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 후 자본 규제에 사실상 길 막혀
규제 개혁 흐름 무용지물, 다른 방법 모색
한때 한국의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를 꿈꾸며 등장한 한국형 투자은행(IB). 지난해 자본시장법 개정이 국회를 통과하며 자본시장에 활로를 열어줬지만, 실제 IB는 있으나 마나 한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있다.
새 정부가 야심차게 규제 개혁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금융 위기 후 IB관련 자본 규제가 한층 강화되며 새로운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파생 상품 신시장 등 다른 길을 찾고 있어 정책에 대한 실효성과 신뢰성에 타격을 주고 있다.
□자기자본 3조원 맞춘 IB들, 기업 대출 유명무실=지난해 8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되며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을 갖춘 금융투자회사들은 기업 대출 업무를 할 수 있게 됐다.
IB는 금융투자회사들이 기존 중개수수료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를 벗어나 신용공여, 증권 대차, 컨설팅을 종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삼성, 현대, 우리투자, 한국투자, KDB대우증권이 IB 요건을 맞추기 위해 증자를 실시하며 몸집을 키웠다.
하지만 야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에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로 발목을 잡고 있어 제대로 수익을 창출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한 금융투자회사 관계자는 "신용공여 한도를 두고 당초 정부에서는 자기자본의 200%로 정하려고 했으나 정치권 반대에 부딪치며 100%로 낮아졌다. 사실상 수익을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1년이 채 안되긴 했지만 수익이 한 자릿수, 몇 억원에 그치고 있어 실제 큰 메리트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실은 정부에서도 인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길만 열어주고 제대로 일할 수 있게 만들어주지 못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도 시장의 공감 얻지 못해=전 세계적으로 금융시장이 심각하게 침체된 상황이긴 하나,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이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자기자본 상위의 금융투자회사 관계자는 "자기자본 3조원을 맞출 수 있었지만, 무리하게 증자해 새로운 업무를 시도할 만큼 메리트가 높다고 판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이어 "금융 위기 후 미국 IB들도 실적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리한 자기자본 확충이 오히려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고 지금도 기다리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최근 금융 당국이 코스피 변동성 선물, 야간 달러 선물 등 파생 상품 신시장을 열기로 했지만 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도 좋지 않다.
이 관계자는 "IB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또 다른 규제 완화 정책이 시장을 살릴 수 있을까 크게 기대되지 않는다"며 "초기 투자수요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시장에서 원하는 관련 규제가 해소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야당 의원들은 IB관련 규제 완화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IB가 투기성 자본에 투자를 장려하고 업계가 소수의 대형 증권사 위주로 재편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같은 당 김기준 의원도 "금융위가 말하는 규제 완화는 자본시장을 키우는 쪽으로 치중돼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자본시장과 IB를 원활하게 하는 프레임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달라졌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