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관치(官治)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관료들이야 책상 앞에서 도장만 찍으면 되겠지만, 그것이 금융사들에게는 생사가 뒤바뀔 수 있는 결정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텔레마케팅(TM) 영업 중단조치를 갑작스레 만들었다 철회한 정부 방침을 평가한 금융기관 직원의 뼈있는 한마디다.
지난 4일 금융위원회는 금융사들의 TM 영업을 다음 주부터 다시 허용키로 결정했다. 불법유통 개인정보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관련 행위를 금지시킨 지 정확히 열흘만이다.
이로써 금융당국은 카드사 정보유출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 '졸속행정'이었음을 스스로 시인한 꼴이 돼버렸다.
'정부가 파급효과를 생각하기에 앞서 대책부터 내놓는다'는 금융사들의 불만이 생기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여론을 두려워한 당국이 텔레마케터들의 생계와 금융사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고 보여주기 식 대책을 먼저 발표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기 때문이다.
대책 시행을 앞두고 당국에선 국내의 텔레마케터들을 5만500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었지만, TM영업 금지조치로 한순간에 회사 내 '유휴 노동력'이 돼버린다는 사실은 생각지 않은 듯하다.
당시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이들의 생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외국계 은행이나 제2금융권에서는 상당히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우선은 한시적인 조치이고, 상황을 봐서 시행완료일을 앞당기는 방침도 검토하려 한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후 금융위는 금융사들에 지시해 텔레마케터들의 감원을 자제시켰지만, 노는 인력에 대한 급여문제가 발생하고 대외 통상조약에 대한 문제로까지 불거질 조짐이 보이자 조치를 전면 철회한 것이 그간의 흐름이다.
이에 대해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내놓은 조치의 후폭풍이 일파만파로 커져가니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것"이라며 혀를 찼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실험에 대한 비용 차이에 있다. 현상에 대한 축소판을 만들어 실험이 가능한 자연과학과는 달리, 사회과학 실험의 실패는 사회구성원들의 막대한 비용지불을 필요로 하기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금융당국이 가진 권한은 무소불위에 가깝다. 카드사태는 물론 그 후속조치 시행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지금, 당국 관계자들의 신중하고도 책임있는 자세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