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황 악화로 금융사 매물 속출…사모펀드, 문어발 인수 추진
금융업계 "단기간 투자비용 뽑으려 업계에 상처줄까 우려"
일부 시장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설립한 투자목적회사(SPC) 라이프투자에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를 허용했다.
금융위원회는 11일 정례 회의에서 라이프투자가 신청한 ING생명 주식 취득 신청을 승인했다.
시장에서는 우리금융에 대한 분할 매각이 진행되고 있고 보험과 증권 등의 금융기관 매물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단기차익 극대화를 경영목표로 하는 사모펀드에 금융기관 인수를 허용한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제각각 사정은 틀리지만 저금리·저성장의 파고에 숨을 헐떡거리며 금융사들이 시장에 줄줄이 매물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총자산 429조원에 달하는 우리금융이 분할매각을 진행하고 있고, 보험업계에서는 LIG손해보험 등 대형물건이 기다리고 있다.
증권업계는 더 상황이 안 좋아 중소형 증권사 10곳 정도가 매물로 나와 있고 우리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이 시장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이 같은 매물들을 소화할 여력이 부족한 듯 하다.
이만희 미래에셋증권 대표는 지난달 25일 한국금융연구원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요즘 여의도 가면 증권사들이 매물로 많이 나와있다.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려는 사람이 없다. 시장이 워낙 나쁘니까 M&A 환경 자체가 좋지 않다"며 한껏 가라앉은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고려한 탓인지 금융당국에서는 사모펀드에 대한 일부 시장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세일즈를 선택하는 분위기다.
11일 박정훈 금융위 보험과장은 ING생명 인수허용과 관련 "삼성전자나 KB금융과 같은 회사들도 외국자본 비중이 적지 않다"며 "국내법상 외국자본의 비중에 대한 제한을 두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보험업법상 MBK가 기존의 보험업을 경영하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제기됐지만 금융위는 사모펀드의 경우 예외가 허용된다며 두둔했다.
불과 2년 전인 지난 2011년 금융당국은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을 추진하며 사모펀드 3곳 중 MBK파트너스만 예비입찰제안서를 제출한데 대해 유효경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찰 자체를 무산시킨 바 있다.
더구나 금융당국을 포함한 정부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대한 트라우마도 상당하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진통 끝에 허용했지만 론스타 측은 투자자 보장협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한국 정보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중재를 신청해 우리나라의 첫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의 첫 사례를 남긴 바 있다.
정치권과 학계, 금융시장의 우려는 상당하다.
이학영 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우리금융지주의 분리매각 중간평가 및 올바른 민영화 해법'이라는 토론회에서 "우리는 지난 론스타 건과 같이 사모펀드의 먹튀를 경험한 바 있다"면서 "수많은 공적자금을 투입한데 이어 매각 과정에서 세제혜택까지 주면서 사모펀드의 이익을 보장해줘야 하는지 면밀히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도 "우리금융 매각은 추진중단을 몇 차례나 반복했던 사안인 만큼, 그간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제대로 된 매각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이번 매각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향후 금융시장 질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한다"며 뜻을 함께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공동대표는 '박근혜 정부가 우리금융지주 매각으로 복지 예산을 마련코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피치 보고서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민영화를 추진한다면 정부가 소유한 은행을 팔아서 부족한 복지재원을 충당한다는 논란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이 사모펀드에 금융기관 인수를 허용하며, 최근 진행되고 있는 사모펀드들의 문어발식 금융사 인수는 가속도를 붙일 것으로 보인다.
MBK파트너스의 경우 ING생명 뿐만 아니라 LIG손보 등에 대한 인수의지도 다지고 있는 상황이며, 또 다른 사모펀드인 파인스트리트그룹은 우리투자증권 인수에 출사표를 던져 놓은 상태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모펀드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써내 결국 해당 금융사를 인수하게 되겠지만 단기간 투자비용을 뽑기 위해 무리수를 보이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며 "업계에서는 사모펀드가 금융권에 또다른 상처를 주지 않을까 안타까워하는 분위기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