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18일 '세무조사 감독위원회(이하 감독위)'를 본격 출범시켰다.
그저 그런 전시성 위원회가 아닌 실질적으로 국세행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외부위원회 역할을 하도록 한다는 것이 국세청의 방침. 특히 가장 비밀스러운 세무조사 행정 운영 틀을 위원회의 관리·감독 하에 편입시켰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감독위 설치는 지난 8월29일 김덕중 국세청장의 약속을 토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당시 CJ세무조사 무마비리 사건으로 현직 1급 지방국세청장이 불명예 퇴진하는 등 국세청은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이 같은 위기를 타개하고 국세청에 대한, 국세청의 핵심업무인 세무조사 행정에 대한 국민신뢰 회복을 모토로 구상되기 시작, 이날 공개된 감독위 형태와 역할은 국세청이 지난 시간 동안 얼마나 깊게 고민하고 준비해 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델'이 됐다.
□ '안대희', 그가 가진 '이미지'가 절실했다 = 세무조사의 기본 취지는 탈세를 척결해 성실납세를 담보,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견인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조사행정 자체가 비밀스럽게 운용되어 왔기 때문. 지나친 비밀은 진실마저 의심케 한다. 실제 진위여부를 떠나 정치적 색채가 조금이라도 가미된 세무조사 진행 사실이 드러나도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비판여론과 의구심이 폭발적으로 생성, 국세청을 괴롭혀 왔다.
그런 측면에서 확실한 '외부의 눈'인 감독위가 세무조사 행정 전 과정에 걸친 운용 틀을 만들고 이를 관리·감독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은 세무조사의 공정성 등에 대한 막연한(?) 의심을 차단하는데 '완충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발 더 나아가 조세법에 정통한 대법관 출신으로 사회적 지명도가 높은 '거물' 안대희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영입한 부분도 눈에 띈다.
그는 국세청이 가장 필요로 했던 청렴·강직, 공정, 원리원칙 이미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를 위원장으로 영입, 안대희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그대로 감독위에 투영해 국세청 개혁의지를 극대화하는 효과까지 노린 포석인 것이다.
□ 매출액 3000억원 대기업을 품다(?) = 이날 감독위 첫 회의에서 논의한 핵심 내용은 5년 주기 순환조사(정기세무조사) 대상 대법인 기준을 현행 50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낮추는 것이었다. 국세청은 내년부터 새 기준을 토대로 세무조사 대상선정을 진행할 예정이다.
일정 매출액 이상 대법인에 대한 5년 주기 순환조사는 백용호 전 국세청장 재임시절이었던 지난 2009년 만들어진 틀. 당시 순환조사 주기 4년·조사사업연도 2개년으로 기준이 만들어졌지만 지난해 순환조사 주기 5년·조사사업연도 3개년으로 강화했다.
매출액 기준을 대폭 하향조정(5000억원→3000억원)하는 것은 여러 측면의 해석이 가능하다.
일단 '대기업 세무조사가 많아진다'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순환조사 대상 기업의 숫자는 1114개(2012년 기준 매출액 5000억원 기업 689개, 3000억원 기업 425개)로 늘어난다. 하지만 국세청은 이는 기준 조정에 따른 '착시현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설명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매출액 기준을 낮춘다고 해서 당장 세무조사 대상 기업이 늘어난다고 볼 수는 없다. 인력구조 등을 감안할 때 국세청에서 소화할 수 있는 조사건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1년 매출액 5000억원 이상 대기업 중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은 기업의 숫자는 84개에 불과했다. 즉 기준이 하향조정 됐다고 해도 순환조사 대상 '모수(母數)'만이 증가한 것일 뿐, 당장 내년부터 세무조사를 받는 대기업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다만 조사의 강도는 높아질 전망이다.
통상 일반법인의 경우 세무조사 대상 조사사업연도는 2개년. 순환조사 대상 기업(매출액 5000억원 이상)에 적용하는 조사사업연도 기준은 3개년이다.
다시 말해 그동안 2개 사업연도만 조사대상에 포함됐던 매출액 3000억원 이상 기업들도 내년부터는 3개 사업연도에 대해 조사가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조사의 깊이와 강도가 높아지는 만큼 대상 기업들이 체감하는 세무조사 피로도 또한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또 다른 국세청의 '노림수'가 숨어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조사사업연도 기준이 2개년인 경우 부과제척기간 도과 등으로 인해 조사를 받지 않는 사업연도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조사사업연도 기준이 3개년이 될 경우, 실질적으로 전 사업연도가 세무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만큼 '빈틈'이 없어지는 셈이다. 기업들에 대한 검증을 한층 정밀하고 광범위하게 넓혀 미처 찾아내지 못한 탈세유인을 잡아 세금을 추징,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국세청의 의도가 숨어 있는 대목으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