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 침몰한 세월호의 선사 청해진해운 입구 전경. 사진 : 김용진 기자
금융 당국, 청해진해운 감사 업체 감리 시작
일부 회계법인 유착 의혹…중징계 여부 '주목'
세월호 선사(船社) 청해진해운의 회계분식 의혹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지난 4월 16일 진도 해상에서 침몰하며 300명 가까운 희생자를 낳은 끔찍한 사고의 이면에는 경영 부실과 불법 대출, 회계법인과의 유착 등 온갖 비리가 있었다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이달 초 청해진해운 계열의 비상장법인들을 감사한 세광공인회계사감사반, 중앙회계법인, 나래회계법인, 대주회계법인에 대해 감리를 시작했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공인회계사회가 문서상 감리를 진행중이며, 검찰과의 공조가 이뤄지고 있다.
검찰은 청해진해운 계열 비상장법인과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들이 서로 결탁해 경영 부실을 숨기고 허위로 감사의견을 꾸몄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수사 중인 상태다.
금감원과 회계사회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우선이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감리를 종료할 계획이다. 감리 일정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비상장법인의 감사 보고서에 대한 감리는 회계사회가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당국이 회계사회의 감리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징계를 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아직 징계를 논하기는 이른 시기이나 규정상 부실 감리에 대해 문책할 수 있다. 지난해 한차례 있긴 했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다"고 밝혔다.
회계분식 과정에서 회계사의 고의적인 부실 은폐와 유착이 있었을까.
과거 대형 금융 사고가 터질 때마다 기업인, 회계사 사이의 유착이 드러난 일은 수차례 있어 왔다. 지난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때 회계사들이 회계분식에 연루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금감원은 수개월에 걸쳐 강도놓은 회계법인 감리에 착수한 사실이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회계 업계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회계사의 역할이 재무제표를 감사하는 것이지, 범죄 수사가 아닌 만큼 기업의 비리에 대한 책임을 회계사에게 묻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 회계 업계 관계자는 "회계분식에 대한 잘못은 우선적으로 기업인에게 있다. 미국과 같은 회계 선진국에서도 기업인의 잘못을 더 크게 본다"며 "회계사 개인의 비윤리적 행위를 법으로 제한할 방법은 많지 않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또 그는 "이번 사고는 회계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기업인과 회계사 사이의 특수한 인연에 의한 비윤리적 유착에 가깝다. 개인적 사례로 봐야 맞지 않나"고 말하기도 했다.
세광 등 특정 외부감사인은 모두 영세한 규모이다. 세광의 경우 회계사 3명이 근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감사인은 청해진해운 및 계열사의 회계감사를 수년에서 길게는 13년 넘게 맡았다. 세광 소속 김 모 대표 회계사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청해진해운의 최대 주주인 천해지 감사를 맡았다. 또 김 대표는 청해진해운 전신인 세모그룹의 유병언 전 회장과 종교적 관계로 얽혀 있어 상당한 유착 의혹이 일고 있다.
그동안 시장 안팎에서는 회계사의 유착과 비리가 감사 보수 덤핑, 영세 회계법인의 감사 품질 저하 등 제도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회계사회 한 관계자는 "영세 회계법인의 감사 품질은 오랜 시간 문제돼온 사안이다. 세월호 사고와 직접적으로 연관 짓기는 조심스럽지만 과거 수차례의 사고로 인해 비슷한 문제가 드러난 것은 사실이다"고 지적했다.
한 금융 당국 관계자는 "금감원과 회계사회가 감리하는 방식은 회계분식 위험성이 드러났을 때 일부 회계법인을 대상으로 한 표본 감리 방식이기 때문에 사실상 10년, 20년 동안 단 한차례도 감리를 받지 않는 기업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재 공인회계사감사반 수는 300~400개에 이르며, 회계사회가 1년에 감리를 해야 하는 회계법인도 300~400개다.
정부는 회계법인 및 감사반의 등록 요건을 강화하고 서로 인수 합병(M&A)이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하는 법안 개정 작업을 추진중이다. 예컨대 회계법인을 등록하기 위해 채용해야 하는 최소 회계사 수의 요건을 높이는 방법 등이다.
이번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에 의하면 청해진해운 11개 계열의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은 일제히 '적정의견'을 냈다. 재무제표의 모든 항목이 회계기준에 일치하고 불확실한 사실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감사의견상 청해진해운을 포함한 계열사들은 경영상 문제가 없었으나 검찰은 여러 은행으로부터 불법 대출을 받은 사실을 밝혀내는 등 재무상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만일 회계사 유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담당 회계사들은 중징계를 피하지 못할 전망. 최고 징계인 등록 취소 처분이 내려지면 회계사회 회원 자격을 박탈당하며 사실상 영업정지 수순을 밟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