등에 87% 쏠려 있는 집중화된 구조에서 대주주는 사적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며 "적어도 40%까지 대주주의 지배구조를 줄이고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건범 한신대 교수는 저축은행이 기본으로 돌아가 지역밀착형 관계금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에서는 은행이 밀고 들어오고 밑에서는 상호금융기관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저축은행의 정책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한다"며 "주주를 분산하고 고강도 감독을 하는 대신 지역 밀착형 관계금융을 할 수 있도록 영업구역을 좀 더 풀어주고 세제 혜택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에 보다 많은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한대호 저축은행중앙회 상무이사는 "중앙회를 통해 업계에 대한 자율규제를 강화하기 보다는 회원사의 영업력을 지원하는게 타당하다고 본다"며 "저축은행을 이용할 경우 은행에서 여신심사를 할 때 신용차별을 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대부업체 이용을 부추기는 등 역선택이 발생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또 그는 영업구역 의무대출비율 완화, 예금보험료 인하, 자동차 보험 허용, LTV(주택담보대출비율) 규제 완화, 비과세 예금상품 허용 등 저축업계의 영업력을 강화할 수 있는 규제완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입장은 단호했다.
최건호 금융감독원 저축은행감독국장은 "저축은행의 영업환경이 너무 안 좋다"면서도 "저축은행이 어려운 영업환경에 놓여 있다고 해서 자칫 일방적인 규제 완화로 이어지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윤수 금융위원회 중소금융과장은 "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이 일단락 되면서 발전방향에 대한 금융당국의 스탠스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며 "저축은행의 경우 개인 신용대출보다는 중소기업 대출을 강화하는 것이 맞는 모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자연생태계에서도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있는 것처럼 금융시장에서도 은행이 많이 비대해져 있는데 비은행 금융기관들이 틈새 부분을 메워줘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며 "저축은행의 대주주 문제는 계속 고민하는 부분이고 일부 규정 보완을 통해 대주주의 횡포를 막는 장치는 상당부분 확보해 두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저축은행업계의 규제 완화 요구에는 선을 그었다.
이윤수 과장은 "저축은행 지점 확대를 위한 규제 완화를 이야기 하는데 현재 시중은행에서도 비용 문제 때문에 점차 축소해 가는 방향과 반대라 맞는지 모르겠다"며 "자동차 보험 역시 현재 저축은행에서 방카 영업도 잘 못하고 있는데 은행에서 보장성 보험 영업을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부분을 허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재연 선임연구원은 토론에 말미에 "문제 의식의 출발은 남아 있는 저축은행이 어떻게 살아 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과연 담보나 공식적인 재무제표를 작성할 수 없는 중소영세업체가 어디서 자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였다"며 "그 역할을 수행할 곳이 저축은행이어야 할 것이냐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재 상황에서 저축은행이 빠질 경우 몇 개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상호금융기관 등 조합이 남는데 과연 이곳에서 영세중소기업들이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겠냐"며 "우리 금융시스템에도 빈 부분이 있는 것인데 이처럼 자금 지원을 못 받는 계층은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가가 고민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