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준 의원, "금융시장 규제완화는 시대에 역행"

무조건적인 규제 철폐는 소비자 문제 야기

집권 2년차에 들어선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카드로 '규제 개혁'을 내세우고 있다. 경제 전반의 규제를 철폐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재계의 기대감도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정부의 규제완화 움직임과 관련 금융부문의 규제를 해소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과거 저축은행 부실 사태, 가계 부채 팽창과 부동산 시장 붕괴, 신용카드 대량 연체와 같은 금융 사고는 정부의 규제완화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기 때문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준 의원(민주당)은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완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라진 세계 금융시장의 조류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우려했다. 그는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야 하지만 우리 사회의 체질을 바꾸고 한국 경제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려면 경제 민주화에 역행하지 않는 규제 정책이 실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Q. 박근혜 정부 들어 여러 차례 금융 사고가 일어나면서 다양한 종류의 금융정책이 만들어지거나 바뀌고 있다. 금융정책 전반에 대해 평가한다면.
=가장 큰 문제는 새 정부 들어 이렇다 할 금융정책이 없었다. 과거 금융위기 이후 금융정책의 변화가 요구됐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를 무시했고 그 관성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방향으로 가면서 소비자 보호에 소홀한 문제점이 나타났고 큰 금융 사고도 일어났다. 저축은행, 동양그룹 회사채 부실 사태 등이다.

지금의 시기에 맞는 금융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금융기관의 역할에 대해 과거 개발 시대의 인식으로는 안된다. 과거에는 정부가 지침을 내리면 은행이 알아서 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정책에 대한 고민과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은 소득 불균형 해소와 사회 안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Q. 금융 규제가 전반적으로 완화되는 추세인데 이는 경제 민주화와 역행하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
=그동안은 정부가 규제를 풀어왔다. 금융위원회가 말하는 규제완화는 자본시장을 키우는 쪽으로 치중돼 있는데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는다. 리스크를 가중시킬 뿐이다. 금융 시스템에서는 예금과 대출, 즉 공급과 수요를 조절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자본시장과 투자은행(IB), 인수 합병(M&A)을 원활하게 하는 것은 과거 신자유주의가 활성화된 2000년대 외환 위기 전후, 금융 개혁을 할 때의 패러다임이다. 그때에는 세계의 프레임이 그렇게 흘렀으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달라졌다.

규제의 양적인 완화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금융산업이 지속 가능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다. 물론 필요없는 규제는 없애야 하지만 소리없이 진행해도 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를 암 덩어리로 표현하고 자본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다 없애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공공성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고 소비자를 보호할 규제조차 묻혀서 풀려 버릴 위험이 있다.

돈을 돌게 하는 것, 중소기업을 어떻게 육성하고 발전시킬지 고민하는 것이 경제 민주화이다. 대기업을 견제하려면 법인세율을 올려 OECD(경제협력 개발기구) 수준의 실효세율 평균으로 맞춰야 한다. 그것을 중소기업 인프라 구축과 복지 확대에 사용해야 돈이 돈다. 지금의 정책은 경제 민주화, 증세를 둘 다 포기한 것이다. 증세 논쟁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Q. 자본의 국제화가 이뤄져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이 필요한 시기이고 시장이 침체된 상황이어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은 타당한 면도 있어 보이는데….
=지금 단계에서 외국자본의 유치는 큰 의미가 없다. 한국의 외환 보유고는 수천억 달러에 달할 정도이다. 투자가 늘지 않고 있는데 대기업들은 규제 때문에 투자를 안 하는 게 아니다. 대기업의 힘으로 돈이 될 만한 사업을 이미 독과점한 상태여서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규제가 투자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반대로 국내 사모펀드(소수의 투자자 자금을 모아 위험 투자를 하는 회사)를 육성해야 한다는 정부의 논리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과연 사모펀드가 해외에서 돈을 벌 수 있을까. 금융산업의 해외 진출은 예컨대 은행이 플랜트 수출과 연계해 자금을 투자하는 방법 등이 유망해 보인다. 미국, 유럽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중국과 같이 시장이 넓고 변화무쌍한 곳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은행의 경우 기업과 위험부담을 함께하는 방식이 필요해 보인다. 창업기업이나 중소기업이 새로운 투자를 기획하고 기술을 개발할 때 은행이 필요한 자금을 투입해 장기적으로 리스크를 떠안아 함께 성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Q. 규제완화 정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가계 부채 문제를 지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가계 부채는 잘못된 금융정책과 부동산정책의 결과물이다. 금융감독 시스템이 단기 업적 위주, 주주이익 극대화 쪽으로 허용되고 작동하면서 돈이 주택담보대출로 쏠렸다. 또 비정규직 전환으로 가계소득이 줄고 노동자의 소득분배 문제가 구조적으로 자리 잡았다. 흔히 가계 부채를 경제의 뇌관으로 표현하는데 단시간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경제 활력을 서서히 떨어뜨리고 상당히 오랜 기간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될 것이다. 경제가 활성화되는데 굉장히 무거운 짐 덩어리이다. 해결하지 않으면 내수가 차츰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계 부채는 사회문제로도 연결된다. 신용불량자(금융채무 불이행자) 수백만명이 연체에 빠졌고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나 우리 사회의 큰 짐이 될 것이다.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는 진보적 관점에서 볼 때 박근혜 대통령이 시행한 국민행복기금(저소득층의 채무 조정 제도)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금융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소득이 없어 도저히 갚을 능력 없으면 장기간, 싼 이자로 바꿔줘도 결국 못 갚는다. 이 경우 파산과 면책을 보다 쉽게 허용해 새 인생을 시작하게 하는 것은 결국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부동산정책은 주택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거 안정의 개념에서 여야가 같이 고민해야 한다.

Q. 앞으로 금융산업이 나아가야 할 정책적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금융회사의 고용정책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고용 문제는 금융산업만의 문제는 아니나 금융권이 선도해 풀어갈 필요가 있다. 은행권은 1~2년 계약직을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국면이지만, 같은 일을 하더라도 급여 차이가 나는 등 여전히 차별은 존재한다.

이는 시간을 갖고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공기업이나 공공성 있는 기업들은 가능한 비정규직을 안 쓰고 꼭 필요한 부분에 한해 쓰되 임금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 아니어야 한다.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즉 육아휴직 등 임시적으로 발생하는 분야에서만 비정규직을 채용하도록 해야 한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구조조정이 필요할 때 고용 문제를 어떻게 하느냐 문제가 생긴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노조 입장에서도 회사가 지속되어야 하니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노조의 경영 참여가 필요하다고 본다. 독일에서는 오래전부터 노조가 경영에 참여함으로써 민주적이고 지속 가능한 경영을 이뤄 지금의 독일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틀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