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대 출신의 앞길 개척… 국세청 떠나는 기관장 '1호'
국세청에서 근무하는 국세공무원들 가운데 국립세무대 출신의 ‘존재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8급 특채로 들어온 이들은 2만 국세청 직원의 25% 가량인 5000여명에 이른다. 숫자도 막강한데다 위로는 국세청 조사국장 아래로는 일선세무서 계장과 차석에 이르기까지 국세청의 든든한 머리와 허리역할을 하고 있다.
김용철 의정부세무서장(사진)은 5000여명에 달하는 후배들이 마음으로부터 인정하는 ‘진정한 맏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인물. 세무대학 설립과 동시에 입학한 그는 대학 재학시절 학생회 간부를 줄곧 맡아온 데다, 졸업 후에는 총동문회장을 맡아 동문회의 기반을 닦았다.
그런 그가 의정부세무서장을 마지막으로 30년 8개월 동안 모든 열정을 다 바쳐 노력했던 공직생활을 접고, 이달말 명예퇴임식과 함께 국세청을 떠난다. 그에게는 ‘명예퇴직으로 국세청을 떠나는 세무대출신 기관장 1호’라는 닉네임도 붙여지게 됐다.
195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그가 세무대학을 1기로 입학하게 된것은 운명이었다. 군대를 제대한 뒤 재수를 하던 그는 일류대학 법대를 가서 뛰어난 율사(律師)가 되겠다는 분명한 꿈이 있었다.
그런데 국어·영어·수학 위주로 본고사를 준비하던 그에게 본고사제도 폐지라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그 때 그의 고교담임이었던 은사가 “이런 대학이 생겼으니 지원해 보라”며 추천해 준 곳이 바로 세무대학이었다.
1981년 24세 나이로 입학할 당시 세무대 학생은 내국세과 280명과 관세과 80명 등 전체 학생수가 360명. 김 서장 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은 4명에 불과했고, 대부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이었다.
재학시절 학교 성적이 좋았던 그는 교수와 학생들의 두터운 신임도 얻어 줄곧 학생회 간부를 맡아왔다. 세무대 1기여서 한 학년 학생밖에 없는 휑한 학교는 학생회 간부로서의 그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어느 정도 안정감과 열기를 갖게 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 세무대 출신으로 처음 걷는길…‘선배 없는 설움’ 열정으로 극복
학교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졸업 이후 그가 처음으로 근무한 곳은 서울 시내에 있는 동대문세무서 총무과. 세무대를 거치면서 이미 실무에 적응할 준비가 됐던 그는 그곳에서 법인세과로 자리를 옮겨 법인세와 인연을 맺는다. ‘국세청 최고의 법인세통’이라 불리게 된 계기가 마련된 것.
법인세과에 근무하며 ‘물 만난 물고기’처럼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게 된 그는 2년5개월 이라는 파격적인 짧은 기간에 8급의 꼬리표를 떼고 7급으로 승진한다. 그는 승진 이후 지방국세청을 거치지도 않고 곧바로 국세청 본청 행정관리담당관실이라는 핵심부서로 전격 발탁된다.
행정관리담당관실의 조직계에서 정원증원, 세무서신설 등 심사분석업무를 맡기도 했고 세무대 후배 학생들의 실습지도를 위해 전국 세무서를 모두 방문하기도 했다. 전국 세무서를 모두 방문한 경험이 있는 인물은 그가 유일하다.
세무대 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전국 세무서에 배치돼 실습을 받고 또 그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가 했던 일이 방학 중에 전국 세무서를 돌면서 학생들이 제대로 실습을 받는지 평가하는 업무였다. 이를 계기로 후배들에게 유명세가 더해졌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세무대출신 학생들이 국세청 요직으로 속속 들어오게 되니, 불안감을 느낀 일반공채 출신 직원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보이지 않는 견제도 상당했을 터.
국세청장이 “유능한 세대출신들을 빨리 국세청의 중추적 인물로 키워야 한다”며 승진을 추진할 땐 일반공채 출신들은 “우리는 10년째 승진을 못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또 서울청 조사국에선 세무대출신을 받지 않는 두터운 방어벽이 세워져 있었다.
세무대출신들로선 처음 걷는 길을 가자니 선배들에게 터놓고 묻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그런데 1기 출신이다 보니 그에겐 물어도 자상하게 대답해 줄 선배가 없는 설움도 많이 겪었단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청 조사국 그것도 현재의 조사4국에 해당하는 특별조사관실에 그는 당당히 들어갔고, 그곳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자금추적만큼은 김용철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다른 사람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도 척척 해결했다.
무섭기로 악명이 높은 동대문 최대 사채업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당당하게 처리하는 뚝심을 보였다.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전직 대통령의 동생 수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가 속한 특별조사관실이 며칠 만에 자금추적을 완료해 수사의 활로를 열었다.
이를 계기로 당시 “국세청에서 특별조사는 필요 없다”며 특별조사기구를 없애려 했던 국세청장이 생각을 바꾸게 됐고, 특별조사 경력 1년이면 직원들을 대부분 교체하는 관례를 깨고 김 서장의 경우 핵심요원으로 자리에 계속 남을 것을 권유 받기도 했다.
그는 “그 때가 가장 열심히 했고, 보람도 최고였다”고 회고한다.
자금추적의 대가로 평판이 높던 시기에 그는 대검중수부에 세워진 5공비리 특별수사본부에 파견되어 혁혁한 성과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내 자랑 같지만, 사실 그 당시 국세청에서 나보다 자금추적을 잘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세무대출신 최초로 1기 조세범 전문요원이 됐을 뿐만 아니라, 대학원에 들어간 것도 그다.
2년제인 세무대에선 학사학위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는 끈기없이는 받기 힘들다는 방송통신대 학사학위까지 받아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입학한다. 기필코 박사학위를 받아 모교인 세무대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었단다.
그의 생각 깊은 곳에는 언제나 “세무대 1기로서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조금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한다. 합리적인 자세로 언제나 모범을 보이자”는 원칙이 자리하고 있었다.
■ 법인세법 전면개정 주도…최고 ‘법인세통’으로 우뚝
90년대 초 기획재정부 세제국이 세제실로 확대 개편할 때 반포세무서 법인세과에서 근무하던 그는 세제실로 자리를 옮긴다. 그가 근무희망을 하지 않았지만, 일 잘하는 인물로 정평이 난 그를 꼭 집어서 불러올리는 터라 자연스레 자리를 옮기게 됐다.
조세정책과를 잠시 거쳐 그가 주로 일한 곳은 법인세제과. 이곳에서 근무한 기간만 무려 9년이다.
계별로 업무영역을 달리하는 3계까지 있는 법인세제과에선 각 계에서 최소 2년씩은 거쳐봐야 비로소 법인세법에 대한 전체적인 자신의 이론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그정도는 돼야 세제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굳이 세법전을 들춰보지 않아도 막힘없이 대안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는 모든 계를 다 거치면서 조세특례제한법은 물론 유권해석을 하는 법규까지 두루 섭렵하며 9년을 근무했다. 이쯤 되면 어떤 조문이든 규정이 뭔지는 물론 관련 법의 입법취지에서 부터 중간에 무슨 이유로 법 개정이 이뤄졌는지에 이르기까지 스토리를 줄줄 꿰는 것은 당연지사.
이곳에서 그는 현행 법인세법의 근간을 이루는 내용으로 두 번의 대폭적인 법인세법 개정과정에 깊숙이 관여한다.
큰 폭의 법개정이 있었던 96년엔 ▲스톡옵션 신설 ▲결손금 소급공제 ▲감가상각제도의 개선정비 ▲비업무용부동산 자체를 폐지하면서 지급이자 손금불산입 도입 ▲접대비제도 개선 등 굵직한 일들의 개정을 주도했다.
특히 법인세법의 전문 개정이라는 역사적인 일이 있었던 98년엔 법인세제과 8년차 최고참 신분으로 법개정 전 과정을 사실상 주도하게 된다.
상법에도 없었던 분할제도를 포함한 까다로운 합병분할제도를 최초로 도입했다.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감가상각제도 통합 ▲각종 초과과다비용 규제 ▲비업무용 규제완화 ▲특수관계자 과다임금 지급 등의 인건비 규제 등을 다뤘다. 그의 손길이 없으면 법 개정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 외 다른 개정내용들도 과에서 최고 실력을 자랑하며 고참인 그를 거쳐 처리됐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는 신조를 가져 꼼꼼하기로 유명한 그의 손길이 보태져 법인세법 전면개정이라는 명작이 탄생한 것.
이 과정에서 그는 ‘국내 최고의 법인세통’이라는 닉네임을 얻을 만큼 평판이 자자했다. 그 공적을 인정받아 사무관으로 승진한 뒤 2001년 국세청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국세청 사람이면서도 ‘타부처 사무관 승진자 2년 이내 수도권 진입금지’ 규정에 묶여 춘천세무서에서 2년 5개월 동안 세원관리과장과 조사과장을 연달아 역임 했다.
이후 중부지방국세청 조사3국에서 8개월을 보낸 그는 곧바로 국세청 조사국 조사2과로 발탁됐다. 그곳에서 ▲금지금 기획조사 ▲유통과정 추적기획조사 ▲자료상 기획조사 등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또 국세청에 세원정보과가 신설되면서 그곳으로 자리를 옮겨, 탈세제보와 관련된 제도개선은 물론 신고전화 체계의 단일화 등 굵직한 일들을 해냈다. 그의 집요한 노력으로 자료상 근절을 위한 통신자료조회 제도의 개선이라는 법개정도 이뤄졌다.
서기관으로 승진한 뒤에는 법규과 총괄계장으로 자리를 옮겨 사전답변제도 활성화 등의 제도개선과 함께 법규과로 들어오는 각종 질의와 예규업무를 총괄했다. 그에게는 그 시기가 세제실에서의 기억을 되살릴 정도로 조세법규 전반을 리마인드 할 계기가 돼서 좋았단다.
■ 권위의식 없는 영원한 ‘멘토’…직원들에게 ‘인기 만점’
의정부세무서 청사의 흡연구역에 ‘웬 사람들이 저렇게 많지’라고 싶을 만큼 사람들이 몰려 있을 때면 늘 김용철 서장의 얼굴을 찾아 볼 수 있다.
직원 격려차 소주를 한잔 기울일 때나 사석에서 담배를 필 때든 어느 때 봐도 그에게서 권위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직원들에겐 항상 스스로 일하도록 만들고, 가급적 칭찬을 해주려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직원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일하도록 만드는 데는 타고난 재주를 가진 그다.
그래서였을까. 세무서장 초임발령을 받은 북전주세무서에서도 그랬고 동수원세무서 그리고 의정부세무서까지 그가 서장으로 임명된 곳에는 함께 일하고 싶은 직원들의 근무희망이 구름처럼 몰렸다.
그는 이같이 직원들이 따르는 이유에 대해 “직원들에게 많이 물어보라고 조언하고 모르는 부분은 내가 아는 만큼 가르쳐 줄 수 있기도 하고 직원들과 대화를 많이 하기 때문 같다”고 해석한다. 직원들의 성과는 스스로 노력해서 이뤄내야지, 서장이 다그쳐서 실적이 올라가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의정부세무서의 한 직원은 “김 서장처럼 법인세법은 물론이고 모든 세법 체계와 관련해 실무자급 내용까지 훤히 꿰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좀더 일찍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김 서장을 만났더라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김 서장은 “초임이든 경력자이든 자신이 모르면 물어야 한다. 자신이 완벽하게 어떤 일을 알 때 까지 노력해야 한다”며 “이 분야는 내가 최고다. 나보다 나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큰 소리 칠 수 있는 만큼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그는 “공직생활 내내 주변 동료들로부터 사람이 합리적이고 융통성이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다”며 “퇴직 후에는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언제라도 소주한잔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나의 현재 있게 해 준 아내에 ‘감사’…가족에게 보답하며 살 것
초지일관(初志一貫)이란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고 있는 김 서장에게 공직생활에 대한 후회나 회한은 없어 보였다. 초임 세무서장 발령을 받고도 밤 11시까지 야근하고, 다음날 새벽에 직접 취임사를 써서 북전주까지 차를 몰아 취임했던 그다.
그는 “30년 공직생활에 대단히 만족한다. 모든 열정을 다 바쳐 열심히 노력했다. 또 국가로부터도 공직자로서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행복한 마음을 전했다.
그러한 그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나 내편이 돼서 지켜봐 주는 든든한 가족들이 바로 고마움과 미안한 사람들이다.
36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한 그는 아내와의 사이에 대학 2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딸 둘을 두고 있다.
그는 “세무대 1기여서 후배들을 위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주말도 없이 일에 파묻혀 살았다”며 “일을 핑계로 가족과 함께 많이 못한 부분이 늘 미안하다”고 했다.
국내 최고의 법인세통으로 불릴 만큼 세법지식에 능한 그도 흔들릴 때가 있었다. 법무법인과 회계법인 등에서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수차례 ‘러브콜’을 했던 것.
그 때마다 그를 붙잡아 준 것은 아내였다. 아내는 “집안의 지금 어려운 일은 나에게 맡겨라. 당신은 일에만 열중하고 공직에 충실하는 것이 나의 자랑”이라며 그를 지지해줬다.
그는 “그런 집사람과 아이들이 정말 고맙다. 지금의 내 모습을 있게 해 준 것은 가족들 덕분”이라며 “이제는 시간적 여유가 많아 가족하고 여행도 같이 가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 김용철 의정부세무서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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