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전문가 집단으로 불리는 세무사회가 반으로 쪼개져 연일 '막장드라마'를 찍어내고 있다. 자신의 의견을 함부로 입 밖에 냈다간 폭언은 기본, 멱살잡이는 덤이다.
지난해 시끌벅적했던 정구정 회장의 3선 논란이 겨우 수면아래로 가라앉은 뒤, 한동안 잠잠하던 세무사회가 1년여 만에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얼룩지고 있다. 재료는 오는 12일 열리는 서울세무사회장 선거다.
이번 선거가 친(親)정구정 세력인 기호1번 임채룡 후보와 반(反)정구정 세력인 기호2번 김상철 후보의 대결로 압축되는 순간부터 어느 정도 다툼은 예상되어 온 것이 사실.
하지만 세무사회의 분열이 아무리 심하다고 해도 서울회 선거에서 본회와 서울회 선관위가 후보들과 함께 뒤엉켜 이 정도 수준까지 물고 뜯는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연출될 것이라고까지는 예상치 못한 일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달 15일 제11대 서울세무사회장 후보등록 이후 벌어진 25일간의 기록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봤다.
□ 5월15일 : 김상철·임채룡 후보등록, 공정 선거 다짐
지난달 15일 후보 본등록 이전 예비후보등록 과정에서부터 이미 김상철 후보와 임채룡 후보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펼쳤다. 세월호 참사를 이유로 예비후보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임 후보의 발언 때문. 김 후보측은 국민적 아픔인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우여곡절 끝에 두 후보는 15일 본등록을 마친 후, 한 테이블에 앉아 공정 선거를 다짐했다. 하지만 딱 거기가 끝이었다. 이후 두 후보가 공식석상에서 눈을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 5월19일 : '네거티브'의 득세
임채룡 후보의 러닝메이트 부회장 후보 김완일 세무사가 후보등록 4일만인 지난달 19일 '출마의 변'을 통해 상대후보인 김상철 후보를 맹비난하고 나서며 네거티브 선거의 도화선에 불을 지폈다.
김 후보가 서울세무사회장을 역임한 지난 2년 동안 서울회는 본회와의 다툼을 유발했고, 이로 인해 세무사회가 분열되고 있다는 것이 김완일 후보가 발표한 내용의 골자.
김완일 후보의 기습적인 비난 공세를 접한 김상철 후보 측은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정식으로 제소할 예정"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 5월23일 : 선거 도중 선거규정 바뀌다
선거기간 중 본회가 선거규정을 바꾸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 안 그래도 선거 전 세무사신문에 임채룡 후보의 기고문을 대량으로 실어 특정후보 밀어주기 아니냐는 의심을 샀던 본회의 선거개입 논란이 본격화됐다.
세무사회는 지난달 23일 상임이사회를 통해 선거일 17일 전까지 각 후보자에 대한 선거공보, 소견문, 홍보물을 등기우편으로 전 선거권자에게 발송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을 발표하고 확정지었다. 당초 선거일 14일 전까지였던 규정을 3일 앞당긴 것.
졸지에 서울세무사회 선거관리위원회는 3일후인 26일 부랴부랴 후보들의 선거공보, 소견문, 홍보물을 전 회원들에게 발송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당시 양측의 홍보물을 조율 중이었던 서울회 선관위는 물리적인 시간부족으로 26일 공보물 등을 발송하지 못했고 결국 이는 훗날 임채룡 후보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 5월28일 : 임채룡 후보 '피켓 시위'…선관위 질타
사상 초유의 사태는 선거규정 개정만이 아니었다. 28일 오후 1시경 임채룡 후보는 한국세무사회 회관에 10여명의 회원을 대동해 피켓시위를 벌였다.
이날 임채룡 후보와 홍도현 부회장 후보 등 지지자들은 '서울세무사회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관리규정을 준수하라', '신목근 선관위원장은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세무사회장실 등을 찾았다.
이어 성명서를 통해 "당초 서울회 선관위는 5월26일 소견문과 홍보물을 발송하기로 해놓고 명확한 근거와 설명도 없이 5월29일 발송한다고 하는 것은 정상적인 선거관리를 의심케 한다"며 "선관위원장은 말 바꾸기를 그만하라"고 주장했다.
□ 5월29일 : '2차' 선거규정 개정, 본회 개입 논란 확산
임 후보의 피켓 시위 다음날, 세무사회는 바로 상임이사회를 열고 지방세무사회 선거관리위원회가 미흡한 부분이 있을 시 본회 선거관리위원회로 교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임원등선거관리규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세무사회는 지방세무사회 선거관리사무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제고해 입후보자 등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한다고 개정 이유를 밝혔지만 한창 진행중인 선거에 본회가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증폭된 사건이었다.
□ 6월9일 : 궁지에 몰린 서울회 선관위, 규정위반 딱지
6월2일자 세무사회신문은 6면에 걸쳐 서울회 선관위의 규정위반을 꼬집었고, 급기야 9일 본회 윤리위원회는 서울회 선관위가 전체회의를 통해 의결하지 않고 4명의 선관위 상임위를 통해 중요사항을 결정했다고 판단, '규정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회 선관위는 지난해 본회 선관위를 비롯해 역대 지방회 선관위 대부분이 선관위 상임위를 통해 사항을 결정했다고 주장했지만, 관례와 규칙은 별개의 문제. 결국 본회의 덫에 걸린 채 규정위반 딱지가 붙게 됐다.
□ 세무사회원, "도대체 누굴 위한 선거인가"
이밖에도 지난 3일 상임이사회에서는 대구지방세무사회장이 발언하는 김상철 후보의 멱살을 잡고 폭언을 서슴없이 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5일 열린 상임위원회에서는 김상철 후보가 동의를 구하지 않고 회의내용을 녹음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김 후보는 지난달 29일 녹음을 양해 받은 것에 대한 연장선이라고 해명).
아울러 세무사회의 감시역할을 맡고 있는 백정현 감사는 세무사회의 파행적인 이사회 운영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결국 10일 개최된 상임이사회를 비롯 앞으로 열리는 모든 회의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회계사업계를 비롯한 타 전문가 단체뿐 아니라 경제 관련부처에서도 관심을 보일 만큼 격렬한 선거를 치르고 있는 세무사회.
한 세무사회원은 "허위사실과 상대후보 비방이 난무하는 세무사회 선거가 외부에 알려질까 부끄럽다"고 말문을 연 뒤 "세무사의 위상제고를 위해 올해 회비로 광고도 하고 회원들은 공익재단에 기부도 하는데 윗분(?)들의 잘난 선거운동에 말짱 도루묵이 되는 느낌이다. 도대체 누굴 위한 선거인가"라고 되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