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院 "과세요건 달리 적용하면 불이익변경 아니다"
과세당국이 세무조사 등을 통해 세금을 부과한데 대해 납세자가 불복할 경우 당초의 처분보다 불이익한 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형법에서 피고인이 상소한 사건이나 피고인을 위하여 상소한 사건에 대하여는 원심판결의 형보다 중한 형을 선고할 수 없는 불이익변경금치원칙을 적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과세당국이 당초 9500만원의 증여세를 부과한데 대해 납세자가 불복하자 당국이 재조사를 실시해 처음 부과한 세금을 취소하고 새로운 과세요건을 적용해 더 무거운 증여세를 부과해 법정으로 간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최주영 부장판사)는 최근 H씨가 노원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증여세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H씨가 이의신청을 한 당초 증여세 부과처분은 세무당국이 재조사 후 취소했고, 그 후 별개의 과세요건으로 새롭게 증여세를 부과한 것은 불이익변경금지원칙이 적용되지 아니하는 것"이라며 당국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29일 밝혀졌다.
H씨는 D증권사에 증권계좌를 개설하고 코스닥 등록법인인 G사가 실시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따른 주식 130만주(납입금액 6억원)를 배정받았다.
과세당국은 H씨에게 배정된 주식이 '불균등 증자에 따른 이익의 증여'로 보고 G사의 주식을 시가 9억 5000만원으로 평가한 다음, 그 시가와 납입금액 6억원의 차액인 3억 5000만원을 증여재산가액으로 해 증여세 9500만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H씨는 이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제기했고, 세무당국은 재조사를 결정했다.
당국은 재조사 과정에서 "J씨가 H씨로부터 명의를 빌려 D증권사 계좌를 개설해 G사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된 주식을 배정받았다"는 내용으로 H씨가 명의대여자로 서명한 명의대여 확인서를 발견했다.
과세당국은 이에 따라 G사의 유상증자된 주식은 J씨가 H씨에게 명의신탁한 것으로 파악하고 H씨에 대한 증여세부과처분을 취소하고, 새롭게 '명의신탁재산의 증여의제 규정'을 적용해 증여세 3억 5600만원을 내도록 알렸다.
이에 대해 H씨는 명의가 자신의 의도와 달리 사용됐다며, 명의 도용으로 주식을 취득했기 때문에 '명의신탁재산의 증여의제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맞섰다.
H씨는 또 실제 주식의 소유주인 J씨의 책임 아래 G사의 유상증자된 주식이 거래된 것으로 주식이 실질적으로 자신에게 귀속된 바 없고, 증여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실질과세원칙에 따라 당국의 과세 근거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그는 자신에게 당초 9500만원의 증여세를 내도록 했다가, 재조사를 거쳐 2억 6000만원을 증액해 증여세를 내도록 한 것은 세법에서 정한 '불이익변경금지원칙'에 위배된다며 증액된 부분만큼은 무효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행정법원은 H씨의 주장 내용을 모두 배척하면서 과세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불이익변경금지원칙 위반과 관련해 판결문(2012구합23983)에서 "H씨가 이의신청을 한 처음 처분은 구 상증세법 제39조 '증자에 따른 이익의 증여' 규정에 따른 증여세부과처분이고, 과세당국이 재조사 후 이 처분을 '0원으로 감액경정하는 처분'을 해 취소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 후 H씨에게 증여세를 부과한 것은 별개의 과세요건, 즉 구 상증세법 제45조의 '명의신탁재산의 증여의제' 규정에 따라 한 것으로 불이익변경금지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세금 부과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또 명의가 도용됐다는 H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명의신탁재산의 증여의제와 관련해 과세당국은 실질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르다는 점만 입증하면 되고, 실질소유자의 일방적인 행위로 명의사용이 이뤄졌다는 입증은 이를 주장하는 명의자가 해야한다(대법원 2007두15780)"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전제에서 "G사의 유상증자된 주식의 실질소유자는 J씨임에도 H씨 명의로 개설된 증권계좌를 통해 H씨 명의로 배정되고, 명의개서된 사실은 H씨의 주장대로 J씨의 대리인인 C씨가 일방적으로 H씨의 명의를 사용했다는 점을 H씨가 입증해야 함에도 도용된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오히려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C씨가 H씨 명의를 도용해 증권계좌를 개설했다'는 취지로 C씨를 사문서위조 등으로 고소했으나, C씨가 무죄판결을 선고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법원 재판부는 "H씨의 직장 동료의 증언에 의하면 H씨가 당시 C씨에게 주민등록증을 전달하기 위해 강남역으로 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고, 증권회사로부터 증권거래내역을 우편으로 받아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증권계좌 거래와 관련해 거액의 세금이 부과되자 명의도용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재판부는 이후 검사가 오히려 H씨를 무고와 위증으로 약식기소하고, 정식재판에서 H씨의 범죄사실이 인정돼 벌금 200만원의 유죄판결이 선고된 점도 확인했다.
법원은 결국 "H씨가 C씨에게 자신 명의의 증권계좌 개설을 허락했음은 물론, 증권회사로부터 증권거래내역을 우편으로 받아보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점을 보면 자신 명의로 주식을 배정받는 것에 대해 포괄적으로 위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해 H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실질과세원칙 위반과 관련한 H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명의신탁재산의 증여의제 규정은 명의신탁제도를 이용한 조세회피 행위를 방지해 조세정의를 실현하려는 취지"라며 "증여사실이 부존재한다 해서 이 규정을 적용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실질적으로 명의신탁재산이 명의수탁자에게 귀속돼야 한다는 H씨의 주장 요건은 위 법률 조항의 적용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며 H씨의 이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