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도 아닌데 무엇하러 신경쓰나…'
다른 부서 혹은 다른 사람의 일인데 잘못된 점을 발견했을 때 괜히 내가 나섰다가 복잡해지는 것을 아닐까 망설였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다 있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내 일도 아닌데 나섰다가 문제가 생기면 괜한 피해를 보는 것 아닌가 등의 걱정이 머리를 스쳐지나가면서 눈을 딱 감아버리고 싶은 경우도 종종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나서 정직한 중소기업들의 수호천사가 돼 준 사람이 있다. 바로 저가 중국산 물품을 국내산으로 속여 공공기관에 납품한 업체를 적발한 서울세관 최병성 관세행정관(사진)이다.
최 행정관은 지난 5월 나라장터시스템을 통해 수입산 제품을 국산으로 둔갑해 공공기관 등으로 조달 납품하는 업체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관세청 단속권한 밖의 법령을 위반한 사례가 적발되,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심했지만 최 행정관은 비록 공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더라도 끝까지 조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 다른 기관 일이라며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 최 행정관은 4일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의 인터뷰에서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으로서 관세청 단속권한 밖의 타 법령을 위반한 것을 귀찮다고 방치할 수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 "공무원이라면 행정편의주의 유혹 이겨야" = 최 행정관은 수입산 제품을 국산으로 둔갑해 공공기관에 조달·납품하는 업체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정보를 분석하자 A라는 업체가 눈에 띄었다.
A업체는 OEM 방식으로 중국에서 성형목재마루판을 가공해 수입하는 중소기업이었고 바로 A업체가 조달 납품한 공공기관을 찾아 원산지표시 상태를 검사했지만 이미 바닥공사를 마쳐 원산지 표시 검사는 어려웠다.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됐던 최 행정관은 결국 A업체의 생산공장을 직접 찾아가 생산일지를 살펴봤다. 그 일지에는 지난해 9월 이후애는국내에서 목재마루판을 생산한 적이 없으며 오로지 중국에서 수입한 사실만 적혀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곳에 있었다. 마루판 현품에는 'Made In China'로 원산지가 표시돼 있어 관세청의 단속권한인 원산지 표시 위반과 관련해선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공공기관에 조달 납품하려고 나라장터를 통해 입찰을 받을 때는 물품정보를 '대한민국'으로 허위 작성해 낙찰을 받는 등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사항만 있었다.
최 행정관은 "이 사건을 '이상없음'으로 종결 처리해 버릴까하는 행정편의주의적인 유혹이 샘솟았지만 국가의 녹을 먹으며 그럴 수는 없었다"며 "단속권한이 있는 기관인 중소기업청과 조달청에 관련된 내용을 이첩했다"고 밝혔다.
최 행정관은 사건을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이러한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추가로 정보분석을 한 결과, 고위험 업체 176개를 선별해 검사를 실시했고 원산지표시 및 중소기업 직접생산 위반 등 총 128억 상당, 21개 업체를 적발하는 성과를 거뒀다.
□ "심사분야, 내 손 안에 있소이다" = 관세청에 재직한 30년 동안 최 행정관은 심사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03년과 2009년 심사분야 유공자로 관세청장 표창을 받고 2009년과 올해는 심사분야 서울세관 우수직원으로 선정되는 등 최 행정관은 심사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09년 중국산 고춧가루와 국내산 고춧가루를 일대일로 혼합한 뒤 판매한 원산지를 속인 업체를 적발, 고춧가루 1137톤(62억원 상당)을 적발하는 실적을 올렸다.
특수관계자간 거래물품인 담배 등에 대해 수입신고가격을 '국내판매가격 적용'으로 40억원 추징해 건별심사 실적평가로 전국 1위를 기록했던 적도 있었다.
애견사료의 원산지를 속이기 위해 원산지 표시 대상 물품인 '개사료'로 신고하지 않고 '비식용 설육'으로 품목을 신고해 우회 수입하는 업체를 적발하기도 했다.
한 번 내 손에 들어온 일은 절대 놓치지 않고 끝까지 하겠다는 끈기와 노력으로 일궈낼 수 있었던 성과였다.
최 행정관은 "관세청의 주요 임무가 세수확보에서 관세국경지킴이로 역할이 확대됨에 따라 제가 30년 넘게 관세공무원으로 배운 것들을 후배들과 공유하고 싶다"며 "후배들에게 불법 부정무역이 이 땅에 발붙일 수 없도록 끝까지 추적해 적발하는 열정이 넘치는 선배로 기억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