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행위와 관련해 이를 단순한 조세회피인지, 조세포탈에 해당하는지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경계선 설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법무연수원 주체로 대검찰청에서 28일 진행된 '역외탈세의 현안 및 대책 세무나'에서 발제자인 오윤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세 피난처를 이용한 조세 회피와 탈세 대응 방안'이란 주제의 발제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오 교수는 조세피난처 법인을 이용해 소득발생사실을 은닉한 경우에도 별도의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경우에 단순한 조세회피로 조세포탈과 구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조세회피행위의 경우 거래형태가 비정상적일 뿐 적법한 행위이고, 공시된 행위라며 과세요건 사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은폐하고 그 은폐하는 행위가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가 되는 조세포탈행위와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현행 법 체계상 은닉에 대해 조세포탈로 볼 수 있는 요건이 없다며, 미국, 독일, 일본에서의 사례를 감안해 은닉행위을 조세포탈로 볼 수 있는 경우를 보다 명확화해 은닉을 통해 적극적인 거짓을 만드는 행위는 조세포탈로 본다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 밖에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에 대해 국세기본법 제14조 제3항의 단계거래원칙이 일반적인 조세회피 방지규정이라고 이해한다며 그동안 법원에서 국세기본법 제14조 제1항과 제2항을 사용해 온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진영 한국국제조세협회 이사장은 조세피난처가 조세회피라는 부정적 시각으로 비춰져 온 측면이 있다면서 전 세계 투자자금을 모으고, 여러 나라의 투자자를 모으는 유리한 제도를 갖고 있는 등 순기능도 있다고 주장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 역시 우리나라의 기업 환경 상 공격적 해외진출을 위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며 최근 조세피난처에 회사를 설립한 것만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상황은 극복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해운업의 경우 큰 배를 구입해야 하고, 이런 과정에서 엄청난 부채비율을 갖게 된다면서 국내 해운사의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페이퍼컴퍼니 설립이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 본부장은 할렘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 모두가 마약거래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그 사람들 대부분이 정상적인 식당을 운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세피난처에 회사를 설립한 모든 기업이 탈세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석훈 변호사는 최근 관련 판례에서 실질귀속자의 기준에 대해 어느 정도 일정한 기준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며 법원 역시 실질과세 원칙을 적용해 페이퍼컴퍼니의 과세실체를 부인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 영국령 버뮤다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그 주주 중 1인이 캐나다인이라면 캐나다의 경우 배당소득에 대해 자국 세법에 따라 배당소득세를 과세하는데, 이럴 경우 한국과 캐나다의 이중과세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강 변호사는 행정법원의 판결을 인용해 조세회피 지역에서의 거래만으로 국내 조세회피를 단정할 수 없고, 적극적인 은닉 행위가 추가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인 것으로 이해한다며 조세포탈에 적극적인 행위요건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안종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조세회피는 여러 나라와 정보를 교류하고 다자간의 노력이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과세정보에 대해 당국이 정보를 갖기 힘든 구조로 돼 있는 역외탈세 문제에 있어서는 입증책임을 납세의무자에게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심혜정 국회예산정책처 세수추계과장은 역외탈세 방지 문제는 최근 저성장과 향후 복지 확대를 위한 재정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세수 확보에 중요한 재정정책 과제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대기업들의 조직적인 역외 탈세의 확대는 세수 손실과 과세 형평성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국회에서도 조세회피 방지를 위한 법안이 발의됐다고 전했다.
이날 토론회가 열린 대검찰청 포렌식센터에는 축사를 한 안대희 전 대법관, 개회사를 한 소병철 법무연수원장, 조세법 전문가인 소순무 율촌 대표와 회계법인 관계자, 검찰 관계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