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것도 계속 먹으면 질리는 법인데 맛없는 음식을 일주일 동안 먹어야 한다면 질리다 못해 진저리를 칠 지도 모른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으라고 한다면 처음에는 좋다고 할지 몰라도 대부분은 일주일만에 나가 떨어질 것이다.
우성용 서울세관 관세행정관(사진)도 마찬가지였다. 금강산 육로관광이 시작되면서 지난 2007년 문을 연 고성세관에서 근무했던 우 행정관은 폭설로 세관 안에 갇혀 일주일 동안 라면과 즉석밥으로만 근근히 버텨야 했다.
비상식량으로 라면과 즉석밥을 준비해놓지 않았다면 일주일동안 쫄쫄 굶어야 할 판이었다.
그에게는 일종의 생명줄이었던 셈이다.
일반 사람들은 공무원이라하면 탁상행정이나 하는 '철밥통'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 행정관은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을 때도 꺼져가는 남북교류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고립된 세관에서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꿋꿋히 버텨냈다.
조세일보(www.joseilbo.com)은 23일 우 행정관과의 인터뷰를 통해 고성세관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와 통관업무를 수행하면서 있었던 활약상 등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 "긴장의 끈, 놓지 못했던 고성세관" =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고 문을 열었던 고성세관은 남북을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면서 평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분단 50여년 만에 육로를 통해 일반인들이 남북을 오가는 감격은 이루말할 수 없었고 고성세관 직원들은 출입경 관리를 하며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남북통일의 기대감을 고스란히 느끼며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했다.
하지만 고성세관이 개청한지 1년 만에 박왕자씨 피격 사망사건이 일어났고 금강상 관광이 중단되면서 세관도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한 때는 12명의 직원이 분주하게 일하던 세관은 시설 관리 정도만 하는 최소한의 인원만 상주했고 우 행정관은 지난해 고성세관으로 가게 됐다.
세관이 민통선 안에 있어 외부와의 접촉이 어려울 뿐더러 직원도 적어 점심 한 끼 해결도 어려웠다. 구내식당이 없는 것은 물론 금강산 관광의 중단으로 식당으로 문을 닫은 상태였다. 유일하게 한 식당이 영업을 하고 있는데 이 식당이 개인사정으로 문을 닫는 날에는 라면과 즉석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겨울 폭설이 내리던 때, 우 행정관은 일주일동안 라면과 즉석밥을 먹으며 그렇게 좋아하던 눈도 싫어지게 됐다고 한다.
이렇게 고립된 생황을 이어가던 우 행정관도 신바람나게 일할 때가 있었다. 지난해 8월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하기로 합의를 했고 한동안 방치됐던 금강산 현지 시설에 대한 점검을 하고자 남북 출입이 본격화되면서 세관도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추석 연휴를 반납하고 신속통관을 지원했고 이산가족 상봉일만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개최일을 3일 앞두고 북한에서 상봉을 잠정 연기, 세관 직원들은 고생한 보람도 없이 허탈함만을 느끼게 됐다.
이후 지난 2월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극적으로 이뤄지게 됐고 이산가족들이 대부분 고령인 점을 감안해 상봉단이 묵게되는 숙소에 인접한 컨테이너 검색기를 이용해 기탁수하물을 사전에 검사하는 등 809명, 50여대의 차량의 통관을 신속지원했다.
우 행정관은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준비하면서 몸은 지치고 힘들었지만 역사적인 현장을 함께 하게 됐다는 자긍심에 마음은 아주 가볍고 뿌듯했다"며 "수십년 동안 헤어진 가족을 품에 안고 연신 눈물을 훔치던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지켜보면서 남북통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2013년 이산가족 상봉이 중단된 이후로 남북관계 경색이 오래 지속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봉행사가 성공리에 개최된 것 같이 남북관계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변화무쌍하다"며 "이런 상황과 더불어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는 게 남북교역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 "중추적 역할한다는 자부심이 힘의 원천" = 지난 2003년에 관세청에 들어온 우 행정관은 통관지원업무 외에도 심사, 외환조사, 보세화물 관리 등 다양한 관세행정 업무를 경험했다.
사실 관세청은 여러 분야의 업무를 해본 직원이 많지 않다.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한 분야만 집중해서 파고들기 때문이다.
현재 면세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우 행정관은 해외여행을 많이 하지 않아서 면세점을 자주 가보지 않았다. 시내면세점도 업무를 하면서 처음 구경하게 됐는데 업무를 하는 입장에서도 신기했다고 한다.
우 행정관은 "면세점 보세화물을 관리하면서 전에는 잘 알지도 그다지 관심도 없었던 명품브랜드를 알게 됐다"며 "너무 고가라 구매할 수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보다 보니 이제는 지나가는 여성들의 가방을 보면 어떤 브랜드인지 한 눈에 알아보는 '브랜드 대세남'이 됐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는 우 행정관은 "다양한 분야의 관세행정 업무를 두루 경험해 지금은 나름 세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며 "세관의 업무는 정말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이런 다양한 관세행정 업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것은 바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고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건전한 무역거래 질서 확립을 통해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이라며 "국가운영과 국민생활에 중요한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세관업무에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고 자랑스러운 세관공무원으로서 앞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