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등을 조성하기 위해 회사의 소득신고를 누락하여 법인세 탈루가 이뤄진 것이 발각되는 경우 대개 회사 경영권을 행사하는 대표이사 등에게 상여금이 지급된 것으로 간주하여 종합소득세를 부과하게 된다. 또 사외로 유출된 돈에 대해 귀속이 불분명한 경우도 세무당국은 회사의 대표이사에게 인정상여로 소득처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세 관행에 제동을 건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김경란 부장판사)는 최근 G사의 대표이사 P씨가 양천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종합소득세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사외유출된 돈이 Y씨에게 실질적으로 귀속됐다는 점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P씨에게 귀속됐음을 전제로 소득세를 부과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해 P씨에게 승소 판결을 내린 것으로 3일 밝혀졌다.
P씨는 통신장비업 등을 하는 G사의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세무당국은 G사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 G사가 가공매입세금계산서를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발견하고 이 회사 회장으로 실질적 지배자인 J씨와 함께 P씨를 형사고발했다.
이어 G사가 조성한 비자금을 바탕으로 기타소득과 사외유출, 상여 등으로 소득처분 하면서 특히 사외유출된 금액 중 귀속이 불분명한 돈을 P씨에게 대표자 인정상여로 소득처분해 종합소득세를 증액해서 다시 내도록 알렸다.
P씨는 세무당국이 상여로 소득처분한 금액이 자신에게 실질적으로 귀속한 사실이 없다며 반발했다.
이에 대해 행정법원은 "사외유출된 소득이 대표자 등에게 실지 귀속됐음을 이유로 대표자 등에 대한 소득세 부과처분이 적법하기 위해서는 과세관청이 현실적으로 대표자 등에게 귀속된 사실 및 그 소득의 종류를 주장·입증해야 한다(대법원 2003두15300)"고 밝혔다.
이어 "법인으로부터 사외유출된 소득의 귀속자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을 경우 그것이 대표이사 등에게 현실적으로 귀속됐다고 추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당국이 제시한 증거인 'G사의 일일현황표'와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문'만으로는 P씨에게 사외유출된 돈이 귀속됐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당국의 과세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그 근거로 "G사의 일일현황표에 따르면 P씨 명의의 가수금 계좌에 10억원이 입금된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단순히 P씨 가수금 계좌에 10억원이 입금됐다는 사실을 내부적으로 보고하는 문서에 불과할 뿐이며 그 돈이 입금된 계좌와 입금된 이후에 어디에 쓰이거나 출금됐는지를 전혀 나타내지 못해 증거로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오히려 "그 돈이 G사의 회계담당 이사인 L씨가 관리하던 P씨 명의의 차명계좌에 입금됐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며 비자금 조성과 관련된 돈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어 "G사의 회장인 J씨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서 조사받은 내용에 따르면 '회장인 자신이 P씨에게 비자금을 만들도록 지시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진술을 한 점, 검사가 'P씨가 이 비자금 조성으로 실제 취득한 이득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불기소처분한 점 등"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2013구합57082)을 통해 "당국이 제시한 근거만으로는 P씨에게 사외유출된 돈이 실질적으로 귀속됐다는 점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그 돈이 P씨에게 실질적으로 귀속됐다는 점을 전제로 한 과세 처분은 위법하다"며 P씨의 손을 들어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