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가 시작 된지 20여년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안전행정부는 세제개편 등을 통한 지방재정 건전성 제고를 바탕으로 '성숙한 자치실현'을 이루어 내자고 강조했다.
진정한 '자치'를 위해 시급한 해결과제가 지방재정 확충이었던 탓에, 여러 세제개편 방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져 왔으며, 국세 8할, 지방세 2할의 현실에서 '2할의 자치'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일정부분의 국세를 지방세로 이양하는 문제를 놓고 씨름을 하고 있지만, 정작 2할의 지방세를 확충하고 집행하는 실무를 담당하는 지방세 공무원에 대해서는 무관심해 왔다.
지방재정 건전화를 바탕으로 한 성숙한 지방자치의 실현을 외치면서도 그러한 지방재정 건전화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지방세 공무원들이 어떠한 직무환경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들의 업무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지 등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 후면 6.4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대부분 자치단체의 희망(希望)은 지방재정 확충을 통한 자치권 보장일 것이다. 한자풀이로 보자면 '희망(希望)'이란 '바라고 또 바라다'라는 뜻이 된다. 얼마나 간절한가? 바라고 또 바란다니.
그렇다면, 지방재정 확충, 지방재정 건전화의 주역인 지방세 공무원들의 희망은 무엇일까? 희망이 있기는 한 것일까?
지난 21일 개최된 '한국지방세학회'에서 만난 지방세 공무원들에게는 이미 희망이 사라진 듯 보였다. '절망(絶望)'감에 가득 찬 그들의 표정에서는 일에 대한 의욕도, 믿음도 사라져 가는 듯 했다.
"제 동료는 26세에 공무원이 되어 현재 53세입니다. 7급에서 6급으로 승진이 가능할지 희망이 안보인다고 합니다. 저는 아예 승진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승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안보입니다", "이제는 거의 포기상태입니다" 지방세 공무원들이 느끼는 절망이 담긴 말들이다.
지방세 공무원들에게 희망은 열심히 일하고 일정시기가 지나면 승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있었다. 이러한 희망이 사라져 가니, 징세업무에도 소극적이 된다는 것이 그들의 말이다. "열심히 세금 걷어 봤자, 우리가 쓰는 것도 아니고 정부에서 우리의 업무에 대해 보상을 제대로 해 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대충대충 하자"는 인식이 지방세 공무원들 사이에 팽배 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공무원들은 정년보장에, 연금혜택에, 월급도 제때 잘 받고, 다른 복지혜택도 누리고 있으면서 뭘 더 바라는 거냐?"라고. 그러나, 매슬로우(Maslow)의 욕구단계이론에 따르면, 인간에게 있어 가장 고차원적인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다.
공무원들에게 있어 승진누락, 인사적체 문제는 이러한 자아실현의 욕구를 좌절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뿐만 아니다. 공무원은 이제 예전의 공무원이 아니다. 과거에는 관존민비(官尊民卑) 성향이 강해 권위적인 태도의 공무원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시대는 어떠한가? 지방직 공무원들의 고충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민선자치단체장 혹은 기관장들이 앞을 다투어 '주민만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절·봉사·서비스를 내세우며 '행정서비스헌장' 등을 만들어 공무원에게 헌신적 서비스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관비민존(官卑民尊)의 시대가 온 것이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녹봉(祿俸)을 받으니 국민들에게 충실한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방직 공무원들은 막강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자치단체장 혹은 기관장의 친절 서비스 강요에 주눅이 든다.
지방세 공무원들의 고충은 '기관장 눈치 보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부분 국민들은 세무직 공무원을 자신의 재산을 빼앗아 가는 강도나 도둑으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상습적인 악질 체납자 조차도 "왜 내 것을 빼앗아 가려느냐?"며 세무 공무원에게 당당히 따지고 드는 것을 보면 세무 공무원들의 심적 고통이 얼마나 클지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오늘날 까지 지방세 공무원들의 직무환경 개선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저조했다.
약 20여년 전인 1994년에 희대의 세무공무원 횡령사건, 즉 '부천세도(稅盜)사건'이 발생한 이후 세무 공무원들의 전문성과 윤리성 확보를 위해 지방세 공무원을 대거 확충하였으나, 지속적인 인력확충 및 업무분장 확대 등의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탓에 지방세 공무원들은 심각한 인사적체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근속연수 15년차, 40대 후반인 공무원이 지방세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여전히 부서 막내로 심부름 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지방세 공무원들의 직무소진과 이직의도에 관한 연구에서는 171명의 지방세 공무원들의 설문 응답 자료를 분석해 지방세 공무원들의 승진누락과 낮은 내적동기(직업의 장래성, 직무관련 교육훈련, 업무 성취감, 업무 즐거움, 직무에 대한 자긍심), 정서적 고갈 등이 지방세 공무원들이 타부서로 이직하고자 하는 의도, 혹은 퇴사의도를 높이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조사에서 지방세 공무원의 인사적체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으며, 이러한 문제가 지방세 공무원들의 심리상태에 까지 영향을 미쳐 업무에 지장을 주게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타부처의 공무원들도 인사관리에 있어서의 문제를 겪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지방자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지방세 공무원들의 직무환경을 종합적으로 조사하고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지방세 공무원들은 6급부터 세무직과 행정직을 통합하는 직렬통합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행정직과 세무직을 복수직렬로 재편하거나 부분적 전직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들은 대대적인 직무 재분석 및 조직 개편방안 모색을 병행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안전행정부의 지방공무원 채용계획에 따르면, 2014년 지방세무직 공무원은 2013년 대비 2~3배 증가된 인원으로 충원예정이다(2013년 271명 충원, 2014년 705명 충원 예정). 즉, 지방세 공무원의 인사 및 조직관리에 있어서의 대대적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안전행정부도 조금 더 적극적인 자세로 지방세 공무원 인사관리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부 3.0이 실천하고자 하는 '개방, 공유, 소통,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중앙공무원과 지방공무원간 신뢰구축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안전행정부에서 성숙한 지방자치 실현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해 현장에서 애쓰고 있는 지방공무원 특히, 지방세 공무원에게 관심과 배려를 보여주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어떠한 일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느 TV광고에서는 '사람이 미래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필자는 '지방세 공무원들이 지방재정 건전화의 미래다!'라고 외치고 싶다.
김정인 수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